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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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혹은 ‘옴므’ “I Love Trend”

올 가을 겨울 패션계 주요 타깃 … 잇따른 론칭쇼 중년 남성들·바이어 대거 몰려 수요 확인

  •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입력2008-07-21 16: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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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혹은 ‘옴므’ “I Love Trend”
    인기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열애에 빠져 ‘죽어도 좋아’ 보이는 아버지(이순재 분)가 분홍색(‘푸크시아 핑크’라 불리는 유명한 컬러다) 셔츠를 입고 좋아 죽는 장면을 보셨는지. 그렇다. 남성들은 색맹이 아니다. 남성들도 나이 상관없이 트렌디한 컬러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버님이든 아저씨든, 트렌디한 옷을 입으면 인생도 트렌디해진다.

    무더위 속의 7월은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의 유행을 전망하는 패션 브랜드의 쇼가 한창 열리는 때다. 패션쇼를 본 패션 전문가들의 전망은 이렇게 모아진다. 패션 산업의 주인공으로 ‘옴므’(Homme(s), 프랑스어로 ‘남성(들)’), 특별히 ‘아저씨들’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게이나 메트로섹슈얼이라 불리는 젊은 남성들이 아니라 30대 후반, 40대 이상 평범한 남성들이 가을 겨울 패션계의 타깃이라는 것이다. 패션쇼의 런웨이에는 1980년대 활동하던 모델들과 배우 남궁원 김병세 나한일, 성악가 김동규 등이 올랐다. 일반적으로 옷 갈아입기를 귀찮아하고, 디자인에 대해 어떤 취향도 없으며, 쇼핑을 야근보다 끔찍한 노동으로 생각하는 아저씨들, 그들은 정말로 패션쇼에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눈에 드는 옷을 찾아내 끝내는 지갑을 열 것인가.

    재킷들 어깨폭, 바지통도 좁아져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대규모로 잇따라 열린 남성복 패션쇼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프런트 로(패션쇼 객석의 맨 앞줄로 VIP들이 앉는다)에 앉은 남성들의 고개가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동년배 남성 모델의 동선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모조 보석이 박힌 분홍이나 연두색 넥타이를 매 나름대로 멋을 내긴 했으나 그들은 오피스타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년남성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빛나는 눈빛은, 당장 모델을 끌어내려 그 옷을 입고 싶어하는 여성복 쇼의 프런트 로 멋쟁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쇼를 보는 남성들은 모델이 입은 재킷들의 어깨폭이 좁아졌다는 것, 바지통도 좁아지고 길이도 신발 등이 보일 만큼 짧아졌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스타일링이 헐렁한 차림새보다 훨씬 멋지게 보인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으리라. 조폭 어깨를 연출하는 거대한 ‘뽕’을 빼고, ‘넉넉한’ 품을 잘라내서 몸의 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면 비록 배가 나오거나 체격이 왜소하더라도 더 젊고 파워풀한 인상을 만든다는 것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8월 론칭을 앞둔 유로피언 캐주얼 남성브랜드 ‘엘파파(elpapa)’의 패션쇼에서 만난 한 중년남성(53)은 “우리는 교복을 입고 컸지만, 대학 때 ‘문화’-통기타와 청바지 문화-란 걸 맛본 최초의 세대다. ‘노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옷은 아내가 골라주는 것보다 내가 고르는 편이 낫다. 그동안 형편과 시간 여유가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엘파파’의 문진이 마케팅팀장은 “전체 인구 중 40세 이상 인구비율은 이미 43%에 이르며 1955~63년생인 베이비붐 세대는 경제력도 갖춰 잠재구매력 또한 매우 크다. 그러나 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캐주얼웨어 시장이 없어 골프웨어를 아무 때나 입고 다니는 웃지 못할 장면도 많이 본다”면서 “40대 이상을 타깃으로 한 고가 캐주얼 브랜드 론칭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아저씨 혹은 ‘옴므’ “I Love Trend”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대규모로 열린 남성복 패션쇼들. 모처럼 중년 남성들이 런웨이에 섰다.

    ‘맨스타’ ‘캠브리지’ 등 남성복 브랜드를 가진 코오롱패션과 남성편집숍 ‘시리즈’를 운영하는 FnC코오롱이 함께 연 대규모 가을/겨울 패션쇼의 테마도 ‘어른’이 된 남성들의 스타일링 제안에 모아졌다. 단지 남성복의 ‘그린프라이스’ 제도, 경기불황, 남성 슈트 시장의 양극화 등으로 위기에 빠진 전통적인 남성복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트렌드를 제시해 남성들 스스로 쇼핑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이 새 브랜드 론칭쇼와 다르다.

    “남성복도 뚜렷이 양극화하고 있어요. 코오롱이 가장 먼저 대형마트 양복시장에 진출해서 지난 3년 동안 호황을 누렸는데 지금은 경쟁이 심해졌죠. 한편으로 경제력 있는 40대 이상 남성들은 고가의 수입브랜드를 찾아가는 중이고요. ‘캠브리지’는 이탈리아 재단과 수입 소재를 사용하는 등 럭셔리 브랜드 노선을 가고 있어요. 이번 쇼는 이런 이미지를 확실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조은주 부장, 이유리 코오롱 홍보팀)

    남성 이미지 up 고급화·세분화 경향

    위의 지적처럼 남성복의 고급화, 세분화 경향은 남성들을 위한 편집숍의 증가, 양복 한 벌에 최저 500만원을 넘는 ‘키튼’ 등 최고가 슈트 브랜드들의 잇단 상륙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고가의 이탈리아 수제양복(요즘은 나폴리 슈트라고 지칭한다)이 남성 셀레브리티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유행하면서 이탈리아 슈트의 특징으로 꼽히는 날렵한 핏은 국내 브랜드에서도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재킷이나 드레스셔츠에도 다트를 넣어 남성의 보디라인을 드러내고, 바지 앞주름도 없애거나 한 개만 넣는 디자인이 유행하면서 몸관리를 하지 않는 남성은 재고 매대를 뒤적거릴 수밖에 없게 됐다. 스타일링 업체인 ‘인트렌드’에서 남성 패션을 담당하는 이종석 과장은 “세계에서 슈트를 가장 멋지게 입는 남자로 꼽히는 일본 남성들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있다. 극단적으로 슬림하고 밑위도 짧으며 바지선도 복숭아뼈 선까지 올라간 일본 남성의 슈트 룩을 청담동에서 자주 마주친다”고 말한다.

    멋을 내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타일리시한 남성들의 공통점은 아는 것이 많다는 점이며, 스타일리시한 남성은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확률도 높다. 따라서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슈트에 관한 책 한 권 읽는 것, 그리고 가을 겨울 트렌드를 보여주는 멋진 남성복 매장에서 용기를 내 직접 입어보는 것이다. 현대 남성들에게 이만큼 유용하고 필요한 투자도 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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