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6

2022.04.22

휴대전화에 ‘아내’로 떠서 받았더니 보이스피싱! [SynchroniCITY]

가족끼리 암호를 정하는 게 도움 돼요

  • 입력2022-04-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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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모 영대 님 제가 중요한 정보 하나 알려드릴게요.

    영대 주식 종목 관련 정보라면 사절입니다.

    현모 ㅋㅋ 제가 그런 정보 드리는 거 보셨어요?

    영대 뭔데요?

    현모 요즘 보이스피싱이 기승이잖아요. 며칠 전 제 남편이 완전 속아 넘어갔어요.



    영대 헉, 정말요?

    현모 다행히 금전 피해를 본 건 아닌데 깜빡 속았다는 거.

    영대 라이머 씨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매주 ‘그것이 알고 싶다’도 챙겨 보는 분이잖아요.

    현모 그러니까요! 절대로 어설픈 속임수는 안 먹힐 사람이잖아요! 며칠 전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한테서 전화가 오더래요. 저를 연락처에 “사랑하는 아내♡”라고 저장해놨는데, 발신자 이름이 딱 정확히 그렇게 뜬 거죠.

    영대 현모 님이 전화를 건 게 아닌데도요?

    현모 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는데, 받자마자 어떤 여자가 막 숨 넘어가게 울면서 “오빠, 오빠” 부르더래요.

    영대 오마이 갓.

    현모 그래서 남편이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똑바로 말해보라고, 어디냐고 물었는데 심지어 그 여자가 자기가 강간을 당했다며 울음을 터뜨리고, 그 순간 다른 남자가 수화기를 뺏어 들더니만 다짜고짜 욕을 하더래요. 자기가 네 와이프 데리고 있다면서….

    영대 헐…!

    현모 당연히 제 휴대전화 번호로 걸려온 전화니까, 남편은 이 모든 상황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피가 거꾸로 솟고 다급해서 당신 누구냐며 같이 욕하고 맞받아쳤더니, 그쪽에서 “와이프 귀 썰어 버리기 전에 말 똑바로 하라”고 하고, 뒤에서는 동시에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꺅” 하고 나더래요.

    영대 어휴 맙소사. 너무 살 떨려요.

    현모 남편도 완전히 겁먹어서는 어버버 말까지 더듬으면서 “잠깐만요. 잠깐만요!!” 소리치고, 상대방한테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하면서 자기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와이프 살리고 싶으면 돈 보내라고, 2억 구해서 입금하라고 그랬다는 거죠.

    영대 하… 저한테 그런 전화가 걸려왔다고 상상만 해도 넘 끔찍한데요.

    현모 남편이 중간부터 통화녹음을 시작해 저도 나중에 파일을 들어봤는데, 제대로 들으면 남자 말투가 약간 어눌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걸 분간해낼 정신이 없었던 거죠. 여자 목소리도 울먹이면서 겨우겨우 말하니까 저인지 아닌지 식별할 수 없고요.

    영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현모 남편이 그럼 돈을 어디로 어떻게 전달해야 하느냐 묻고 대화가 좀 더 오갔는데, 결정적으로 돈 관리를 전부 아내가 한다고…. ㅋㅋㅋ 너무나 솔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상대 흥미가 떨어진 거죠.

    영대 푸하하하하.

    현모 한참 대화하다 저쪽에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마지막에 “와이프한테 지금 바로 영상통화 걸어봐” 이러고 끊더라고요.

    영대 와…. 다행히 그냥 포기한 거네요.

    현모 저 그때 집에 멀쩡히 있었는데, 남편한테 영상통화가 걸려 와서 받았더니 남편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한 채로 첫 마디가 “뭐야! 집이야?” 이러길래 제가 차분하게 그랬죠. “왜, 보이스피싱 전화 받았어?”

    영대 대박….

    현모 암튼 천만다행히 송금 단계까지는 가지 않은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이렇게까지 수법이 진화했다는 게 정말 무서웠어요.

    영대 그게 어찌 가능한 거죠?

