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9

2007.01.16

서해에서 동해까지…굴·아귀·양미리 찍고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ceo@bohaifarm.com

    입력2007-01-10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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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에서 동해까지…굴·아귀·양미리 찍고

    ‘석화’(위).‘바지락죽’

    학창시절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다는 우리 땅 예찬을 들으면 “에이, 애국심 때문에 근거 없이 하는 소리지”라고 했다. 특히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이 무려 4개월 넘는다는 사실이 어린 내게 ‘우리 땅은 거친 곳’이라는 편견을 각인시켰다.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닌 지 10여 년. 이제야 서서히 깨닫고 있다. 이 땅의 겨울이 얼마나 따스하고, 우리에게 풍성한 맛을 얼마나 많이 베푸는지를….

    땅은 얼고 초목은 숨을 죽여 산야에서 얻을 것은 없다. 대신 삼면의 바다는 겨울에 들어서면 참으로 맛난 것들을 내놓는다. 그래서 겨울 음식을 먹으려면 바다로 가야 한다. 서해, 남해, 동해 어느 바다든 좋다.

    서해부터 훑자.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홍성에서 빠져 서산으로 향한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에 칼바람…. 을씨년스럽기만 하다고? 여기에서 맛난 것이 얼마나 많이 나는데! 먼저 굴이 제철이다. 생굴, 굴밥, 굴구이…. 제대로 먹자면 간월도가 제격이다. 간월도 인근 굴은 잘고 단단하며 향이 강하다. 생으로 초장에 비벼 먹어도 맛있지만, 그 향을 더 강하게 즐기려면 굴밥이 낫다. 저녁에 술 한잔 하자면 조개구이를 권하고 싶다. 조개류도 겨울에 제 맛이 난다.

    바다 음식이야말로 겨울철이 제 맛 … 지역마다 전통의 맛 ‘여전’

    조개를 더 맛나게 먹으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더 내려가 변산반도로 향한다. 채석강을 보고 내소사에 들러 변산온천에서 몸을 푸는 코스가 제일이다. 변산반도 일주도로를 돌다 보면 백합죽, 바지락죽을 판다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조갯살의 은근한 감칠맛이 쌀알 하나하나에 박혀 들어갈 정도로 푹 끓인 죽. 특히 아침엔 이만한 음식이 없다.



    이제 남해다. 해남, 완도에는 이른 동백이 만발했겠다. 여기 굴은 서해안 굴과 조금 다르다. 바다 깊은 곳에서 키우는 석화가 있다. 한입 가득 겨울바다 향이 퍼진다. 이 길로 하동과 통영을 지나 남해, 마산을 잇는 해안도로들이 겨울 바다의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

    마산에 이르면 아귀찜이 먹을 만하다. 이미 전국적인 음식이 되었지만, 마산아귀찜은 아귀를 덕장에 걸어 겨울 찬바람에 바짝 말린 후 이를 물에 불려 요리한다. 그래서 물컹한 느낌은 없고 쫄깃쫄깃한 씹는 맛에 아귀의 향도 강하다. 마산 오동동에 대여섯 곳의 아귀찜 전문점이 있다.

    바로 옆 진해는 대구로 유명하다. 진해만은 대구의 산란지로 2월쯤이면 살지고 알밴 대구들이 잡힌다. 1970년대 이후 대구 어획량이 부쩍 줄어 생대구 한 마리 값이 20여 만원씩 나가기도 했는데, 근래 들어 값이 큰 폭으로 내렸다는 소문이다.

    마지막으로 동해다. 여름만 하겠는가 싶지만, 겨울 동해도 나름의 멋과 맛이 있다. 특히 눈 덮인 설악을 뒤로한 속초의 겨울은 여름보다 더 많은 맛거리를 선사한다. 대부분 속초에 가면 대포항이나 동명항을 찾는다. 회를 먹으려는 것이다. 지금은 회보다 생선구이가 낫다. 특히 속초항에 가면 양미리가 엄청 잡히는데, 겨우내 속에 알을 꽉 채우고 있어서 지금 아니면 그 감동적인 맛을 만끽할 수 없다. 속초항에서 갯배를 타고 청초호를 건너면 아바이마을에 갈 수 있다. 몇 년 전 텔레비전 드라마 덕에 유명해진 곳이다. 이곳에 가면 냉면, 오징어순대 등 북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북한 겨울 음식으로는 도루묵찌개가 있는데, 아바이마을에는 없고 청초호 건너편 중앙시장 먹자골목에 가면 국물 맛이 시원한 도루묵찌개를 먹을 수 있다.

    속초 아래로 쭉 내려가면 삼척 지나 울진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대게가 기다린다. 죽변항에 가면 대게를 싸게 맛볼 수 있다. 식당에선 러시아산과 북한산을 함께 넣어두고 파는데, 러시아산보다는 북한산이 낫고 북한산보다는 울진산이 낫다. 러시아와 북한산은 맛이 흐리고, 장도 검은 데다 향이 적고 맛도 짜다.

    더 내려가면 포항인데, 지난 호에 소개한 과메기가 유명한 곳이다. 죽도시장이나 구룡포시장에 가는 것도 좋다. 멋스런 대규모 과메기 덕장을 보려면 죽천으로 가야 한다. 포항 시내에서 경주 쪽으로 가다 보면 죽천 가는 지방도로 이정표가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곧장 가면 죽천리라는 바닷가 마을에 이른다.

    겨울 음식도 아니고, 해안 지역도 아니지만 겨울이면 꼭 소개되는 음식이 황태다. 강원도 인제 진부령 근처의 태백산맥 서쪽 사면에 황태 덕장들이 있는데, 3월까지 눈 쌓인 명태를 구경할 수 있다. 황태는 지금보다는 3월 넘어 나오는 햇황태를 사는 것이 낫다. 강원 동해안 가는 길에 잠시 들를 수 있는 곳이니 황태찜이나 구이, 황탯국을 맛보는 것도 또 다른 겨울 여행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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