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4

2012.11.26

선천적 약골이라도 운동하면 건강체질 된다

운칠기삼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2-11-26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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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천적 약골이라도 운동하면 건강체질 된다

    ‘몸짱’이라고 불리는 김원곤 교수.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활약한 중국 문학가 포송령이 쓴 ‘요재지이(聊齋志異)’는 중국판 전설의 고향이라고도 부르는 중국 괴기문학의 걸작이다.

    이 책을 보면,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보란 듯이 과거급제를 하는데 정작 자신은 늙도록 급제하지 못해 인생 패배자가 된 한 선비의 이야기가 나온다. 선비가 답답한 나머지 옥황상제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묻자, 옥황상제는 갑자기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러 술내기를 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면서 선비에게 만일 정의의 신이 술을 더 많이 마시면 선비의 따짐이 옳은 것이지만, 운명의 신이 더 많이 마실 경우에는 세상사가 다 그렇다 생각하고 체념해야 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아주 특별한 장수가계 존재

    이윽고 술을 마시게 했고, 그 결과 정의의 신이 술을 세 잔밖에 마시지 못한 반면 운명의 신은 술을 일곱 잔 비웠다. 이에 옥황상제가 선비에게 “보라, 세상사는 반드시 정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봤듯이 오히려 운명의 힘이 더 세다. 너도 그 점을 수긍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의 신이 술 석 잔을 마셨다는 사실을 잘 새겨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운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고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오늘날 회자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어원이다. 호사가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과연 이 고사가 가르치는 운칠기삼이 옳으냐, 아니면 노력 또는 능력을 좀 더 강조하는 기칠운삼(技七運三)이 인생의 정답이냐 하는, 즉 해답이 있을 수 없는 논쟁을 계속 벌인다.



    그런데 사실 이 운칠기삼 개념이야말로 장수와 건강, 그리고 그에 대한 운동의 영향과 효과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

    건강과 장수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요즘, 국내외 장수자에 대한 기사가 종종 매스컴을 장식한다. 그중 가장 흔한 내용이 이른바 장수 비결이다. 장수자의 거주지 환경에서부터 개인 활동 방식, 식습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원인이 분석, 소개되곤 한다. 이 기사들은 대부분 장수자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건강 관리법을 지녔으리라는 전제 조건하에서 그들의 모든 생활방식을 장수와 연결해 기술한다. 예를 들어 어떤 장수자가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면 그것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소개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적당한 음주가 장수 비결이라고 해석하는 식이다. 또한 소식하는 경우라면 그것이 곧 장수 비결이 되고, 고령임에도 여전히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장수자라면 음식을 가리지 않는 식습관이 중요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정말 장수에는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만일 있어서 모든 사람이 그 비결을 충실히 따른다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술, 담배를 하고 불규칙한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반드시 단명할까. 거의 매일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과는 담을 쌓은 사람에 비해 장수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세상사뿐 아니라 장수와 건강에서도 그 기본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의 신이다. 이 운명의 신이 더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외투를 입고 등장한 것이 바로 ‘유전’이라는 이름이다. 이른바 장수가계의 존재, 줄담배에 술을 즐기면서도 장수하는 사람의 존재, 운동으로 땀을 흘린 적이 없어도 정신적 여유만으로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의 존재가 바로 유전의 힘이며 그 실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성급한 사람은 “맞아! 그런 것 같아.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어. 새삼스럽게 건강을 위한 노력이 무슨 소용이야”라며 실망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망감에 빠질 필요가 전혀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운명이든 유전이든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실체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운칠기삼 고사에 나오는 옥황상제의 가르침처럼, 우리는 30%라는 정의 또는 노력 영역을 선사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부 호사가 주장대로, 만일 운삼기칠이 맞다면 이는 70%나 되는 영역이다. 그리고 이 영역은 비단 그 자체의 산술적 의미를 떠나 한 사람의 삶 흐름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을 미친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A는 운명(유전) 측면에서 70점 만점에 6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타고났고, B는 55점밖에 타고나지 못했다. 그러나 A는 타고난 혜택에도 노력 영역에서 30점 만점에 10점밖에 얻지 못한 반면, B는 25점을 획득했다. 결과적으로 A는 75점이라는 건강장수 성적을 보인 반면, B는 80점을 보여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유전이 차지하는 70점 중 일정 점수는 노력 점수와 연계되기 때문에 설령 높은 선천적 점수를 타고났다 해도 적절한 관리가 수반되지 않으면 오히려 감점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이는 흔히 말하는 ‘방아쇠 이론’으로, 예를 들어 타고난 70점 중에는 후천적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유지되는 기본 점수가 있고, 적절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 점수가 깎이는 조건부 점수가 있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A의 경우 노력 점수가 더 낮아지면 75점에서 10점이 더 감점돼 60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노력이 타고난 운명 바꿔

    결론적으로, 한 사람의 건강과 장수 여부를 결정짓는 데는 타고난 유전의 힘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후천적 노력도 중요하며, 많은 경우 그러한 노력이 타고난 운명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건강과 장수를 위한 후천적 노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에는 규칙적인 생활, 금연과 절제된 음주, 깨끗한 생활환경, 충분한 휴식 같은 다소 정적인 대처에서부터 적절한 영양 섭취를 수반한 규칙적인 운동 같은 적극적인 대처가 있다. 물론 이러한 대처 방법에 대한 효과는 개인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중에서도 운동은 많은 사람에게서 가장 보편적으로 효과가 검정된 후천적 건강관리 비법이다.

    물론 운동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어느 정도 수반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실행에 옮기기가 가장 어려운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격언이 있고, 또 의지가 적절히 수반된다면 그 고통마저 즐겁게 소화할 수 있으니, 어찌 그 황홀하고도 가치 있는 체험을 미룰 수 있겠는가.

    선천적 약골이라도 운동하면 건강체질 된다
    김원곤 교수 1954년생. 서울대 의대 졸업. 술병 미니어처 수집과 외국어 학습, 육체미 가꾸기가 취미다. 최근 1년 동안 4개 외국어(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능력평가시험에 순차적으로 합격했으며 육체미 누드사진집을 발간해 화제다. 저서로는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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