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9

2006.06.13

나를 꿈꾸게, 몸달게 하라!

  • 파리=김현진 패션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06-12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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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꿈꾸게, 몸달게 하라!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가우초 백.

    가방 하나 고르는 데 2주일이 걸렸다. 일단 ‘필요한지’를 자문해야 했고, ‘그렇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합리화를 해야 했다.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럭셔리 브랜드를 공부하면서 이번 시즌의 신제품이 하나도 없다는 게 조금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무엇을 살까’가 고민이었다. 튼튼하게 생긴 입생로랑의 뮤즈백을 먼저 떠올렸다. 에펠탑 야경을 배경으로 한 귀족풍의 몽환적인 광고가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인 듯싶다. 파리 시내 버스정류장이며 각종 패션잡지 광고를 휩쓸고 있는 샤넬의 은색 가방도 강력한 후보였다. 펄이 잔뜩 들어간 은색이 올 시즌 액세서리 색상의 트렌드인 데다, 최근 파리의 멀티숍 콜레트와 봉마르셰 백화점 역시 각종 브랜드의 은색 가방을 탐스럽게 진열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 제품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라 부담이 덜한 프랑스 패션 브랜드 제라르 다렐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몇 해 전 반짝이 구슬장식이 박힌 세로줄 무늬로 유명한 바네사 브루노 가방이 거리를 활보했다면 올해는 다양한 색상의 제라르 다렐 백이 인기몰이를 하는 중이다.

    일단 한번 둘러보자는 생각으로 여러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아비뉴 몽테뉴에 있는 각 브랜드들의 단독 매장들도 가봤다. 2주간의 탐색전과 집요한 관찰이 이어졌다.

    겉으로는 ‘가뿐한 척’, 그러나 속으로는 ‘너무 무리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계산대에 내려놓은 나의 새 가방은 입생로랑도 샤넬도 아닌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가우초’백이었다.



    인터넷에서 캐머런 디아즈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흰색 가우초 백을 든 모습을 봤을 때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짙은 오렌지색의 부드러운 가죽을 만져보고는 마음을 굳혔다. 말안장처럼 가운데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디자인도 독특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돌체앤가바나와 겐조에서 일한 친구 맥시는 “이 가방은 디오르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현지 카우보이들을 만나고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라면서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치켜세웠다.

    거금을 투자해 가방을 구입한 지 일주일 만에 잠시 일본 도쿄에 가게 됐다. 긴자에 있는 디오르 매장에 가니 벨기에인 중년 세일즈맨이 아는 척을 해준다.

    “그 색상, 그 가죽으로 된 디자인은 일본에선 판매하지 않습니다. 파리에서 사셨죠? 정말 좋은 선택입니다. 축하합니다!”

    꿈과 팬터지 파는 ‘럭셔리 마케팅’ 소비자 만족

    ‘럭셔리 마케팅’은 ‘꿈을 파는 것’이라고, 내가 다니는 학교의 시몽 니엑 학장은 늘 강조하곤 한다. “그들을 꿈꾸게 하라(make people dream)”는 모토는 우리 과정의 ‘급훈’이나 다름없다. 좋은 품질, 훌륭한 서비스, 멋진 디자인 모두 명품을 구성하는 요소겠지만 꿈과 팬터지가 없다면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명품 소비자들의 꿈은 그들의 선택을 알아봐주고, 칭찬해주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마케팅 전문가들은 자동차 광고를 하는 목적이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기보다는 이미 구입한 고객에게 ‘당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메시지를 주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동차든 명품이든 비싼 물건에 대한 투자에 ‘잘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큰마음 먹고 산 가방을 칭찬해주는 사람이 많아 나 역시 으쓱했다. 속물처럼 느껴져 달갑게 받아들이고 싶진 않지만, 나도 ‘꿈꾸는 사람’ 중 하나인가 보다. 혹시 당신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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