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8

2015.05.18

인고의 세월이 만들어낸 명품

이탈리아 국가대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05-18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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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고의 세월이 만들어낸 명품

    비온디산티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프레스코 발디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반피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왼쪽부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레드 와인 하면 키안티(Chianti)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키안티는 토스카나 지방에서 산지오베제(Sangiovese)라는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이다. 그런데 토스카나에는 산지오베제로 만든 명품 레드 와인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몬탈치노에서 만든 브루넬로 와인이라는 뜻이다. 몬탈치노는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작은 마을로 중세 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즐기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은 19세기 중반 비온디산티(Biondi-Santi) 와이너리 창립자인 클레멘테 산티(Clemente Santi)가 만들었다. 그는 다른 품종을 섞지 않고 산지오베제만으로 뛰어난 와인을 만들고자 산지오베제 중에서도 오랜 숙성을 견딜 수 있는 개체를 골라 따로 기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산지오베제 그로소(Sangiovese Grosso)라는 품종으로 브루넬로라고도 부른다.

    몬탈치노의 뜨겁고 건조한 날씨 덕에 브루넬로로 만든 와인은 진하고 농익은 과일향이 일품이었지만 타닌이 너무 강했다. 와인의 거친 맛을 순화하기 위해 클레멘테 산티와 아들 페루치오(Ferruccio)는 와인을 오크통 안에서 오래 묵혔고, 1888년 마침내 묵직하고 힘 있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1960년대 말에 와서야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69년 영국 런던 주재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귀빈들이 참석한 만찬이 열렸다. 이때 비온디산티의 브루넬로 와인이 제공됐는데, 그 품질과 맛이 단박에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케 했다. 와인 평론가들은 브루넬로를 극찬했고 와인 애호가들도 앞다퉈 브루넬로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60년대 11개 와이너리에서 연간 15만 병에 불과하던 부르넬로 생산량은 70년대 말 150만 병으로 늘었고 지금은 몬탈치노에 와이너리 수만 200개에 이른다.

    인고의 세월이 만들어낸 명품

    클레멘테 산티의 4세손인 프란코 비온디 산티가 오래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탈리아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을 4년 이상 숙성하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브루넬로 고유의 맛을 지키기 위함이지만, 긴 숙성 기간이 와이너리에게 재정적 부담이 되자 최소 1년 동안 숙성한 와인을 로소(Rosso) 디 몬탈치노라는 이름으로 팔 수 있게 허락하고 있다. 그덕에 값비싼 브루넬로 대신 5만~6만 원대에 로소를 즐길 수 있다. 몬탈치노 와이너리들은 최상급 포도로 브루넬로를 만들고 나머지로 로소를 만든다. 품질을 까다롭게 관리하는 와이너리의 경우 작황이 좋지 않은 해에는 브루넬로를 만들지 않고 로소만 만들기도 한다. 비온디산티도 2014년 빈티지로는 로소만 만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은 아니다. 아무리 싸도 병당 10만 원이상이고 비싼 것은 100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최상급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4년 넘게 숙성하는 정성을 감안한다면 그 가격이 결코 비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긴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룬 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로 축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자기 노력의 결과와 그 와인의 인내가 함께 빛나는 멋진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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