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5

2005.10.11

“왜? 나를” 깨우침의 시작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입력2005-10-05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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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선불교 제2대 조사인 혜가스님의 뒤를 이은 것은 승찬(僧璨·?∼606)이었다. 마흔이 넘도록 승찬은 문둥병으로 인해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몰골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어 이런 병을 앓게 됐는지 알고 싶어했다.

    이 ‘알고 싶다’는 최초의 의문은 아주 중요한 철학적 행위다. 사실 역사의 위대한 발견이나 획기적인 사상의 전환도 따지고 보면 이 ‘알고 싶다’는 물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남들은 모두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나는 그것을 따져 알고 싶다’는 마음이야말로 깨우침의 시작이다. 천형(天刑)과도 같은 문둥병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 수도 있었지만 승찬은 그러지 않았다. ‘왜?’라는 의문을 가슴에 품은 것이다.

    어느 날 승찬은 혜가의 명성을 접했다. 혜가스님은 당시 여러 지방을 돌며 법을 설하고 있었다. 승찬은 속인의 몸으로 혜가스님을 만났다. 얼기설기 얽은 얼굴에 더러운 옷차림. 그는 혜가스님을 만나자마자 부끄러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의 발 아래 자신의 몸을 던졌다.

    “저는 이렇게 문둥병을 앓고 있습니다.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혜가스님은 난데없는 승찬의 출현에 당혹해하는 기색도 없이 지긋한 미소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혜가스님이 말이 없자 다시 승찬의 물음이 이어졌다.



    “도대체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까.”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발 아래 엎드린 추한 몰골의 중년남자에게 혜가스님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죄를 내게 가지고 오라. 그것을 내가 없애주겠노라.”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승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죄를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혜가스님은 빙긋이 웃으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네 죄는 다 없어졌다. 찾을 수도 없는 죄에 묶여 고통받는 헛된 일에 흔들리지 마라.”

    승찬은 혜가스님의 이 짧은 말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한순간 자신을 평생 옥죄어오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 것이었다.

    혜가스님은 ‘편치 않은 그 마음을 내게 보이라’는 스승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다시 자신의 제자에게 ‘죄를 내게 보이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혜가스님의 말은 ‘지금 너를 휘젓고 있는 그 고통의 실체, 그 죄의식의 실체 역시 결국 네가 만든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승찬은 그날로 혜가스님을 스승 삼아 출가했다. 그리고 중국 선종의 제3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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