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6

2002.01.03

눈바람이 만든 칼칼함 일품

  • 시인 송수권

    입력2004-11-02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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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바람이 만든 칼칼함 일품
    눈바람 속에서 황태가 익어간다. 북어 한 쾌는 스무 마리다. 굴비 한 두름도 스무 마리, 큰 것은 열 마리다. 남쪽은 살구꽃이 피는데 앵월굴비 조기철이고, 북쪽은 아직도 눈 내리는데 황태철이다. 칠산 바다에 봄바람이 터지면 너는 오고, 진부령 대관령에 황태 골태 먹태가 터지면 나는 간다. 생태탕이 그리워 가고 생조기탕이 그리워 너는 온다. 맛 따라 오고 간다. 철 따라 오고 가고 바람 따라 오고 간다. 이 미친 풍토병 때문에 나는 굴비 한 두름 꿰차고 올라가고 너는 북어 한 쾌 꿰차고 내려온다.

    12월 중순은 명태밭이 일어서는 달, 20마리씩 꿴 명태를 덕장의 덕에 거는 일을 ‘상덕’이라 한다. 덕장은 진부령 덕장(인제군 용대리 일대)과 대관령 덕장(평창군 횡계리 일대)이 유명하다. 보풀보풀 보푸라기로 살점이 떨어져 부드러운 맛을 내기로 으뜸이기 때문이다. 반쯤 말리면 코다리 조림용, 대표적인 술안주감은 새끼 명태인 노가리다. 밤 기온 영하 15도, 서너 달 동안 잘 익어야 황태다. 이상 기온이 오면 황태는커녕 골태가 되거나 흑태, 먹태가 된다. 그러니 바람이 잘 통하는 대관령이나 진부령일 수밖에.

    눈바람이 만든 칼칼함 일품
    ‘고기야 받자’ ‘오냐 주자’ 새벽 추위 속에 상덕을 진행하는 웬 메김소리. 낮엔 햇빛에 녹고 밤엔 얼고, 3~4월에나 가야 관태작업(싸리나무에 꿰는)을 거쳐 다시 듬성듬성 쌓아올려 바람을 쐬는 ‘구멍가리’ 끝에 황태자인 ‘황태’로 둔갑한다. 머리가 잘려 잘못 태어난 놈은 무두태, 몸뚱이가 해체된 놈은 파태, 속이 딱딱한 놈은 골태, 날씨가 풀려 검은색이 된 놈은 먹태 또는 흑태가 된다.

    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을 빠져나가면 용평스키장 들머리에 황태 덕장이 많다. 횡계리의 황태회관(033-335-5795) 등 여러 곳에 황태찜, 구이, 황태해장국 등을 판다. 또 진부령 쪽은 44번 국도를 타고 원통에서 좌회전,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진부령 쪽으로 빠지면 용대3리 일대에 용바위식당(033-462-4079) 등 황태요리 전문점이 많다. 13년째 덕장을 해온다는 횡계리 부산상회 주인 이용운씨(50)는 “오츠크해나 베링해의 찬 물구덩을 러시아가 막아버리면 이곳 명태밭도 볼장 다 본다”고 걱정이다. 눈발만 성성한 진부령이나 횡계리를 황태와 떼어놓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부령 미시령 큰바람에도 잘 익었던 황태 덕장은 10년 만에 텅 비어 겨울 바람만 설친다. 피데기 오징어 덕장도 마찬가지다. 원통에서 10분쯤 올라가니 12선녀탕 휴게소가 나온다. 백담사 올라가는 길 돌바위주유소 옆 46번 도로 큰길 가에 무쇠국밥집(대표 강석남ㆍ인제군 북면 용대리 1반 돌바위파크 옆ㆍ033-462-2033)이 있다. 황태구이는 물론 황태찜, 황태버섯전골로도 유명하다.



    황태버섯전골을 시켜놓고 주인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의 그 인제와 원통 골짜기가 이곳이란다. 버섯과 콩나물, 황태의 만남은 희한한 합을 이루어 시원한 맛을 낸다. 겨울 찬바람 속에서 외피 감각과 내피 감각을 동시에 흔들어 준다고나 할까.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나 음식 맛이 평준화되었더라고요. 굴비 고장에서 왔다고 하니까 말인데, 그곳에 가도 황태탕은 조기탕보다 더 성업중이던데요” 한다.

    사실 요즘 급속히 퍼지고 있는 것이 광주를 중심으로 한 황태집들이다. 전원카페에서도 으레 황태찜을 내놓을 정도다. 광주호가 있는 정자골(가사문학권)의 지실풍경(대표 강권철ㆍ061-381-8118)도 황태찜으로 유명해 원두커피와 함께 합을 이루는 곳이다. 환벽당 주인 김윤제와 소년 정철이 용소의 조대(釣臺)에서 인연을 맺어 성산가단(星山歌壇)을 형성한 곳, 이 지실풍경 속에서도 황태찜을 즐길 수 있는 삶은 멋에 들 것이다. 속초항에 도치알이 넘치고 명태가 버글거리는 새해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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