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2

2017.01.18

골프의 즐거움

크고 투박한 손 정교하고 섬세한 샷

손이 만드는 마술

  • 남화영 헤럴드경제 스포츠에디터 nhy6294@gmail.com

    입력2017-01-16 17: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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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여주시 블루헤런골프클럽(GC)의 스타트하우스 쪽 통로에는 이 골프장에서 매해 열리는 하이트진로챔피언십 역대 챔피언의 핸드프린팅 액자가 걸려 있다. 1회 대회 이후      3연패한 강수연부터 2015년 챔피언인 전인지까지 빠짐이 없다. 이 골프장이 골퍼들의 핸드프린팅을 액자로 걸어두고 기념하는 이유는 샷을 할 때 손이 그만큼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립을 잡을 때나 스윙 과정에서 손이 약간만 비틀어져도 결과는 예측할 수 없게 된다. 프로 선수의 손은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거나 손가락 껍질이 벗겨지고 굳은살이 잡혔다 없어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다. 그러다 보니 프로 선수의 손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다.  

    타이거 우즈는 전성기 시절 오른쪽 중지 중간 마디에 테이핑을 했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물집이 생기거나 피부가 딱딱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 아니면 단순히 행운을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투어 81승을 달성한 샘 스니드는 항상 정원 손질용 장갑같이 생긴 큰 장갑을 끼고 필드에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그 정도로 투박하고 큰 손을 가진 그가 ‘어린 새가 다치지 않을 정도로 그립을 쥔다’는 ‘가벼운 그립론’을 남긴 것은 역설적이다.

    골프 전문기자 생활을 30년 이상 한 제리 타디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널드 파머와 처음 악수했을 때 충격을 이렇게 회고했다. “손이 얼마나 크던지, 두꺼운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가 내 손을 감싸는 것 같았다.” 파머는 키는 보통이지만 장갑은 XL 사이즈를 꼈다. 그만큼  큰 손을 가졌다. 파머는 “그립을 가볍게 쥐려고 노력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스니드의 ‘가벼운 그립론’을 반박했다. 우즈에 비견되는 1930년대 슈퍼스타 월터 헤이건은 “큰 손과 발을 가졌지만 두뇌는 없는 사람을 데려오게. 내가 그를 골퍼로 만들어줄 테니”라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그만큼 골프에서 손의 감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이다.

    그래서일까. 골프 선수들은 손을 관리하는 데 지극 정성을 다한다. 마스터스 2승, 브리티시오픈 2승을 거둔 잉글랜드의 대표 골퍼 닉 팔도는 월요일마다 손톱을 깎는 습관이 있었다. 주말에 열리는 본선 3, 4라운드 경기를 위해서였다.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한 후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성공해 메이저대회 9승, PGA투어 63승을 일군 벤 호건은 손가락에 기(氣)를 불어넣어야 한다며 진저에일(생강 맛이 나는 청량음료)을 마시곤 했다. 의사들은 진저에일에 이뇨 효과가 있어 몸에 남은 과도한 체액을 배출하고 손에 날렵한 느낌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시골신사’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 멋쟁이 골퍼 진 사라센은 시합에 나가기 전 항상 따뜻한 물에 손을 씻었다. 따듯하고 섬세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결벽증 때문인지, 손을 보호할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빌리 캐스퍼는 악수할 때 검지와 중지 등 2개 손가락만 썼다. 그런 선수가 의외로 여럿 있었다. 치치 로드리게스, 프레드 커플스, 리 트레비노, 레이먼드 플로이드 등은 두 손가락만으로 악수하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손의 장애를 극복하고 우승한 사례도 많다. 1931년 US오픈에서 우승한 빌리 버크는 왼쪽 새끼손가락과 약지(넷째 손가락)가 없다. 한국 프로 골퍼 최호성도 약지 끝마디가 없지만 한일 골프투어에서 3승을 거뒀다. 전인지는 2014년 에비앙챔피언십을 위해 출국하기 하루 전날 오른쪽 엄지를 아홉 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었지만 절치부심한 끝에 이듬해 대박을 터뜨렸다. 박인비는 지난해 손가락 인대부상으로 고생하면서도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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