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1

2007.01.30

동호인 만들어 동네 맛탐험 나서라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입력2007-01-24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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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호인 만들어 동네 맛탐험 나서라
    나는 외식을 즐기지 않는다. 집에서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아내의 음식 솜씨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음식 맛의 기본은 재료와 정성인데, 아무리 잘하는 음식점이라고 해도 내가 직접 고른 재료보다는 못할 것이고, 정성도 그보다 더 들어갔을 리 없기 때문이다. 외식을 즐기지 않는 맛 칼럼니스트가 말이 되느냐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도 음식이니 맛 칼럼 쓰는 데 크게 지장은 없는 편이다. 대한민국 보통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맛 칼럼니스트라는 일과 관계없이 하루에 한두 끼는 외식을 한다.

    “맛 칼럼니스트라고? 거창하게도 이름 붙였다. 풀어 쓰면 ‘입 짧은 사람’ 아니냐?” 친구녀석이 내 직업에 대해 비꼬듯이 한 말이다. 맞다. 난 입이 무척 짧다. 맛없는 음식은 상을 엎어버리고 싶을 만큼 까다로운 입맛과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직장인들과 나 같은 맛 칼럼니스트의 차이점은 음식에 대한 까다로움 정도의 차이다. 따라서 평범한 직장인들도 얼마든지 맛 칼럼니스트 정도의 식견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맛·친절도·위생 항목 담긴 음식평가표 만들고 점수 매겨

    사내식당이 있는 회사에 다닌 적이 있다. 점심때면 정말 고역이었다. 대량으로 해대는 음식이니 맛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아침 일찍부터 음식을 마련한 탓에 나물은 물러터진 데다 국은 졸고 밥은 미지근하기 일쑤였다. 나는 이 사내식당 음식을 ‘여물’이라 불렀다. 주인(사주)이 열심히 밭 갈라고 소(직원)에게 주는, 그래서 맛은 상관없이 오로지 영양분만 따져 내는 곳. 규모가 큰 대부분의 사업장에는 이런 여물 배급소가 있다.

    직장인들 중에는 여물 배급소가 없는데도 꼭 여물을 찾아 먹는 이들도 있다. 제 입에 맞는 음식점 한두 곳을 정해두고 줄곧 그 집만 가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시키는 음식도 한두 가지뿐이다. 사시사철 된장찌개만 먹든가 김치찌개만 먹는다. 나는 이런 이들을 ‘문화적 미맹(味盲)’이라고 부른다. 색맹처럼 생리적 이상으로 맛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미맹이라고 하는 만큼, 의식적으로 다양한 맛을 거부하는 이들을 ‘문화적 미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미맹 노릇한다고? 딱 한 시간뿐인 점심시간에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어디 있냐고? 사실 그렇기도 하다. 식당까지 가는 데 10분, 주문하고 기다리는 데 10분, 밥 먹는 데 20분, 사무실로 돌아오는 데 10분, 화장실 가거나 커피 마시는 데 10분.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에 나오는 노동자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여물만 먹을 것인가? 회사 근처 식당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몇 곳이나 가봤는가? 아마 대부분 열 손가락을 두 번 정도 접다 말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번 해보자. 동네 맛탐험을 해보는 것이다. 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맛 칼럼을 썼던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먼저, 함께 점심 먹을 동료들을 구하라. 기왕이면 아예 식도락 동호회를 만드는 것이 낫다. 의외로 ‘한 미식 합네’ 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회원은 7명 내외가 좋다. 회원이 많으면 번잡해진다. 이건 경험이다.

    다음에는 직장이 있는 동네의 지도를 하나 구하라. 구 단위 정도가 좋다. 되도록 큼직한 것으로. ‘우리만의 맛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음식평가표를 만들라. 평가 항목은 맛, 친절도, 위생, 계절성, 가격 대비 맛, 재방문 의사 등등 알아서 정하고 총점을 낸다. 이 총점으로 별표를 매기고 맛지도에는 식당 이름과 주요 메뉴, 별표를 적는다.

    이후에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요령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하나씩 주제 음식을 정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 중 하나다. 이번 주에는 ‘돈가스’로 정했다면 그 동네의 돈가스집을 하루에 한 군데씩 돌고 평가를 하는 식이다. 한 음식을 두고 여럿이 집중적으로 먹게 되면 그 음식에 대한 각종 정보가 쏟아지고 서로의 평가를 들으면서 맛에 대한 감각을 배울 수 있다. 가령 돈가스를 일주일 동안 여러 명이 함께 먹고 평을 나눴다면 맛있는 돈가스의 조건들 - 돼지고기의 두께, 튀김옷의 까칠한 정도, 튀김기름과 온도, 소스 등등 - 에 대해 통달하게 될 것이다.

    일주일에 5곳이면 1년이면 260곳의 식당을 대상으로 맛탐험을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우리 동네 맛집지도’ 책이 한 권 나올 수 있는 분량이다. 여기에 요즘 너도나도 다 가지고 있는 디지털카메라로 사진까지 붙이면 금상첨화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나 같은 맛 칼럼니스트가 한 명 더 배출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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