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9

2016.03.16

와인 for you

리슬링 한 잔에 시상(詩想)이 번쩍

괴테가 사랑한 슐로스 폴라즈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6-03-14 11: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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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없는 와인을 마시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독일 대문호 괴테가 남긴 말이다. 괴테는 소문난 와인 애호가였는데, 그의 와인 사랑은 집안 내력이었던 것 같다. 시장을 역임한 외할아버지는 좋은 와인을 지하실에 배럴째 보관했고, 왕실 고문관이던 아버지도 대단한 와인 수집가였다고 하니 말이다. 괴테는 독일 라인가우 지방을 자주 여행하곤 했다. 라인가우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으로 고성(古城)과 와인으로 유명하다. 괴테는 이곳을 방문할 때면 슐로스 폴라즈(Schloss Vollrads)에 묵곤 했는데, 이 성과 포도밭은 그가 쓴 여행 일지에도 등장한다.
    ‘산기슭을 오르다 보면 슐로스 폴라즈가 나온다. 성의 양옆으로는 포도밭이, 뒤에는 참나무와 너도밤나무 숲이 있다. 와인 품질은 포도밭과 생산량에 좌우된다. 포도 수확량이 많으면 와인 품질이 떨어지므로, 품질을 높이려면 수확량을 줄여야 한다.’
    와인 품질을 위해 포도에 맛과 향이 집중되도록 나무 그루당 수확량을 제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정도니, 괴테의 와인 지식은 단순한 애호가 차원을 넘어섰던 것 같다. 괴테가 방문한 슐로스 폴라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로, 1211년부터 지금까지 800년 넘게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포도밭이 80ha(약 80만m2)나 되지만, 재배하는 포도 품종은 오직 리슬링(Riesling)뿐이다. 슐로스 폴라즈의 환경과 토양이야말로 리슬링 재배에 최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 흙에는 황토, 자갈, 점판암, 석영이 섞여 있어

    여기서 자란 리슬링으로 만든 와인은 과일향과 미네랄향이 좋고 우아하면서도 복합미가 뛰어나다.
    슐로스 폴라즈는 최상의 품질을 위해 잘 익은 포도송이만 골라서 수확한다. 덜 익은 것은 다음 날이나 며칠 뒤 충분히 익은 것을 확인하고 수확하므로 같은 포도밭, 같은 포도나무를 몇 번씩 방문하는 수고는 필수적이다. 괴테가 여행 일지에 적은 것처럼 슐로스 폴라즈는 와이너리 바로 옆에 포도밭이 있는데, 이 또한 와인 생산에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수확한 포도가 신선함을 잃기 전 바로 즙을 짜서 발효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슐로스 폴라즈 와인 중에는 괴테를 기념하고자 만든 괴테 스페셜 와인이 있다. 이 와인은 괴테가 살던 시대의 리슬링 와인 맛을 재현하기 위해 필터링을 최소화해 요즘 리슬링에서 많이 느껴지는 과일향보다 꽃향과 미네랄향이 강조된 소박한 스타일이다. 가격은 8만 원 정도. 이 밖에 슐로스 폴라즈는 다양한 리슬링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중 에디션(Edition)이라는 와인이 주목할 만하다. 에디션은 슐로스 폴라즈 임직원들이 매년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뽑은 가장 맛있는 와인에 붙이는 이름이다. 해마다 다른 와인이 선정되지만 가격은 주로 3만~4만 원대여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괴테는 “와인을 더 많이 마시면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3월 22일은 괴테가 사망한 지 184주기가 되는 날이다. 괴테는 죽는 날 아침에도 와인을 세 모금 마셨다고 한다. 어쩌면 그 순간에도 시상이 떠올랐을지 모르겠다. 괴테가 좋아했던 리슬링 와인을 음미하며 그의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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