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5

2016.07.06

골프의 즐거움

좌충우돌 3박4일… “엄마의 나라라 좋았다”

한 영국 소녀의 한국여자오픈 도전기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nhy6294@gmail.com

    입력2016-07-04 11: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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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나라에서 열린 최대 메이저 프로골프대회에 아마추어 선수가 초청받는다는 건 대단히 감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최근 내셔널타이틀로 열린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6월 16~19일)에 대만, 중국, 홍콩 선수와 함께 영국 선수가 한 명 출전했다. 올해 19세인 인시 메멧(Inci Mehmet)이 주인공으로, 그는 유럽 골프랭킹 40위인 영국 국가대표 선수다. 4세 때 처음 클럽을 잡은 후 11세부터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구력은 9년이다.

    한국인 어머니 박숙경 씨는 “인시가 골프를 하기로 결심한 뒤 다른 레슨을 모두 접고 골프에만 몰두했는데,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밤 늦게까지 모든 공을 다 치고서야 집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표현력이 뛰어난 인시는 3년 전 자신의 골프 일상을 찍은 3분짜리 동영상(제목 ‘I’m Who I am’)을 만들어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다. 그 동영상을 본 나이키골프가 인시를 후원하기로 결정했고, 트레이너까지 붙여줬다. 지난해 브리티시오픈 기간에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함께 라운드를 하며 관련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인시의 롤모델은 우즈, 로리 매킬로이, 조던 스피스다. 호쾌한 스타일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마치 영국판 미셸 위를 보는 듯하다.    

    대한골프협회(KGA)로부터 한국여자오픈 초청 e메일을 받은 인시는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출전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냈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흔쾌히 승낙해줄지 몰랐기 때문. 한국 대회 출전은 2011년 제주 레이크힐스제주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일송배 한국여자 아마추어선수권에 초청된 이래 두 번째다. 어머니가 나고 자란 나라에서 열리는 가장 큰 프로대회인지라 야심도 컸다. 첫날인 6월 16일은 골프장에서 하우스캐디를 고용했다. 하지만 영국과 야드, 미터의 축적이 달라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한국말을 배웠지만 코스에서 처음 만난 캐디와 소통하는 데는 어려움이 컸다. 결국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1라운드를 4오버파 76타로 마쳤다.  

    그날 저녁 인시는 친한 오빠 이상준 씨에게 “그냥 골프백만 들어줘”라며 캐디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이상준 씨는 골프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이다. 어렸을 때 4개월간 골프를 배운 게 전부였다. 군 입대 때문에 서울에 머물던 그는 결국 대회 둘째 날인 6월 17일 친척 집에서 골프화를 빌려 신고 캐디로 나섰다. 그린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선수 혼자 그린 라인을 살피고 공을 닦는 광경이 상상되는가. 심지어 칩샷 상황에서 이씨가 깃대를 그대로 잡고 있기도 했다. 공이 굴러 핀에 부딪친다면 벌타를 받아야 하는 위기 상황. “오빠, 빼. 핀 빼.”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 인시는 이후 이씨에게 “그린에 아예 올라오지 마”라고 했다. 초보 캐디와 억척 선수가 라운드를 마쳤을 때 스코어는 9오버파 153타로 늘었다. 다행히 인시는 턱걸이로 3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날 밤 늦게 어머니의 지인인 윤성근 김대중평화센터 노벨상 15주년기획위원이 전화를 걸어와 캐디를 자청했다. 골프 구력 20여 년에 싱글 핸디캡인 그가 주말을 이용해 생애 처음으로 캐디 일에 도전한 것. 그는 “선수의 골프백을 처음 메니 어깨에 피멍이 들 정도로 힘들고 프로대회에서 캐디의 구실과 룰을 잘 몰라 긴장했지만 4라운드는 좀 더 편하고 익숙해졌다. 다음에 또 캐디 일을 하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고 퍼팅 라인도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69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인시는 기뻐했고, 캐디 구실을 해준 이씨와 윤 위원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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