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3

2017.11.15

황승경의 on the stage

무대에 오른 살아있는 古典

연극 | ‘1984’

  • 입력2017-11-14 09:35:1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톰 소여의 모험’ 저자인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이란 독자들이 책 제목만 알고 막상 읽지는 않는 작품”이라고 했다. ‘고전(古典)은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고 있고, 읽기도 고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고전소설은 대부분 쉽사리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작가가 심오한 문제의식을 주인공 삶 속에 녹였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고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체로 꼬일 대로 꼬인 사나운 팔자를 타고나고, 그들의 인생여정 또한 독자가 읽기에 불편하기 마련. 

    이러한 독자들의 하소연은 무대공연으로 희석될 수 있다. 무대에서 공연되는 색다른 감각의 고전을 맛보려는 고정 관객 또한 늘고 있다. 

    ‘통렬한 비판’의 대명사인 작가 조지 오웰은 설익은 자신의 과거와 동료들의 왜곡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식 행위에도 어김없이 예리한 칼날을 겨눴다. 오웰이 사망하기 전 해(1949) 출간된 ‘1984’는 그의 소설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제목처럼 1984년이 시대적 배경인 이 소설은 대표적인 디스토피아(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극대화해 현실을 비판하는 양식) SF소설이다. 


    1984년 유럽은 ‘오세아니아’라는 거대국가에 편입됐다. 모든 인간은 ‘빅 브라더(Big Brother)’라는 독재자에 의해 텔레스크린으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통제된다. ‘자유는 굴종, 전쟁은 평화, 무식은 힘.’ 오로지 절대 복종만이 허용되는 공포현실 앞에서 인간의 가치는 말살되고 모든 진실은 조작된다. 세뇌당한 인간 대다수는 왜곡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날조된 상황에 의구심을 품은 윈스턴 스미스(이승헌 분)가 반기를 들지만 곧 발각되고, 잔혹한 고문만이 그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는 굴복한다. 

    연출자 한태숙은 강렬한 화석처럼 섬세하고 정교하게 ‘1984’를 공감각적으로 구체화했다. 배우 이승헌은 그가 아닌 윈스턴 스미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배역과 혼연일체를 이뤘다. 



    오웰은 은유, 직유 같은 수사법으로 미묘하게 의도가 호도되는 것을 피하고자 명확한 단어만 구사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만큼 오웰의 글은 매우 모범적이다. 

    그러나 함축적이고 섬세한 무대언어로 극작된 희곡을 작가 의도에 맞게 한국어로 공연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더구나 로버트 아이크와 덩컨 맥밀런이 2013년 각색한 희곡은 20세기를 지나온 관객을 위해 원작에는 없는 여러 해석을 시도했다. 그중 하나가 아무리 강산이 바뀌어도 독재라는 수단은 언제나 존재하고, 혼란스러운 사회뿐 아니라 평화로운 밝은 사회에서도 감시체제는 더욱 치밀하고 교묘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