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7

2017.07.19

구가인의 구구절절

우리에겐 사랑 영화가 필요한 거죠

롭 라이너 감독의 ‘플립’ & 에이슬링 월시 감독의 ‘내 사랑’

  • 채널A 문화과학부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17-07-18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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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사치인 건 시대정신인지, 요 근래 액션과 스릴러 장르는 봇물을 이루는데 로맨스 영화는 씨가 말랐다. 극장가에서 대목으로 꼽히는 여름 시장은 특히나 블록버스터 일색. 다만 올여름은 대작 틈바구니에서 개봉하는 로맨스 영화가 눈에 띈다. 메마른 마음에 단비를 내릴 사랑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미국서 7년 전 개봉했다 입소문을 타고 이제 국내 극장에 걸리게 된 ‘플립’(감독 롭 라이너)은 소년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를 남녀 각각 1인칭 시점으로 그린 영화다. 이른바 ‘다르게 적힌 추억’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다. 7세 줄리는 동네에 이사 온 금발 미소년 브라이스에게 첫눈에 홀딱 반하지만, 브라이스는 줄리를 스토커처럼 여긴다. 그러나 많은 로맨스물이 그렇듯, 6년간 ‘밀당’(밀고 당기기) 로맨스가 펼쳐지는 동안 두 사람 사이 애정의 역학관계는 변화한다. 영화 제목을 꽤 잘 지었다 싶다. 원제 ‘flipped’에는 ‘한눈에 반하다’는 뜻과 함께 ‘뒤집히다’라는 의미도 있다. 

    1960년대 미국 백인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브라이스 집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으로 묘사되는 반면, 줄리 집은 장애인 삼촌을 사설기관에 맡기느라 늘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으로 그려진다. 가부장적이고 속물인 브라이스의 아빠로 인해 이런 차이는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계기가 된다. 줄리는 집닭이 낳은 달걀을 브라이스 집에 전달하지만, 브라이스네 식구들은 더러운 집에서 키운 달걀에 식중독균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자 브라이스는 달걀을 몰래 버린다. 첫사랑을 순수한 추억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지질했던 개인의 성장 과정으로 담은 것은 이 영화의 미덕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유명한 롭 라이너 감독은 특유의 장기를 살려 소년 소녀의 첫사랑을 유쾌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했다.

    ‘플립’이 풋풋함을 내세운 영화라면 ‘내 사랑’(감독 에이슬링 월시)은 뭉클함을 주는 작품이다. 캐나다 화가 모드 루이스(1903~70)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류마티즘 관절염을 앓아 다리를 저는 모드는 그림에 재능이 있지만 가족에게 수치스러운 존재로 취급받으며 지낸다. 우연히 상점에서 가정부를 구하는 생선장수 에버렛과 마주친 모드는 가족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그의 허름한 오두막을 찾는다. 하지만 괴팍하고 무뚝뚝한 성격의 에버렛은 모드를 함부로 대하는 등 삶이 순탄치만은 않다.

    영화는 가진 것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작은 집에서 부딪히고 부대끼면서 점차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을 그린다.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허름한 그들의 집에도 생기가 돈다. 벽과 창문 등 집 안 구석구석에 모드의 그림이 채워진다.

    영상은 절제됐지만 아름답다. 특히 작품 에 녹아든 모드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을 배울 만큼 연기에 공을 들인 모드 역의 샐리 호킨스는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감이라는 소문이 돈다. 에버렛 역의 이선 호크 역시 돋보인다.

    실화가 가진 힘 덕분인지, 영화는 작위적 설정 없이 시종일관 담담한 톤을 유지하지만, 문득문득 코끝을 찡하게 한다. 사랑은 여전히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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