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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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만난 대게, 입맛 살살 유혹

  • 시인 송수권

    입력2004-11-16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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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철 만난 대게, 입맛 살살 유혹
    늦바람이 터지고 단풍이 활활 타오르면 설악산 단풍 때문에 동해안이 붐빈다. 그곳에 미식가들이 꼭 들려 가는 곳이 있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에 있는 강구항 아니면 울진군의 죽변항이다. 강구항에서 죽변항까지는 40km. 이 구간은 우리 국토에서 특유한 게장국 냄새로 코를 맹하게 한다.

    흔히 남서 해안에서 맡는 꽃게장국이 아니라 대게(竹蟹) 끓는 냄새다. 대게란 ‘큰 게’가 아니라 그 발가락이 대(竹)처럼 치렁치렁 늘어진 데서 붙은 이름이다. 그 맛이나 냄새도 특이하다. 같은 무게의 꽃게 세 마리와 대게 한 마리에서 나온 속살을 비교하면 대게는 거의 두 배에 가깝다. 그러나 값은 5.6배에 달할 만큼 비싼 것이 또한 대게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강구항의 대게 거리를 걷자니 ‘딱, 딱’ 나는 게발 부수는 소리가 여간 정겹지 않다. 중국의 기록에는 장한이란 작자가 순채나물과 농어회 때문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는가 하면, 어떤 선비는 망치로 게발 때리는 재미와 술맛 때문에 벼슬을 버렸다는 기록도 있다. 게맛살은 아이들만 선호하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어른들도 이것에는 사족을 못 쓴다. 영덕 대게가 아니라도 흔한 꽃게장 맛 때문에 그놈의 욕쟁이 할미가 미워도 그 품을 떠날 수가 없다는 서울 어느 시인의 무교동 꽃게집 타령도 있다.

    제철 만난 대게, 입맛 살살 유혹
    설악산 단풍이야 제쳐두고라도 대게 맛을 못 보고 가면 몸살이 날 것 같아 강구항의 맨 끝자락에 있는 ‘미혜대게타운’(한용규·054-732-4949) 3층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밤새워 대게 발을 때릴 참이다. 현지 속사정을 잘 아는 한용규씨라면 강구항의 깜빡거리는 등대를 내려다보며 주거니 받거니 권커니 자커니 할 만하다. 한 손에 게발 들고 한 손에 술잔 들고.

    항암 성분이 있다는 키토산 때문에 대게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란다. 그것도 중국산과 북한산이 섞여들고 보면 민짜들이야 깜빡하기 일쑤란다. 또 대게의 사촌쯤으로 청게와 홍게(물게)가 있는데, 특히 청게는 여름철에 대게 행세를 한다. 여름철은 대게잡이 금지철이어서 청게란 놈이 ‘너만 대게냐, 나도 대게다’고 폼잡는다. 그래서 청게를 ‘너도 대게’라고도 부른다. 발은 연분홍이지만 배때기는 청빛이 나므로 연분홍청게라고도 한다. 맛도 대게와 거의 비슷하다. 이에 반해 홍게는 각피가 물렁물렁해 ‘물게’ 또는 ‘수(水)게’라고 부른다. 홍게는 대게와 달리 1년 내내 잡힌다.



    영덕 대게의 산지로는 이곳 강구항 말고도 축산항이 있다. 축산항의 차유마을, 즉 왕돌잠(물밑바위)이 원조마을이라 해서 기념비까지 세워져 있다. 그러니 죽변 대게가 시샘을 낼 수밖에 없는 게, 이따금 알콩달콩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한다고 한다. 지역 축제는 말할 것도 없고 게발 때리는 망치가 허공으로 튈까봐 겁난다고 한용규씨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런데 어째 요즘은 물밑 세상도 시원치 않아 700~1200m 수심에서 가오리 자망에 올라오는 것이 대게와 홍게 사이의 잡종인 청게인데, 홍게 어획량의 5%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는 대게가 시들고 잡게가 넘치는 세상이 올 거라는 징조가 아니겠냐고 한다.

    수산자원 보호령에 따르면 6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는 어획 금지기간이다. 암대게보다는 수컷이 크고 맛있는 것이 게살의 속사정이지만 아무래도 속살이 꽉꽉 여무는 때는 2~4월이다. 그래서 눈이 쏟아지는 강구항의 겨울밤은 미식가들이 몰려들어 게발 때리는 밤이기도 하다. 일찍이 진나라 필탁(畢卓)처럼 오른손에 술잔, 왼손에 게발 들고 술못 속에 두둥실 배를 띄울 수만 있다면 어찌 인생이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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