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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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염기훈, ‘신예’ 김민재가 실망의 벽을 부술까?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입력2017-09-19 1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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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한국은 세계 최고 공격수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만났다. 앞서 그리스를 잡았기에 믿는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1-4 완패. 염기훈(34)의 빗나간 왼발 슈팅이 찬물을 끼얹었다. 사람들은 그의 전매특허인 왼발 대신 오른발이 나갔어야 한다며 손가락질했다. ‘왼발의 마법사’는 그렇게 ‘왼발의 맙소사’로 추락했다. 이후 염기훈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았다. 소속팀 수원삼성블루윙즈에서는 대단할지 몰라도 국가대표팀에서는 제구실을 못한다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그로부터 7년 뒤 축구 국가대표팀은 벼랑까지 내몰렸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전격 경질하며 비상체제로 돌아섰다.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3위 우즈베키스탄과 4위 시리아의 추격이 거셌다. 남은 이란전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삐끗한다면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될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프로에 갓 데뷔한 신인 김민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일었다. 탁월한 재능을 갖췄다 해도 도박을 걸 타이밍이 아니라는 지적이 꼬리를 물었다.

    ‘안 된다’는 지적을 당한 두 선수가 해냈다. 베테랑 염기훈이 이끌고 신예 김민재가 밀었다. 마지막 최종예선 경기인 우즈베키스탄전에서였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이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며 본선 직행권이 주어지는 2위를 사수했다. 졸전이란 비난을 받았지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대업 달성으로 한숨 돌렸다. 지금까지 전 세계 통틀어 6개국만이 이룬 성적이다. 



    염기훈, ‘송곳 왼발’ 다시 빛 발할까

    통상 국제대회는 교체 카드 수를 셋까지 둔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모두 마찬가지다. 감독은 경기 양상을 좌우할 조커 싸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고심 끝에 만지작거리던 패를 빼 든다. 단, 확률이 높지는 않다. 막 투입된 선수가 이질감 없이 녹아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수 교체가 성공하면 ‘용병술의 대가’ 등 거창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데, 그만큼 성공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9월 6일 대표팀은 오랜만에 교체 효험을 봤다. 답보 상태에 빠진 우즈베키스탄과 경기 후반전. 신 감독은 염기훈 카드를 제시했다. 이란전에서 아껴뒀던 측면 공격 옵션을 마침내 선보인 것. 그러자 팀 전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공을 잡은 염기훈이 가속을 붙였다. 이어 왼발로 공을 배달했다. 목적지는 상대 페널티박스 안. 비로소 득점할 수 있는 지역을 점유했다. 상승곡선을 탄 대표팀은 종료 직전까지 슈팅 세례를 퍼부었다. 골로 결정짓지 못한 아쉬움은 있어도, 신 감독이 부임한 후 치른 두 경기 180분 가운데 가장 속 시원하던 시간대다.

    염기훈은 몸소 두 가지 명제를 증명했다. 하나는 ‘꼭 해외파가 답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잊힌 베테랑도 해낼 몫이 있다’. 한국 선수들은 박지성, 이영표 등을 필두로 유럽 리그에 진출했다. 선진 무대 경험이 축구 발전으로 이어지리란 기대가 샘솟았다. 하지만 해외파-국내파란 이분법적 분류도 함께 가져왔다. 일종의 계급처럼 굳어진 탓에 맹활약 중인 국내파가 과소평가되는 일이 벌어졌다. 소속팀에서 출전 횟수가 적은 해외파에 ‘빛 좋은 개살구’란 꼬리표가 붙었고, 대표팀 화합을 망친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염기훈은 이러한 균열 속에서 건강한 경쟁을 꿈꾸게 했다.

    그뿐 아니다. 리더십 측면에서 팀 중심을 재편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 홍명보 감독은 20대 중·후반이던 2012 런던올림픽 세대로 라인업을 꾸렸으나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위기에서 조직을 지탱할 대들보가 없었다는 평가가 따랐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염기훈은 이 대목에서 기대감을 일으켰다. 본선행을 확정 지은 뒤 “어린 선수들이 실력 있는 것은 맞다. 다만 경기 운영 및 경기장 안에서 한 발 더 뛰는 모습은 부족해 보였다. 내가 과거 대표팀에서 뛰면서 지성 형, 영표 형에게 배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그의 인터뷰가 그랬다.



    김민재, 수비진서 지분 확보

    염기훈이 돌아온 사이, 만 스물인 김민재는 막 첫발을 뗐다. 그 어떤 감독도 중앙 수비진의 잦은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개인 능력이 빼어나야 함은 물론, 파트너와 호흡까지 들어맞아야 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 번 짠 조합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것도 그 때문. 더욱이 월드컵 본선 진출이 걸린 경기에 A매치 데뷔도 안 한 풋내기를 내세우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었다. 대형사고라도 친다면 향후 선수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나 신 감독은 이 모든 우려를 감수했다.

    김민재는 괜찮은 수비수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189cm 신장으로 압도적인 피지컬을 과시했다. 기본 파워에 탄력까지 갖춰 준수한 스피드를 자랑했다. 그러나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고 치켜세우기엔 모호한 감이 있었다. 3년 전 19세 이하(U-19) 대표팀 소집 훈련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그해 AFC U-19 챔피언십 본선에 나가지 못해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킬 기회가 없었다. 상대 공격수에게 무리하게 달려들고, 침착한 패스보다 공을 뻥뻥 차내는 플레이가 보완할 점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이후 그는 빠르게 성장했다. 수원공고 졸업 뒤 연세대에서 1년 반 동안 뛰며 수비수 세계에 눈을 떴다. 이어 택한 전북현대모터스 입단은 인생을 바꾼 한 수가 됐다. 훌륭한 선배 수비수들을 보며 배웠고, 뛰어난 동료들과 호흡하면서 수준 높은 축구를 체화했다. 뱃심 좋은 성향 덕에 적응 속도는 최고조에 달했으며, 프로 경기에서 쌓은 경험치가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 복수의 축구 전문가는 가장 주목할 만한 K리그 신인으로 주저 없이 김민재를 꼽는다.

    대표팀 데뷔도 성공적이었다. 김민재는 제 장점을 살려 능숙하게 해냈다. 이란전에서는 김영권과 짝을 이뤘고,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스리백과 포백 혼용 속 김영권, 장현수 등과 수비 조직을 구축했다. 두 경기 연속 무실점이란 성과엔 김민재의 지분도 꽤 된다.

    대표팀은 현재 과도기에 있다. 내년 월드컵 무대에 누가 나설지 예측 불가한 상황. 태극마크를 잠시 내려놨던 염기훈도, 이제 막 프로 맛을 본 김민재도 이 새로운 판세를 이끌려 한다. ‘안 된다’던 벽을 부수고 또 다른 앞날을 펼친 두 선수에게서 2018년 6월의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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