주간동아 543

2006.07.11

돈가스 만들기 30여 년 “나는야 은발의 주방장”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6-07-10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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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가스 만들기 30여 년 “나는야 은발의 주방장”
    “아저씨, 돈가스 하나 주세요.”

    “우리 집에 아저씨는 없어예. 여기는 할아버지 돈가스라예.”

    81세의 주방장. 국내 최고령 셰프가 만드는 돈가스 가게의 이름은 ‘할아버지 돈가스’다. 성남에 위치한 지하철 8호선 수진역 지하상가에 가면 항상 깔끔하게 다린 셰프복을 입고 우렁찬 목소리로 손님을 맞는 강예수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1926년생인 강 할아버지는 지난 30여 년간 돈가스만 만들어왔다.

    ‘할아버지 돈가스’는 특유의 소스로 유명하다. 토마토, 당근, 양파 등의 채소와 과일을 넣고 3시간 이상 푹 고아 만든다는 특제 소스가 바로 이 집 돈가스의 비밀. 새콤달콤한 맛의 소스가 담백하고 부드러운 고기와 궁합을 이루어 입 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이 소스의 제조법은 ‘며느리에게도 말 못하는’ 30년 노하우가 담긴 그만의 비밀.

    그의 돈가스집은 원래 서울 잠실에 있었다. 아니, 거슬러 올라가면 시작은 부산이었다. 미군부대에서 식당 매니저를 하면서 익힌 돈가스 요리법을 가지고 1969년 처음 돈가스집을 열었던 곳이 부산이었다. 그러다 80년대 초 서울 잠실로 올라왔다.



    강 할아버지가 지금의 자리에서 돈가스를 만든 것은 9년 전. 90년대 초반 잠실을 떠난 그는 5~6년을 쉬다가 97년에야 지금의 자리에 다시 할아버지 돈가스를 열었다. 혈기 왕성한 70대 노인(?)의 5~6년 동안의 공백. 그에게는 그만한 아픔이 있었다.

    “마누라가 갑자기 죽어버렸어예. 모든 게 귀찮더라고. 한겨울에 거제도로 내려가서는 꼬박 2년간 낚시만 하고 살았어예. 고기 잡아서 먹고 밤 되면 자고, 그러다가 죽을라고 했지예. 그란데 그기 잘 안 됩디더. 사람들도 그립고 돈가스도 그립고....”

    얼마 전부터 강 할아버지에게는 수제자도 한 명 생겼다. 그의 장남이 가업을 잇겠다며 소매를 걷고 나선 것. 5남매를 둔 그는 장남의 생각이 기특해 기꺼이 수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그의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도 어김없이 아침 5시30분이 되면 가게에 나와 직접 소스를 만든다. 그래야 아침 10시에 가게를 열 수 있다고 80세가 넘은 그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강 할아버지는 “나이 먹어서도 열심히 일하는 거 보여줄라고 하는 깁니더. 내 몸이 멀쩡한데 와 자식들한테 기대고 살겠는교. 나이 먹어서 할 일 없어 소일하는 사람들 보면 대부분이 나보다 어립디더. 와 그라고 사는지 답답해예. 기사를 쓰게 되면 꼭 써주이소. 열심히 일해야 희망도 생기고 건강도 생긴다고예”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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