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1

2004.04.22

목욕하는 여인, 흑심 품은 왕

다윗, 유부녀 밧세바에 반해 동침 … 남편 최전방에 보내 전사토록 한 뒤 후비 삼아

  • 조성기/ 소설가

    입력2004-04-14 1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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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하는 여인, 흑심 품은 왕

    사무엘상 18장을 묘사한 성화 ‘다윗의 승전 퍼레이드’.

    ”인생에서 실패보다 오히려 성공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은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지만, 성공에 도취한 사람들이 이를 곧잘 잊어먹는다. 정치가들의 성쇠와 부침(浮沈)도 그들이 성공했다고 여길 때 조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중국 전국시대 때 진나라 재상을 지낸 채택은 “성공한 곳에는 오래 머물지 말라(成功之下 不可久處)”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도 어린 시절 아버지 밑에서 목동 일을 할 때나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고생할 때는 자기를 다스리는 절제력이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왕이 된 초기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나라가 부강해지고 태평성대가 계속되자 다윗 왕은 그만 자기절제력을 잃고 중죄를 짓는다. 그런 시기에는 대개 정욕으로 인해 큰 실수를 범하게 되는 법이다.

    태평성대 계속되자 절제력 상실 … 일생일대의 큰 실수

    다윗이 최고사령관 요압과 그 부하들, 그리고 전군을 암몬 전투에 투입하고 나서 승전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그러한 죄를 짓는다.



    저녁 무렵 다윗은 왕궁 지붕 위를 거닐다가 저 아래쪽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된다. 왕궁 지붕은 그 어느 집보다 높을 것이고 거기서 내려다보았으니 주변 마을들의 풍경이 한눈에 다 들어왔을 것이다. 목욕을 하고 있는 여인은 멀리서 보아도 심히 아름다운 자태를 하고 있었다.

    그 여인은 목욕을 계곡 같은 곳에서 했을 수도 있고 자기 집 마당에서 했을 수도 있다. 사방으로 둘러처진 울타리나 칸막이가 자기를 가려줄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저 위에서 몰래 내려다보는 시선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했다.

    여인이 벗은 채 목욕하고 있는 광경을 훔쳐보는 것은 남자들에게는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그 흥미는 곧바로 성적 흥분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행위에 맛들이면 관음증(觀淫症)이라는 변태적인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

    다윗 왕도 어쩌면 높은 왕궁 지붕 위를 거닐 수 있는 특권을 교묘하게 이용해 ‘관음’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인은 자주 그곳으로 나와 목욕을 했을 것이고 그때마다 다윗 왕도 왕궁 위를 거닐며 그 여인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를 맛보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장군들과 장병들은 암몬 족속과 치르는 전투를 마무리짓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왕이라는 자는 목욕하는 여인의 모습이나 훔쳐보고 있으니, 나라꼴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마침내 다윗은 신하를 보내어 그 여인에 대해 수소문하도록 했다.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다.

    히브리어로 ‘벤’은 아들이고, ‘밧’은 딸이라는 말이다. ‘벤허’는 허씨 가문의 아들이고, ‘빈(벤이 변한 말) 라덴’은 라덴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밧세바는 세바의 딸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세바’는 가문 이름이 아니라 안식일을 가리킨다. 영어로도 안식일을 ‘세버스(Sabbath)’라고 한다. 안식일은 제7일에 해당하므로 영어의 세븐(seven) 역시 세바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안식일의 딸’이라는 말은 ‘완벽한 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밧세바는 이름 그대로 우선 미모에서 완벽했던 모양이다. 최고 권력자인 왕이 반할 정도니 말이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마침 암몬 전투에 군인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알고 사람을 보내어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밧세바는 월경 중이었다. 밧세바가 수시로 목욕을 하는 이유도 그 사실과 관련이 있었다.

    목욕하는 여인, 흑심 품은 왕

    도나텔로의 ‘다윗상’.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월경 중인 여자는 부정하므로 남자가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피에 대한 기피심리와 위생의 이유로 그런 규정이 생겼을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도 월경 중에는 미관상 이유뿐만 아니라 여성의 자궁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성교를 피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놓고 있다.

    밧세바의 월경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해 부정한 기간이 지난 뒤 다윗은 밧세바를 침상으로 끌어들여 동침했다. 다윗이 동침을 요구할 때 밧세바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화녀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유부녀인 도화녀는 임금이 동침을 요구하자 남편이 죽고 나면 임금의 청을 받아들이겠다고 지혜롭게 거부했다. 그런데 임금이 먼저 죽었기 때문에 도화녀는 임금과 한 약속에서 자유로워졌다. 나중에 남편도 죽어 도화녀는 과부로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 도화녀에게 이제는 남편이 죽었으니 자기와 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귀신이 되고서도 찾아온 것으로 보아 임금이 도화녀에게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알 수 있다.

    밧세바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목숨을 걸고 정절을 지켰던 도화녀와 많은 점에서 대조를 이룬다. 자기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계책을 쓰는 밧세바를 보면, 밧세바가 다윗 왕이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서 일부러 목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한 뒤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일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밧세바는 임신을 하자 그 사실을 곧바로 다윗에게 알려주었다. 임신 사실을 왕에게 알린 밧세바의 속셈을 알 만도 하다.

    다윗은 이에 부담을 느끼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방에서 불러들여 밧세바와 동침하게 함으로써 지금 밧세바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우리아의 아이로 여겨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선지자 나단 지적에 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

    다윗은 사령관 요압에게 친서를 보내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오도록 하고는 전투 상황을 물어보는 척한 뒤 그를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충성스런 우리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왕궁 문을 파수하는 자들과 함께 왕궁을 지켰다. 다윗이 그 사실을 알고 우리아에게 따져묻자 우리아는 나라가 암몬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 어찌 자기 혼자 집으로 가 아내와 동침할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다. 다윗과는 사뭇 다른 우리아였다.

    결국 다윗은 우리아를 죽여 완전범죄를 꾀하기로 했다. 그는 요압에게 또 친서를 보내어 우리아를 최전방으로 보내도록 했다. 요압은 다윗의 지시에 따라 우리아를 적군의 성벽 바로 밑으로 보내 적의 화살에 맞아 죽게 했다. 우리아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조국과 다윗을 위해 장렬하게 순국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우리아가 죽고 밧세바가 남편을 애도하는 기간이 지난 뒤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들여 정식으로 후비로 삼았다. 미망인을 후비로 삼았으니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이 다윗의 계획대로 진행된 셈이다.

    다윗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두 다리를 뻗고 있을 무렵,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왔다. 나단은 다윗에게 못된 부자에 관해 보고했다. 양과 소를 많이 소유한 어느 부자가 손님 대접을 위해 새끼 양 한 마리밖에 없는 가난한 자에게서 그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할 요리로 내어놓았다는 것이다. 다윗은 화를 내며 당장 그 부자를 잡아죽이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나단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오!”

    여기서 다윗이 그 부자에 대해 그렇게 화를 낸 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투사작용(projection)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다윗이 그 부자에게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화를 낸 셈이다. 나단은 죽을 각오를 하고 다윗의 숨은 죄를 폭로했다. 다른 왕 같으면 나단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였을 테지만 그래도 다윗인지라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죄를 통회했다. 그리하여 시편 51편을 비롯한 통회 시편들이 만들어졌다. 죄는 결코 숨길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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