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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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후각, 유별난 ‘향수 사랑’

  •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11-01 18: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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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민한 후각, 유별난 ‘향수 사랑’
    파리에서 알게 된 한국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그는 1년 동안 프랑스 아주머니에게 프랑스어 과외를 받다가 사정이 생겨 그만두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새로 한국인 남학생을 소개받아 계속 프랑스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 아주머니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친구는 인사치레로 “새로 가르치는 학생과는 잘 맞느냐”고 물었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다 좋은데 그 학생한테서 마늘 냄새가 심하게 나 힘들어요. 옷은 깔끔하게 입는데 왜 그렇게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친구는 얼굴도 모르는 그 남학생을 위해 이런저런 변명을 한 뒤, 돌아서자마자 자기 몸에서도 마늘 냄새가 나는지 싶어 맡아보게 됐노라고 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뒤 내 친구는 더욱 냄새에 신경 쓰게 됐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후각이 예민한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향수와 요리가 발달했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를 위한 최고급 백화점은 말할 것도 없고,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슈퍼마켓에까지 실내용 향초며 방향제용 스프레이가 생활용품 코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어느 브랜드, 어떤 품질의 초를 올리는지만 다를 뿐, 각 가정에서 향초를 켜두는 모습은 꽤 흔한 풍경이다. 파리만 놓고 보더라도 아파트의 상당수가 요즘 우리나라 아파트들과는 달리 폐쇄적인 구조라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것도 인공적으로 향을 뿌려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실제로 향초를 켜지 않고서는 식사 후 나는 음식 냄새를 없애기가 쉽지 않다.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에서는 피부관리용 제품들이 화장품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반면, 유럽에서는 향수류가 매출의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프랑스인들의 향수 사랑은 유난하다.

    봉 마르셰 백화점 같은 고급 백화점이나 세포라 등 화장품 멀티숍에서 프랑스인들이 가장 몰리는 곳은 향수 코너다. 잠시만 둘러봐도 어찔해질 만큼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향에 심취한 파리지앵들의 모습은 진지하기까지 하다. 최근 봉 마르셰를 가보니 ‘랑콤’ ‘크리스티앙 디오르’ ‘겔랑’ 등 고급 화장품 브랜드의 향수들은 물론이고, ‘아닉 구탈’ ‘아쿠아 디 팔마’ ‘딥티크’ ‘밀러 해리스’ ‘조 말론’ ‘크리드’까지 유럽 향수 전문 브랜드들의 코너가 점점 더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요즘엔 100유로(약 12만원)가 넘는 향수도 꽤 흔해졌다.

    슈퍼마켓·고급백화점 등 향수 코너에 사람들 북적

    예민한 후각, 유별난 ‘향수 사랑’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를 화장품이나 향수의 본산지로 생각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와 17세기 초반만 해도 이탈리아가 유럽 미용계의 중심이었다. 유럽에서 ‘잘나간다’ ‘좀 논다’고 하는 왕자, 공주들은 모두 이탈리아산 미용 제품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됐다는 얘기다.

    프랑스 럭셔리의 역사를 다룬 책 ‘에센스 오브 스타일’에 따르면, 프랑스가 향수산업의 주도권을 뺏게 된 것은 루이 14세의 업적이다. 1656년 루이 14세는 본격적으로 자국의 향수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을 마련했다. 이 무렵 그가 거처를 옮긴 베르사유 궁전은 각종 파티와 연회의 중심이었다. 이런 모임을 앞두고 왕족과 귀족들이 나누던 각종 미용제품과 향수 정보는 트렌드의 창이 됐고, 조향사며 화장품 전문 뉴스레터를 쓰는 기자 등 전문가들이 양성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데도 여전히 선진국이요, 홍보하지 않아도 늘 관광객이 넘치는 곳이 ‘문화의 나라’ 프랑스다. 환락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향수산업 역시 조상 잘 만나서 호강하는 프랑스의 또 다른 얼굴이다. 다리가 예뻤다는 루이 14세는 한참 유행했던 ‘메트로 섹슈얼’의 원조로 꼽히기도 했다. 프랑스인들에게 미(美)와 럭셔리는 늘 힘이요, 경쟁력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세포라 향수 매장(위)과 향수 ‘자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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