    현모 통화기록을 보면 발신번호가 제 휴대전화 번호랑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고 맨 앞 시작이 006820으로 인터넷전화나 국제전화 모양새로 찍혀 있어요. 검색해보니까 이게 요새 등장한 신종 기법인데, 현 시스템상 앞에 010까지 전화번호 열 한 자리가 완벽히 일치하지 않아도 뒷자리 여덟 자리만 같으면 발신자 이름이 같게 표시되는 걸 악용하는 거래요. 그러니까 만약 휴대전화 연락처에 010-abcd-efgh가 ‘안현모’로 저장돼 있다면, 006820010-abcd-efgh로 전화를 걸어도 발신자는 똑같이 ‘안현모’로 표시되는 거죠.

    영대 아…. 몰랐네요.

    현모 게다가 아이폰은 전화 수신 시 화면에 숫자는 아예 안 뜨고 디바이스에 저장된 이름만 뜨니까, 이런 디테일한 차이를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어요.
    영대 아니, 이제까지 보이스피싱 하면 흔히 “엄마 나 휴대폰 고장 났어”, “검찰청입니다” 아니면 “배송지를 입력하세요” 이런 뻔한 버전이라 웬만하면 안 넘어가고 쳐낼 수 있는데,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족 이름으로 전화가 걸려오면 누구라도 걸려들지 않겠냐고요!

    현모 가장 좋은 방법은 얼른 주변에 있는 제3자의 휴대전화로 해당인에게 전화를 걸어 맞는지, 사칭인지 확인해보는 거예요.

    영대 어떤 경우라도 절대 돈부터 입금하지 말고 최대한 침착하게 시간을 끌면서 가족이 맞는지 신원을 증명해달라고 해야겠네요.

    현모 남편 휴대전화에 저장된 제 명칭도 바꾸라고 했어요. ‘아내’ 같은 표현이 들어가면 당연히 타깃 1순위니까, 좀 정이 없더라도 무미건조하게 바꿔버렸어요.

    영대 갑자기 며칠 전 본 영화 ‘서치’가 생각나네요. 몇 년 전 나온 걸 이제야 봤는데, 10대 딸이 실종되는 내용이라 보는 내내 어찌나 심장이 두근거리던지. ㅎㄷㄷ

    현모 전 사실 어릴 때 부모님하고 암호를 정해놨어요.

    영대 어떤 암호~?

    현모 우리만의 신호를 만들어놓은 거죠. 제가 세상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혹시라도 내가 사고를 당하거나 위급한 일에 처해 비밀 사인을 보내야 한다면 그 신호로 소리를 지르겠다고, 반대로 만약 그 신호가 없으면 그건 내가 아닌 거라고 몇 번씩 약속했어요.

    영대 오호~. 군대에서 쓰는 일종의 암구호 같은 거군요!!

    현모 화랑! ㅋㅋ

    영대 담배! ㅋㅋㅋ

    현모 신기한 건 예방 차원에서 부모님에게 혹시 우리 암호 기억하냐고 물어봤더니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인데도요. 고교 독일어과에 갓 입학했을 때라 어렵지 않은 독일어 단어로 정했거든요.

    영대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그리고 저도 부모 된 입장에서 들으니 조금 울컥하네요.

    현모 그죠. 아무리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영화 같은 소리를 해도, 부모님은 결코 가볍게 흘려듣지 않으셨던 거예요.

    영대 옛날 영화 중에 ‘빅’ 보셨죠? 거기 보면 주인공 소년이 갑자기 마법으로 어른 몸만큼 커졌는데, 엄마가 변한 아들을 못 알아봐서 답답해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럴 때도 유용하겠어요.

    현모 ㅋㅋㅋ 맞아요!!! 아마도 그런 영화들의 영향도 있었을 거예요. 진짜로 써먹을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어찌됐든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지 않겠어요?

    영대 그러고 보니 저도 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혹시 우리가 이산가족이 되면 나중에 허벅지에 있는 점으로 서로를 확인하자고 한 말씀이 떠오르네요. 전쟁을 겪은 분이셨으니 터무니없는 제안은 아니었죠.

    현모 ㅠㅠ 슬프네요.

    영대 저도 빨리 아이들이랑 사인을 정해야겠어요!!

    현모 피싱 조심하세요! ㅜㅜ

    (계속)


    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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