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5

2017.07.05

김민경의 미식세계

‘네 시작은 징그러우나 끝은 맛있으리라’

부산 기장의 짚불곰장어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7-04 1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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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어는 몸이 뱀처럼 길쭉하게 생긴 물고기를 일컫는다. 뱀장어는 담수와 해수를 오가지만 주로 민물장어라 부르며, 살집이 많아 두툼하고 기름지면서 구수한 맛이 좋다. ‘아나고’라는 일본어 이름으로 익숙한 붕장어는 잔가시가 없고 살이 담백하며 고소한 맛이 난다. 갯장어도 살이 단단하고 고소해 회, 데침, 탕 등 조리법이 다양하다.

    마지막으로 먹장어, 즉 곰장어가 떠오르지만 앞서 말한 장어들과는 부류가 다르다. 길쭉한 생김은 비슷하지만 턱뼈나 이빨이 없는 대신, 흡착판처럼 생긴 입을 가졌으며 눈도 퇴화됐다. 이런 모양새 때문에 옛날에는 징그러운 흉물로 여겨 버리는 일이 많았다. 흉물치고는 이름의 유래가 여럿이며 재밌다. 눈이 멀었다 해 먹장어, 껍질을 벗겨 10시간 정도 둬도 죽지 않고 꼼지락거린다 해 꼼장어, 바다에 던져 둔 통발에 어김없이 걸려들어 ‘꼼수에 잘 걸린다’ 해 꼼장어라 부른다고 한다.




    곰장어는 칼칼한 양념볶음이나 소금구이로 어디서나 흔하게 맛볼 수 있는데, 부산 기장군에 가면 꽤 독특한 요리법으로 곰장어를 조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볏짚에 불을 붙여 산 곰장어를 바로 구워 내는 것. 산 곰장어 요리는 남해에서 흔하지만 볏짚으로 굽는 방식은 독특하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던 시기에 상품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곰장어를 여기저기 남아도는 볏짚에 불 붙여 구워 먹던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바싹 마른 볏짚은 불이 잘 일고 순간적으로 섭씨 700도까지 올라가지만 장작처럼 오래 타지 않고 불이 꺼진다. 아궁이에 석쇠를 올리고 볏짚에 불을 붙인 다음 산 곰장어를 석쇠에 던져 넣고 3~4분 구워 겉을 새까맣게 태운다. 이때 불 세기나 시간 조절을 잘 못 하면 속까지 타버리고 너무 큰 곰장어를 구우면 속이 익지 않는다. 그래서 짚불구이용으로는 길이 25cm 전후의 곰장어가 적당하다.

    다 구운 곰장어는 연탄처럼 빈틈없이 새까맣다. 까맣게 탄 부분은 곰장어의 질긴 껍질이다. 예전에는 이 껍질이 가죽 제품의 원료로 쓰였다고 하니 어차피 먹지 못한다. 새까맣게 탄 껍질을 쭉 당겨 벗겨내면 뽀얗고 촉촉한 몸통이 나온다. 이를 먹기 좋게 썰어 미리 데워 둔 무쇠 그릇에 얹어 낸다. 아무 양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곰장어에 밴 바다의 맛과 볏짚의 은은한 향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게다가 센 불에 빠르게 조리해  씹는 맛이 야들야들 부드럽고 참 좋다. 도시에서 접하던 짱짱함이나 꼬들꼬들함은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식감인데, 씹을수록 고소하고 맛있다. 본래의 맛을 몇 점 음미했다면 소금 살짝 뿌린 참기름에 찍어 고소함을 더해본다.

    기장에 가면 4대째 110년 넘은 가옥에서 짚불곰장어를 파는 집이 있다. 그곳에 가면 ‘네 시작은 징그럽다. 하지만 끝은 맛있다’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산 채로 불 속에서 꿈틀거리는 모습과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처럼 타버린 곰장어를 보고 있자면 사실 심정이 좀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뽀얗게 익은 곰장어 몇 점 먹고 나면 마음 정리는 알아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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