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의 와인 포 유

호주 펜폴즈, 한 모금마다 깊고 다른 향미가 느껴진다

최고급 그레인지, 빈 시리즈 등 시라즈 매력 맛볼 수 있어

  •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9-05-20 1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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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스 슈버트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맥스 슈버트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펜폴즈 와이너리.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펜폴즈 와이너리.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시라즈(Shiraz)는 호주를 대표하는 포도 품종이다. 하지만 시라즈가 호주를 상징하는 레드 와인으로 떠오른 지는 60년이 채 안 된다. 호주가 시라즈로 세계 와인시장에 우뚝 서게 된 데는 펜폴즈(Penfolds)의 역할이 컸다. 

    펜폴즈는 1844년 영국인 의사 크리스토퍼 로손 펜폴즈(Christopher Rawson Penfolds)가 설립한 와이너리다. 펜폴즈의 시작은 주정 강화 와인이었다. 주정 강화 와인은 발효가 끝나기 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부어 만든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호주 와이너리는 대부분 주정 강화 와인 생산에 주력했다. 달콤한 맛이 나고 알코올 도수가 20% 정도로 높아 보관과 운송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펜폴즈의 시라즈 고목.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펜폴즈의 시라즈 고목.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펜폴즈의 와인 저장고. 빈 넘버는 
이 저장고의 구역별 번호를 뜻한다.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펜폴즈의 와인 저장고. 빈 넘버는 이 저장고의 구역별 번호를 뜻한다.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변화의 계기는 1950년에 찾아왔다. 펜폴즈의 수석 와인 메이커 맥스 슈버트(Max Schubert)가 선진화된 양조법을 배우고자 유럽으로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프랑스 보르도에 도착한 슈버트는 긴 시간 오크통에서 숙성된 와인의 우아한 맛에 큰 감동을 받았다. 호주로 돌아온 그는 호주의 전통을 살리면서 유럽식 오크 숙성의 맛을 가미한 프리미엄 와인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호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시라즈로 와인을 만들고 소형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키며 연구를 거듭한 것이다.

    숙성된 와인이 보여주는 우아한 맛

    그레인지, 세인트 헨리, 빈 28칼림나 시라즈 와인(왼쪽부터). [사진 제공 · 김상미]

    그레인지, 세인트 헨리, 빈 28칼림나 시라즈 와인(왼쪽부터). [사진 제공 · 김상미]

    1957년 슈버트는 새 와인을 이사회에 선보였다. 하지만 와인 맛은 기대에 못 미쳤고, 이사회는 당장 프로젝트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모든 것이 무산될 위기였지만 슈버트는 굴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으며, 1960년 이사회에 다시 와인을 내놓았다. 이사회는 와인 출시를 허락했다. 이 와인이 바로 호주 와인사를 바꾼 그레인지(Grange)다. 그레인지는 전 세계 와인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명품 대열에 합류했고, 호주 와이너리들도 주정 강화 와인 대신 레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레인지의 레이블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생산지 이름이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와인은 대체로 산지 규모가 작을수록 고급이다. 대규모 지역보다 한 마을에서 생산된 와인이, 마을보다 밭 한 군데에서 생산된 와인이 훨씬 더 인정받는다. 마을이나 밭의 특성이 살아 있어 개성 있는 맛을 내기 때문이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는 호주 남부에 있는 주 이름이다. 어떻게 주 단위에서 생산된 그레인지가 고급 와인일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 위치한 펜폴즈 밭에서 가장 좋은 시라즈만 골라 그레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레인지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려면 천천히 마시면서 와인이 피어나는 매 순간을 음미해야 한다. 그레인지를 입에 넣으면 와인의 농밀함이 느껴지고, 켜켜이 쌓인 향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잔을 돌려 와인을 공기와 접촉시키면 시간이 지날수록 색다른 향미가 하나 둘씩 올라온다. 마치 완행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 같다. 역마다 다른 풍경이 나타나듯 매번 다른 향이 느껴진다. 

    우수한 포도로만 만든 그레인지는 가격이 비싸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면 빈28 칼림나(Bin28 Kalimna)도 좋다. 빈28 칼림나는 그레인지를 숙성시킬 때 쓴 오크통을 재활용해 만든 시라즈 와인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베이비 그레인지라고 부를 만큼 맛이 뛰어나다. 잘 익은 자두처럼 농익은 과일향이 경쾌한 신맛과 어우러져 신선한 시라즈의 풍미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펜폴즈 와인에는 빈(Bin) 넘버가 눈에 많이 띈다. 빈 넘버란 지하 저장고의 구역별 번호인데, 이것이 와인 이름으로 발전한 것이다. 빈 시리즈는 펜폴즈의 프리미엄 와인이다. 펜폴즈 팬이라면 빈 넘버별로 다양한 맛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기술, 예술, 혁신

    펜폴즈 와인 이미지 컷.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펜폴즈 와인 이미지 컷. [사진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조개 요리에 곁들인 야타나 샤르도네 와인. [사진 제공 · 김상미]

    조개 요리에 곁들인 야타나 샤르도네 와인. [사진 제공 · 김상미]

    호주 시라즈의 매력을 얘기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될 와인이 세인트 헨리(St. Henri) 시라즈다. 이 와인은 오크향을 최소화하고 시라즈의 순수함을 살리고자 50년 이상 사용한 대형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블랙베리 같은 검은 베리류향이 풍부하고 실크처럼 매끄러운 타닌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싼다. 세인트 헨리는 병 숙성이 진행될수록 질감이 포근해지며 다크초콜릿과 흙내음이 더해져 뛰어난 복합미를 맛볼 수 있다. 

    펜폴즈는 화이트 와인도 잘 만든다. 펜폴즈의 최고급 화이트 와인 야타나(Yattarna)는 샤르도네(Chardonnay)로 만들며 ‘화이트 그레인지’로도 불린다. 야타나는 ‘조금씩’ 또는 ‘점차’라는 뜻의 호주 원주민 단어다. 이름처럼 야타나는 서서히 피어나는 과일향과 오크향의 조화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신선함이 점차 달콤함으로 변하고, 목으로 넘긴 뒤에는 섬세한 여운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부담 없는 가격의 화이트 와인을 찾는다면 쿠눈가힐(Koonunga Hill) 샤르도네가 제격이다. 질감이 부드럽고 복숭아, 멜론 등 농익은 과일향과 경쾌한 신맛의 밸런스가 뛰어나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스타일이다. 다양한 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기술, 예술, 혁신을 키워드로 삼은 펜폴즈는 호주를 대표하는 맛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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