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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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최경주 가는 길은 ‘골프 역사’

  • 문승진/ 굿데이신문 골프전문기자 sjmoon@hot.co.kr

    입력2003-12-05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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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골프 역사는 그에 의해 씌어질 것이다.”

    미국의 한 골프평론가가 ‘탱크’ 최경주(33·슈페리어)를 극찬하면서 한 말이다. 한국 골프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최경주는 골프잡지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155만부)를 자랑하는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12월호의 한 면을 장식했다. 이 잡지는 매달 ‘더 다이제스트’라는 코너에서 화제의 선수를 대형사진과 함께 소개하는데 최경주가 2003년 마지막 호의 주인공이 됐다.

    관련 기사에서 최경주는 ‘한국 골프의 개척자’라는 영광스런 수식어로 표현됐다. 최경주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연합팀의 일원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팬코트리조트 더 링크스코스(파73.7489야드)에서 열린 2003 프레지던츠컵(미국과 국제연합팀 간 남자프로골프 대항전)에 출전했다. 최경주는 이 ‘별들의 전쟁’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유럽을 제외한 비(非)미국 선수 12명으로 구성되는 국제연합팀과 같은 수의 미국선발팀이 맞대결하는 이 대회는 미국·유럽 간 대항전인 라이더컵, 국가대항전인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대항전으로 꼽히는 특급 골프 이벤트. 특히 개최지 국가수반이 명예의장직을 맡을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게리 플레이어가 이끈 국제연합팀에는 올 시즌 미프로골프협회(PGA) 투어 상금왕 비제이 싱(피지)을 비롯해 어니 엘스·레티프 구센·팀 크라크(이상 남아프리카공화국), 닉 프라이스(짐바브웨), 마이크 위어(캐나다), 로버트 앨런비·피터 로나드·애덤 스코트·스티븐 리니·스튜어트 애플비(이상 호주) 등이 뽑혔다.



    잭 니클로스가 수장인 미국팀에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데이비드 러브3세, 필 미켈슨, 프레드 펑크, 짐 퓨릭, 제이 하스, 찰스 하웰 3세, 제리 켈리, 저스틴 레너드, 케니 페리, 데이비드 톰스 등이 포함됐다. 이처럼 내로라하는 선수들 가운데 최경주의 이름이 포함됐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최경주의 이름 앞에는 항상 ‘첫번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1999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PGA투어 풀시드를 획득한 데 이어 지난해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PGA투어 우승을 일궈냈다. 또한 그는 첫 한국인 유러피언투어 우승자이기도 하다. 그는 “나는 PGA투어에 나갈 때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골프선수이기 이전에 나는 한국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해왔다.

    PGA투어가 개최되는 골프장 입구에는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출신 국가 국기가 게양된다. 최경주는 한국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민간외교관’인 셈이다. 완도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 씨름, 투창 등의 운동을 하며 일찍부터 뛰어난 운동신경을 보였다. 중학교 시절 역도선수로도 활약했던 그는 완도 수산고등학교 1학년 때 체육교사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했다.

    1993년 프로테스트를 단번에 통과하며 프로가 된 그는 95년 팬텀오픈에서 첫승을 거뒀으며 96년과 97년에는 2년 연속 상금랭킹 1위에 올랐다. 이어 99년에는 일본프로골프협회(JPGA) 투어에 진출해 기린오픈과 우베고산오픈을 제패했으며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에서 컷오프를 통과했다. 99년 그는 주위의 우려를 뒤로 한 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결국 2002년 5월6일 PGA투어 컴팩클래식에서 그 어느 한국인도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을 떠나 한국인의 자부심과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기록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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