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6

2015.12.09

투박하지만 깊고 부드러운 매력

호주 시라즈, 바로사 밸리의 토브렉 와인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12-07 14: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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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박하지만 깊고 부드러운 매력

    토브렉 우드커터스 시라즈(왼쪽)와 토브렉 스트루이. 사진 제공 · 신동와인

    1980년대 중반 ‘크로커다일 던디(Crocodile Dundee)’라는 영화가 제법 인기 있었다. 호주 정글에 사는 악어 사냥꾼 던디의 모험과 로맨스를 다룬 영화였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거칠지만 인간미 넘치고 유머러스한 남자 던디. 그 이미지에 취해 어린 시절 한때 맘이 설레기도 했다. 유년시절 우상이던 던디를 다시 떠올린 건 나이가 들어 호주 시라즈(Shiraz) 와인을 처음 접했을 때였다. 묵직하면서도 과일향이 진한 그 와인은 던디처럼 투박하지만 깊고 부드러운 맛이 매력적이었다.
    시라즈는 원래 프랑스 남부 론(Rhone) 지방 태생으로 그곳에선 시라(Syrah)라고 부른다. 론에서 만든 시라 와인에서는 블랙커런트 같은 검은 베리향에 후추의 매콤함, 베이컨에서 나는 듯한 육질향이 느껴진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 산도가 강하고 바이올렛 향이 살짝 풍긴다. 세련된 멋이 있는 와인이다.
    그런 시라가 호주에서 시라즈로 정착하면서 검은 과일향이 더욱 진해지고 후추의 톡 쏘는 매콤함은 감초처럼 달큼하고 부드러운 매운맛으로 변했다. 보디감은 묵직해지고 산도는 조금 낮아져 다가가기가 더 편한 와인이 됐다. 론의 시라 와인이 기품 있는 귀족 같다면 호주 시라즈 와인은 속정 깊은 친구 같다고나 할까.
    이제 시라즈는 명실공히 호주를 대표하는 품종이다. 호주 곳곳에서 자라지만 가장 뛰어난 시라즈 와인을 만드는 곳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 주에 위치한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다. 이곳은 척박한 토양에 덥고 건조한 날씨로 유명하다. 한 해 강수량이 550mm가 넘지 않고 가문 해에는 300mm가 채 되지 않는다.
    여름 한낮 기온이 35도가 넘지만 큰 일교차 덕에 포도는 진한 과일향을 얻으면서도 산도를 잃지 않는다. 늙은 포도나무가 많아 수확량이 적지만 그 때문에 열매에는 훨씬 더 많은 향이 녹아 있다. 바로사 밸리 시라즈가 유난히 진한 색상에 농익은 검은 과일향이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민트나 유칼립투스 같은 허브향을 머금어 결코 둔하지 않은 맛을 보여준다.
    투박하지만 깊고 부드러운 매력

    포도를 수확하는 모습(오른쪽)과 농부의 손 안에 담긴 시라즈 포도. 사진 제공 · 토브렉 웹사이트

    바로사 밸리에는 뛰어난 와이너리가 많다. 그중에서도 토브렉(Torbreck)은 호주 시라즈의 맛을 가장 잘 표현한 곳으로 꼽힌다. 토브렉은 지나친 오크 숙성으로 부드러운 와인을 만들기보다 절제된 오크 처리로 바로사 밸리 시라즈의 순수함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토브렉 와인은 가격대도 다양하다. 우드커터스 시라즈(Woodcutter’s Shiraz)는 시라즈의 농익은 과일향을 잘 살린 와인으로 포도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해 만든다. 품질이 뛰어난데도 가격은 5만 원 이하여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10만 원대인 스트루이(Struie)는 수령 50년이 넘은 늙은 나무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어 향의 집중도가 뛰어나고 부드러운 질감이 매력적이다. 50만 원대 런릭(Runrig)은 마시는 내내 새로운 향이 끊임없이 피어날 정도로 복합미가 대단하다.
    와인 한 병에는 생산지의 기후, 토양, 와인을 만든 사람 등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바로사 밸리 시라즈를 한 모금 머금어보자. 지구 반대편 그곳에 가지 않아도 진한 과일향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묵직한 타닌에서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을, 거친 듯 부드러운 질감에서 사람들의 소박한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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