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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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맛에는 마음이 통하거든요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09-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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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한 맛에는 마음이 통하거든요
    어떤 일이든 ‘경지’와 ‘깨우침’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득도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아주 작은 일들에도 제각각의 깨우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 그게 그렇구나”라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이다.

    나는 자잘한 깨달음으로 인해 인생이 퍽 즐겁다. 일종의 감각 확장 같은 것인데,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즐거움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사진에 몰두하다가 문득 빛의 세상이 눈에 확 들어온 순간, 수년간 문법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 글쓰기에 매달리다가 어느 순간 그놈의 문법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글을 척척 써 내려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 같은 것을 말한다. 이런 종류의 깨달음은 그리 귀한 것이 아니다.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물어봤더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었다. 어느 한순간 소리의 세계가 확 열리는데, 그때의 희열로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한다고 했다. 그 깨달음의 세계는 알 수 없지만 몸서리쳐지는 희열은 어떤 것인지 짐작이 된다.

    원재료 최대한 살려 조리해야 최고의 맛

    일본 만화 가운데 ‘맛의 달인’이란 작품이 있다. 최고의 맛을 찾아나선 신문기자 지로와 미식가 아버지 우미하라가 요리 대결을 펼쳐나가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지로와 우미하라가 닭고기 요리로 대결을 펼치게 되면 먼저 가장 맛있는 닭고기부터 찾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먹는 닭고기의 대부분은 좁은 닭장에서 인공사료를 먹이며 대량 사육된 것임을 확인시켜 주고, 진짜 맛있는 닭고기는 자연 상태에서 천연사료를 먹고 자란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 다음에 닭고기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요리법을 연구하고 시식회를 열어 우열을 가린다.

    몇 해 전 ‘맛의 달인’을 탐독하면서 지로 방식으로 맛의 세계를 깨우쳐 나가기로 작심한 뒤 음식재료 공부에 몰두한 적이 있다. 가령 ‘최고의 김치’를 상정하고 그 작품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먼저 고추부터 따진다. 고추는 경북 영양 고추가 최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양에서 생산된다고 다 영양 고추는 아니다. 영양 고추의 명성은 영양군 수비면의 ‘칼초’라는 토종 고추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칼초’는 병충해에 약해 수비면에서도 몇몇 농가만 재배하고 있다. 맏물 고추가 좋으니 첫 수확 때를 맞추어 수비면에 가서 ‘칼초’를 구해온다.

    다음은 ‘칼초’를 말려야 한다. 햇볕에 말려 태양초로 만들자고? 아니다. 고추는 그늘에서 말려야 때깔도 곱고 향도 강해진다.

    젓갈은 어떤 것이 좋을까. 멸치젓? 새우젓? 까나리젓? 전남 섬마을에 가면 멸치와 새우, 진파리(넙데데한 국물용 생선)를 섞어서 2년 정도 삭힌 젓국이 있다. 이 지역에서는 멸치젓, 까나리젓, 새우젓 등을 다 담그는데도 이것을 최고로 친다. 내 정보로는 이 젓이 최고다.

    소금은? 천일염을 쓰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천일염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온도가 높을 때 만들어진 소금은 짠맛이 강하다 못해 쓴맛이 난다. 한여름 것은 안 좋다는 말이다.

    다음은 배추, 무, 마늘, 장독 등을 고르는 일과 어느 정도의 소금에 배추를 얼만큼 절이고, 양념 비율은 또 어떻게 하며, 어디에서 어떻게 숙성시킬 것인지….

    이렇게 하면 ‘최고의 김치’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최고의 김치가 곧 내게 맛의 세계를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만화 ‘맛의 달인’도 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극히 부정적이다. 에피소드마다 최고의 맛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함을 강조한다.

    임지호라는 요리사를 잘 안다. 여덟 살에 가출해 중국집 배달원으로일하면서 맛의 세상에 입문했다. 그는 맛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맛에는 순수한 맛과 변형된 맛이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요리는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먹는 사람들에게 그 재료의 원초적인 맛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수한 맛입니다. 순수한 맛은 순수한 마음과 통합니다.”

    30여 년 동안 온갖 것을 먹고 먹이면서 어떤 맛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맛 세계는 ‘순수의 소통’이었다.

    맛을 삶의 주제로 삼아 일한 지 10여 년. 솔직히 난 아직 맛이 뭔지 잘 모르겠다. 맛에 어떤 경지가 있는지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맛이니 깨우침이니 경지니 하는 말을 할 때마다 내 귓전을 때리는 생생한 소리가 있다. “맛칼럼니스트? 입맛 까다로운 사람을 그렇게 부르나?” 현재로서는 그게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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