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3

2013.04.15

몇 달 만에 환갑청년? ‘숙성의 미학’을 기억하라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3-04-15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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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만에 환갑청년? ‘숙성의 미학’을 기억하라
    ‘젊어지는 샘물’이라는 전래동화가 있다.

    옛날 깊은 산골에 마음씨 착한 노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숲으로 나무를 하러 간 할아버지가 고운 새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새를 따라갔다가 작은 옹달샘을 발견했다. 마침 목이 말랐던 할아버지는 그 샘물을 마셨는데, 놀랍게도 젊은이로 변했다. 할아버지의 변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할머니도 그 옹달샘으로 가 샘물을 마시니 역시 젊은 처녀로 변했다.

    세상의 모든 전래동화가 그렇듯 오랜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데는 이야기 내용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요소가 담겼기 때문이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늙지 않고 항상 젊게 살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이런 소망은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가도 사그라지기는커녕 갈수록 강화되는 느낌이다.

    요즘 우리나라 상황을 보더라도, 모든 사람이 마치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는 경쟁에라도 뛰어든 것처럼 온갖 노력을 다한다. 연세가 어느 정도 든 분도 과거에는 생각도 못했을 다양한 운동을 통해 체력을 유지하려 애쓰는가 하면, 최근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주름을 없애는 시술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또 복장이나 생활태도에서도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노인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흐름에 젊은 사람이라고 동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동안신드롬’이라는 현상이 유행처럼 사회를 휩쓸면서 가급적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신의 진짜 나이보다 조금이라도 많아 보인다는 평가는 어느덧 치명적인(?) 악담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만 것이다.



    젊게 보이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

    그러나 수십 년 전만 해도 웬만한 시골 동네에서는 40대만 돼도 뒷짐을 진 채 느릿느릿 걸어 다니면서 자랑스럽게 어른 행세를 했다. 기름진 얼굴에 배까지 볼록 나와 있으면 금상첨화였다. 그때만 해도 어른스럽다는 것, 나이가 들었다는 것, 노숙하고 노련하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대접받는 중요한 평가기준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환갑청년 시대가 오면서 이제는 회갑연을 공개적으로 여는 것마저도 어색한 분위기가 됐다. 바야흐로 나이가 들었다는 것, 아니 들어 보인다는 것은 남에게 인정받아서도, 본인이 인정해서도 안 되는 사회적 금기어가 된 셈이랄까.

    사실 젊음이 좋다는 데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동식물 세계에서도 세월의 부침에 시달린 쇠퇴기 모습보다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전성기의 활짝 핀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더구나 젊게 보인다는 평가 자체가 중요한 경쟁 무기 가운데 하나인 현대사회에서는 젊다는 것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훨씬 비중 있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젊게 보인다는 것이 외형적 모습을 떠나 실제 한 개인의 건강 상태와도 직결된다면 그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람이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가 부정적이기만 할까. 그래서 앞으로의 사회는 지금보다 더욱더 어떻게 해서든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인다는 것에 계속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게 될까.

    물론 이런 철학적 질문에 어느 누구도 명쾌하게 대답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정답이라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작용이 있으면 언젠가는 반작용도 있을 수 있다. 마치 문명 발달로 탄생한 패스트푸드의 세계에서 오히려 슬로푸드의 개념이 인기를 끌고, 필요에 의해 생긴 초스피드 경쟁사회에서 역설적으로 느리게 생활하는 문화가 각광받듯이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득 술의 숙성 과정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전통술도 그 종류가 많지만,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술이 존재한다. 웬만한 애주가라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술 종류가 비일비재하다. 사실 세상 시름과 스트레스를 잊으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잔하는 사람에게는 그 많은 술 종류를 다 아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지도 모른다.

    몇 달 만에 환갑청년? ‘숙성의 미학’을 기억하라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술 가운데 어떤 종류의 술이 고급 술이냐를 따지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물론 술을 만드는 재료나 방법도 중요한 판단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진짜 정답은 바로 술의 숙성 과정에 있다. 말하자면 술이 숙성 과정을 거쳤느냐 거치지 않았느냐, 또 숙성 과정을 거쳤으면 얼마 동안 어떤 식으로 거쳤느냐에 따라 고급 술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숙성 과정을 거치는 술 가운데 가장 유명한 술은 위스키와 코냑이다. 이 두 술은 오크통에서의 숙성 과정을 통해 다른 술과는 차원이 다른 최고급 술로서의 품격과 기품을 지닌다.

    그런데 나무통 숙성 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술로 하여금 세월의 풍상을 겪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스키와 코냑은 일단 발효와 증류라는 기본 과정을 거친다. 이때 위스키처럼 곡물로 만들든, 코냑처럼 포도로 만들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투명한 색의 거칠고 강렬한 젊은 술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인간 사회에서 아이가 태어나 어엿한 청년으로 변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발랄하지만 여리고 어린 투명한 색의 술이 나무통 속에서 짧게는 수년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생활하며 거친 나무 표면으로부터 끊임없는 자극과 상처를 받아 진정한 맛과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가 돼서야 비로소 위스키와 코냑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릴 자격을 얻는다.

    이는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인생과도 전혀 다를 바 없다. 거친 나무통은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사회와 다를 게 없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래 숙성된 술은 인생의 본뜻을 체득한 멋있는 중·장년이나 원숙한 노인과 같은 셈이다.

    그런데 이들 술이 나무통의 좋은 향과 오묘한 풍취를 받아들이면서 매력적인 호박색과 함께 진정한 깊은 맛을 지니게 되는 동안 정작 그 자신은 세월의 풍상에 어쩔 수 없이 몸이 점점 오그라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즉, 술을 숙성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원래의 양이 줄어드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 과학적 용어로 간단히 증발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낭만적으로는 흔히 ‘천사에게 바치는 몫(angel’s share)’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또한 우리 인생과 흡사하다. 나이가 들면서 술이 증발하듯이 우리 몸도 자연스럽게 약해지고 늙어가게 마련이다. 비록 그것이 자연적 퇴행인지, 아니면 천사에게 바치는 몫이라는 말대로 어딘가에 바쳐지는 신성한 되돌림인지 약한 인간으로서는 알기 어려울지언정 말이다.

    지나친 집착과 욕망은 금물

    그렇다고 뭐 어떤가. 오늘날 우리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술은 결국 노쇠한 술이 아닌가. 비록 세월의 풍상에 육신은 약해지고 오그라들었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세월의 깊이야말로 격조 있는 고급 술의 가치이자 우리 인생의 진정한 멋일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젊어지는 샘물’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하루는 인근의 욕심쟁이 할아버지가 젊어지는 샘물 이야기를 듣고 샘물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젊어지려는 욕심이 지나쳐 샘물을 있는 대로 마시다가 그만 갓난아기로 변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착한 부부는 그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 욕심 없는 착한 아이로 키웠다.

    자 어떤가! 젊음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어떤 경우에라도 나무랄 수 없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욕심쟁이 할아버지처럼 지나친 집착과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자칫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숭고한 세월의 흐름을 망각한 철없는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진정한 젊음 그 자체를 위해서라도 ‘숙성의 미학’이 지닌 참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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