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4

2003.12.18

‘숫자와 기록’ 취미냐 노예냐

  • 이조년/ 골프칼럼니스트 huskylee1226@yahoo.co.kr

    입력2003-12-12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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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와 기록’  취미냐 노예냐

    골프 마작 섹스는 공히 숫자로 경쟁심을 자극한다.

    삶에서 가장 즐거운 것 세 가지로 앉아서 하는 마작, 서서 하는 골프, 누워서 하는 섹스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물론 재미로 하는 얘기일 테지만 마작 골프 섹스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숫자, 즉 다시 말해 기록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숫자는 인간으로 하여금 도전정신과 목표의식을 갖게 한다.

    골프는 숫자가 없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기록경기다. 골프만큼 수치를 따지는 스포츠로는 야구가 있다. 단순히 스코어뿐만 아니라 아주 다양한 통계치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골프요, 야구다. 그래서 두 스포츠가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작이 앉아서 하는 것 중 으뜸이라고 하는 까닭도 바로 복잡한 패와 숫자 때문이다. 마조의 패는 모두 40매로 일명 사문(四門)이라고 한다. 청나라 때 마조의 패에서 한 종류를 없애고, 대신에 또이패를 만들어 마작의 패는 총 60매로 늘어난다. 경우의 수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중국인들은 밤새는 줄 모르고 마작을 즐기게 됐다. 한국 공군 파일럿 중 상당수가 마작을 즐긴다고 한다. 계속되는 대기 상태에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선택한 것이 마작이다. 그래서인지 민간항공기 기장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취미 역시 마작과 골프다.

    원시시대 단순히 종족을 보존하는 수단이던 섹스 역시 숫자가 발견되면서 시간과 횟수를 따지는 남성들간에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변강쇠가 되고픈 꿈이 숫자에서 비롯된 셈이다. 남성들이 스태미나 식품이라면 두말 안 하고 먹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몇 번 더, 몇 분 더’와 같은 숫자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일 것이다.



    ‘섹스 기록’에 도전한 희대의 사건(?)도 있었다. 이제는 섹스가 스포츠화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지난해 폴란드에서는 섹스와 관련한 대기록이 수립됐다. 떼를 지어 섹스를 하는 것을 ‘갱뱅(Gangbang)’이라고 하는데 한 여성이 상대한 남자의 수를 늘리는 게임이 벌어진 것이다.

    폴란드 출신의 포르노 배우 클라우디아 피그라는 하루 동안 무려 646명의 남자와 성행위를 했다. 기존의 기록은 미국의 포르노 스타 휴스턴이 1998년 하루 동안 620명의 남자와 성행위를 한 것이다.

    한국 골퍼들이 골프경기에 열정적인 것도 아마 숫자 때문일 것이다. 4계절 잔디가 푸른 동남아시아나 아무 때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미국 유럽에 비해 라운드할 수 있는 횟수, 즉 숫자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한 주에 몇 번 골프를 치느냐’ ‘몇 타를 치느냐’ 하고 많이 묻는다. 대부분 골퍼들의 바람은 일주일 동안 한 번이라도 더 필드에 나가고, 스코어를 더 줄이는 것일 게다. 바라건대 숫자와 기록의 노예가 돼 골프를 치지 말고, 숫자와 기록을 즐기며 삶을 재충전하기 위해 라운드에 나섰으면 한다. 그래야만 골프가 최고의 레저스포츠로 오랫동안 한국인들에게 사랑받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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