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5

2005.07.26

나는 누구? … ‘공안’은 생각 바꾸기 훈련

  • 허문명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입력2005-07-21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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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am I(나는 누구인가)?’

    영화 제목이나 소설 제목으로도 쓰였던 이 말은 언뜻 보면 황당한 질문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철학적인 질문이다. 이 말은 한국 불교를 해외에 성공적으로 수출해 세계 4대 생불 중 하나로 꼽히는 숭산 큰스님이 외국인 제자들을 처음 만나면 항상 던졌던 질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란 직업이나 고향, 성별 같은 게 아니라 태어나기 전의 나, 이른바 본래의 나를 묻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안(公案)’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끔씩 문득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그리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물음이지만, 먹고사는 일에 바쁘다 보면 이내 잊어버리기 일쑤인 것이기도 하다. 선(禪)에서는 이 ‘나는 누구인가’를 깊이 참구(參究)하는 일을 통해 삶의 근본과 현재 나를 짓누르는 고통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공안이란 무엇인가. 공안은 본래 선종에서 수행자의 마음을 연마하기 위해 내는 일종의 시험문제다. 주로 수수께끼나 문제의 형태로 제시되는데 한마디로 하면, 논리를 초월한 진리를 터득하는 지적 게임에 가깝다. 하지만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큐 테스트는 더더욱 아니다.

    공안은 정의되지 않은 연산이다. 절대로 그 문제의 틀 내에서는 풀지 못한다. 새를 소재로 한 공안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어린 새가 병 속에 들어갔다. 이제 어린 새가 자라 병에서 나오려 한다. 병을 깨지 말고, 새를 죽이지도 말고 새를 꺼내보라.’

    수수께끼와도 같은 이 질문의 답은 ‘새가 원래 병 속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새는 ‘인간의 존재’이며, 병은 인간을 구속하는 ‘생각’이다. 본래 생각이란 게 없기 때문에 병 또한 없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처럼 불교의 공안은 불교 경전뿐 아니라 중국 고전에까지 기원을 두고 있다. 공안은 고전의 다양한 소재들을 선불교의 독창적인 깨달음으로 재해석한다.

    공안의 참구는 선이 지향하는 깨달음의 방법이기는 하나 깨달음의 내용은 아니다. 공안은 사고의 전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고통은 우리가 만든 ‘생각’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 하나를 바꾸면 지옥이 천국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공안은 바로 그런 ‘생각 바꾸기’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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