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4

2015.02.02

심지 꼿꼿~ 매화 향기 가득

왕을 위한 로제 와인, 타벨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02-02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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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 꼿꼿~ 매화 향기 가득

    프랑스 남부 타벨 와이너리 중에는 친환경 농법을 이용하는 곳이 많아 쟁기질도 기계가 아닌 말을 이용한다. 타벨 포도밭들 중 자갈 토양에서는 묵직한 와인이 생산된다. 도멘 드 라 모르도레의 타벨 로제 와인은 남부 론 밸리의 떠오르는 슈퍼스타로 인정받고 있다(왼쪽부터).

    프랑스 남부에는 로제 와인만 생산하는 작은 마을이 있다. 아비뇽(Avignon)에서 북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타벨(Tavel)이란 지역이다. 타벨은 로마 제국이 개발한 와인 산지다. 로마인에게 와인은 생필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위생과 안전 문제로 물에 항상 와인을 섞어 마셨기 때문이다. 타벨은 천혜의 와인 산지였다. 1년 내내 햇볕이 풍부하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지중해성 기후는 포도나무의 병충해를 막아줬다. 게다가 타벨은 알프스에서 시작해 지중해로 흘러드는 론(Rho^ne) 강 유역에 위치해 육로와 수로를 겸비한 교통의 요충지. 로마가 이곳을 와인 보급의 전진기지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로마 제국이 패망한 후에도 타벨 로제 와인의 명성은 계속됐다. 프랑스 왕 필리프 4세(Philippe IV·1268~1314)는 타벨에 들러 말에 탄 채 와인 한 잔을 받아 다 비우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이라고 칭찬했다. ‘아비뇽 유수’ 시절 타벨 로제 와인에 맛을 들인 교황들은 로마로 교황청을 옮긴 뒤에도 타벨 로제 와인을 수입해 즐겼다고 한다. 태양왕 루이 14세 또한 타벨 로제 와인 애호가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타벨 와인은 ‘왕을 위한 로제 와인 (Rose′ of Kings)’이자 ‘로제 와인 중 왕(King of Rose′s)’이라는 두 가지 별명을 얻었다. 왕과 교황뿐 아니라 타벨 로제는 대문호 발자크와 헤밍웨이가 가장 사랑했던 와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타벨 로제 와인이 가진 매력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첫째는 포도 품질이다. 와인 산지에선 일반적으로 적포도 중 가장 좋은 포도로 레드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로 로제 와인을 만든다. 하지만 로제 와인만 생산하는 타벨에서는 최상급 포도로 로제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그 품질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둘째는 테루아르(토양)다. 타벨은 작은 마을이지만 토양이 다양하다. 타벨의 와이너리들은 복합적인 맛을 내고자 각기 다른 토양에서 생산된 포도를 섞어 와인을 만든다. 셋째는 독특한 양조 방식이다. 일반 로제 와인은 포도에서 금세 분리해 얻은 옅은 분홍빛 즙을 발효시켜 만들지만 타벨 로제 와인은 깊은 맛을 위해 긴 시간 숙성한 진한 즙을 연한 즙과 섞어 만든다.

    심지 꼿꼿~ 매화 향기 가득

    프랑스 남부 타벨 포도밭 전경.

    이런 노력 덕택에 타벨 로제 와인은 색상이 진하고 향이 깊으며 복합적이다. 타닌 성분도 많다. 눈을 가리고 맛을 보면 레드 와인으로 착각할 정도다. 생명력이 짧아 빈티지(vintage·생산연도)로부터 2~3년 안에 마셔야 하는 일반 로제와 달리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병 숙성이 가능한 로제 와인이기도 하다.

    타벨 로제 와인을 코에 대면 과일향과 꽃향이 풍부하게 다가온다. 한 모금 머금으면 입안을 꽉 채우는 무게감과 함께 견과류, 스파이시 향이 우아함을 더한다. 그래서인지 타벨 로제 와인을 마실 때면 추운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가 떠오른다. 연약하고 작은 꽃이지만 심지가 느껴진다는 점이 타벨 로제 와인의 꼿꼿함과 비슷해서일지도 모르겠다. 2월 타벨 로제 와인 한잔을 음미하며 봄을 기다리는 성급한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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