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6

2014.12.08

흑인 골퍼 찾기 힘든 이유가 있다

  • 남화영 ‘골프다이제스트’ 차장 nhy@golfdigest.co.kr

    입력2014-12-08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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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을 휩쓸고 있는 흑인 선수가 유독 골프에는 별로 없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여성으로도 우즈의 사촌동생 샤이엔 우즈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왜 그럴까.

    먼저 골프는 미국에서 일반 중산층이 즐기는 레저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인종장벽이 꽤 높다. 특히 흑백갈등이 심했던 미국 남부에서 흑인의 경우 골프선수가 되거나 회원제 클럽에 가입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백인 사교집단인 회원제 골프장이 인종차별을 해왔기 때문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도 롤리에 있는 캐롤라이나컨트리클럽(CCC)은 1910년 개장한 코스로, 지난해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사상 처음 흑인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미국 최대 전력회사 듀크에너지의 힐다 피닉스 부회장 부부가 회원 신청을 했기 때문에 골프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피닉스는 듀크에너지 창사 이래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부회장직에 오른 인물이다.

    우즈 역시 흑인으로 불리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1997년 마스터스 우승 뒤 출연한 TV 프로그램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자라면서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란 말을 자주 들었으며 그때마다 거부감을 느꼈다”면서 자신을 ‘캐블리내시안(Cablinasian)’으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코카서스 백인과 흑인, 인디언, 아시안의 영어 머리글자를 혼합해 그가 만든 신조어였다. 우즈는 자신의 아버지가 백인과 흑인, 인디언 혼혈이고 어머니가 태국인이라 자신은 태국, 중국, 흑인이 각각 4분의 1, 백인 8분의 1, 아메리카인디언 8분의 1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우즈에 이은 흑인 선수라고는 2011년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투어를 뛴 조지프 브람렛이 유일하다. 우즈의 스탠퍼드대 후배이기도 한 브람렛은 그러나 2012년부터 2부 대회인 웹닷컴투어에서 뛰고 있다.



    흑인 골퍼 개척자는 올해 92세인 찰리 시포드다. 반세기 전만 해도 흑인은 프로대회 출전이 아예 금지됐다. 당시 흑인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는 상금 규모가 작은 지역 투어나 니그로내셔널오픈 등 흑인들만의 대회뿐이었다. 시포드 같은 선구자는 여러 차별을 겪어야 했지만, 재능은 탁월했다. 그는 1952년부터 니그로내셔널오픈에서 5년 연속 우승하기도 했다.

    PGA투어는 1960년 백인만이 PGA 멤버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을 바꿨고, 시포드는 이듬해인 61년 흑인 최초로 그레이터 그린스보로 오픈에 출전했다. 훗날 자서전에서 “당시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고 회고했다. 시포드는 불굴의 의지로 67년 PGA투어인 그레이터 하트포드 오픈에서 흑인 최초로 우승했고, 69년 로스앤젤레스오픈에서 2승, 75년 52세 나이로 시니어챔피언십에서도 1승을 올렸다. 2004년에는 흑인 최초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리고 11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아흔둘 고령인 시포드는 이날 휠체어에 앉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눈물을 글썽였다. 우즈가 첫아들 이름을 ‘찰리’로 지은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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