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0

2006.08.29

한국에 온 일본 음식은 짝퉁?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08-28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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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온 일본 음식은 짝퉁?
    일제강점기 때 내 외할머니는 일본에서 반찬가게를 하셨다. 물론 일본 반찬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일본에서 청년기를 보내셨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 한식과 일식이 묘하게 ‘짬뽕’된 음식을 먹고 자랐다. 이런 얘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대부분 “와, 맛있는 음식 많이 먹어봤겠네”라며 일식 정찬을 떠올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렸을 때 내가 받은 밥상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상차림이었다. 작은 밥공기에 3분의 2쯤 담긴 밥(당시만 해도 다른 집에서는 주발 고봉밥이었다)과 장아찌나 김치, 국, 생선구이나 조림, 늘 이런 식이었다.

    흔히들 ‘일본 음식’ 하면 가장 먼저 깔끔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음식을 떠올린다. 우리나라에 있는 일식집이 대부분 ‘요리’를 내는 식당인 까닭이다. 하지만 일본 여행을 여러 차례 하면서 이런 호화로운 음식을 몇 번 대접받긴 했지만, 이런 일은 일본인들에게도 드문 일이라고 들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 있는 일식집 음식은 애초 ‘요리’ 중심으로 일반에게 알려졌다. 요정 문화 탓이다. 일제강점기, 평범한 일본인들의 가정식이 우리 음식문화에 침투할 기회는 별로 없었던 반면,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접대 공간인 요정들은 고급 요리로 한국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렇듯 요정을 기반으로 하여 국내에 자리 잡은 요리 중심의 일식은 호텔과 고급 일식집으로 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일본 서민음식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고도성장기에 이르기 전까지만 해도 외식을 할 수 있는 층이 거의 없었던 데다 민족감정 탓도 있었다. 1960년대 들어 일본식 돈까스가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하나 둘 생겼고, 80년대 들어서는 우동과 메밀국수 전문점이 생겨났으며, 90년대에는 노바다야키라는 선술집 및 일식 라면집이 번져나갔다.

    정성 깃든 음식문화 빠진 채 음식만 들여오나



    나는 일식은 좋아하지만 국내 일식집의 음식은 별로 즐기지 않는다. 특히 사시미(회) 중심의 일식집에서 나오는 음식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마죽, 계란찜, 냉회, 샐러드, 찜, 구이, 스시 어느 것 하나 그 집만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폼만 잡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에 생긴 일본 음식점들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음식점에서 내는 음식은 일본 어느 지방의 음식이다”라고 맛의 차이를 강조한다. 이런 경향은 일본 음식점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어떤 나라, 어떤 지역의 음식을 즐기는 방식에서 ‘그 나라의 무슨무슨 음식’ 하는 식으로 우리 기호가 차츰 다양해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나는 보통 1년에 두어 차례 일본에 간다. 그러면 직업 탓인지 취미 때문인지 음식점을 순례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중심가의 주요 자리는 서양식 패스트푸드점과 일본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번화가 뒤로 들어가면 작은 식당들이 올망졸망 있는데, 1식3찬의 소박한, 일본 서민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상차림을 내는 식당이 의외로 많다. 나는 대부분 이런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다. 번화가 식당들과는 달리 그네들의 음식에 대한 정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교토를 여행하다가 요정 골목을 가게 됐다. 오랜 목조건물들이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듯했다. 여기 상차림은 어떨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가격이 만만찮을 것 같고 또 마침 대낮이라 차 한 잔만 하기로 하고 요정에 들어갔다(요정은 밤에 술과 음식만 파는 것으로 아는데, 낮에도 차 같은 가벼운 음식을 판다).

    여름이라 차림표에 녹차아이스크림, 냉팥죽, 냉말차 같은 시원한 음식들이 있었다. 나는 냉팥죽을 시켰다. 물에 불려 삶은 팥이 빙수 아래 깔려 있고 그 위에 구운 떡이 올려져 나왔다. 어떻게 삶았는지 팥이 조금도 으깨지지 않고 입 안에 넣으면 스르르 녹아내릴 정도로 부드러웠다. 팥을 다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렇게 만들려면 불 조절을 하며 몇 차례나 물을 갈면서 삶아야 한다는 것을. 놀라운 것은 일본 뒷골목 아무 음식점에나 들어가도 이만한 정성의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 음식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일본 외식업체의 브랜드만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일본 본사가 한국에 직접 진출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맛본 그 정성을 느낄 수 있으려나 싶어 일부러 물어물어 찾아가보지만 결과는 항상 실망스럽다. 일본 음식만 들여올 것이 아니라 그네들의 음식문화도 함께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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