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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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풍자와 비판의 붓

  • 입력2005-06-01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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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함없는 풍자와 비판의 붓
    “내가 꼭 청소부 같아.” 주재환씨는 전시장에 이리저리 쌓여 있는 작품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랬다.

    그가 사는 동네의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온 갖가지 생활폐품으로 만들어 ‘1000원 예술’이라고 불리는 그의 작품에 동원된 재료는 x-ray 사진에서부터 비닐 끈, 쇼핑백, 은박지, 밤송이, 캡슐, 볼펜, 색종이, 라이터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이런 값싼 재료들을 지지고 볶아서 만든 콜라주, 만화, 사진, 개념적 드로잉, 오브제, 유화 등에서 그의 유쾌한 작품 세계는 삶과 착 달라붙어 펼쳐진다.

    주씨의 이번 개인전에는 ‘이 유쾌한 씨를 보라’(11월25일∼2001년 1월21일 아트선재센터)는 제목이 붙어 있다. 80년대 민중미술 현장의 중심에 있으면서, 변방의 자유인으로 녹슬지 않는 비판과 풍자의 칼날을 세워왔던 그의 작품에서는 한결같이 유머와 유희적 감각이 넘쳐난다. 이런 그를 두고 미술계에서는 “민중미술과 한국 모더니즘 대립이란 틀로는 전혀 담을 수 없는 작가며, 반대로 양자 모두의 핵심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작가이자 미래의 작가”(미술담론지 ‘포럼A’)라고 평론한다.

    평생 화가였지만, 역시 평생 가난하게 살아서 환갑이 되도록 개인전 한번 열지 못했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던 80년부터 올해까지 20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들을 모두 쏟아낸다. 60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중퇴하고 그 뒤 야경꾼, 행상, 외판원, 출판 편집인 등 여러 모습으로 살아온 그는 “많은 사회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현실과 유리된 채 비현실적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아방가르드의 폐쇄성과 환상을 조롱한 만화 ‘태풍 아방가르호의 시말(始末)’, 몬드리안이라는 대표적 모더니스트의 회화적 형식을 호텔이라는 세속적 공간 속으로 전환시키면서 그 속에 권력과 돈과 성과 미술의 가장 한국적인 풍속도를 그려넣은 ‘몬드리안 호텔’, 모더니즘의 대부 격인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현세간의 미학으로 뒤집어 해석한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등 그의 대표작에서는 미술과 권력을 바라보는 주변인(周邊人) 특유의 예리한 시선이 드러난다. 삶과 연동된 예술의 의미와 기능을 수용하면서 미적인 가치에 탁월한 감수성을 발휘하는 그의 예술 세계다.



    주씨의 이름은 한국의 반모더니즘적 미술조류 내지 민중미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관제미술, 국적 불명의 미술이 아니라 우리의 미술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현발’ 창립 동인이 되어 80년대 민중미술의 판도에서 든든한 선배이자 동지로서 함께했던 그는 87년 신학철과 함께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군사독재정권 미술탄압 사례’를 발간하고 ‘고 박종철 열사 추도 반고문전’ 등을 개최한 이력이 그의 사회참여적 기질을 잘 설명해준다.

    79년 결성돼 10년 뒤 해체한 ‘현발’ 그룹은 당시 뛰어난 시대의식과 시각문화 전반에 걸친 앞선 문제제기로 이후 다소 우직하기만 했던 민중미술의 궤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 토양이 됐다. 현실세계와는 유리된 채 고답적인 이론과 철학을 내세우거나, 지나친 탐미주의에 빠져 있던 기존의 미술에 반기를 드는 것이 ‘현발’의 목적의식이었다. 80년 열린 창립전에는 손장섭 김경인 주재환 김정헌 김용태 심정수 임옥상 민정기 노원희 백수남 신경호 김건희 등이 참가했다.

    다른 동인모임이 작가들로만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현발’은 김윤수와 원동석 성완경 최민 윤범모 등 평론가들이 작가와 동반자적 관계로 참여한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그때까지 한국 미술계의 고질이던 학연 중심의 막연한 미술그룹과 달리 한국 현대미술의 상황과 자신의 예술적 지향 문제에 대한 비교적 뚜렷한 의식을 공유하고 출발한 모임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현발’을 비롯한 민중미술 태동의 계기이자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민중과의 소통과 현실참여라는 테제는 70년대 모더니즘 미술을 극복하면서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회복하고 근대적 미술운동을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었다.”(미술평론가 성완경 교수)

    서울에서 ‘현발’이 만들어지던 79년, 광주에서는 ‘광주 자유미술인 협의회’(광자협)가 결성되었고 이어 ‘두렁’ ‘임술년’ ‘미술공동체’ 등 여러 소집단이 잇따라 생겨났다. ‘현발’이 서구적이면서 엘리트적인 활동을 보였다면 이후의 단체들은 민족적이고 아마추어적인 지향점을 가졌다. 이렇게 활발하게 진행된 소집단 미술운동은 이후 ‘민미협’이라는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게 했고 전시장을 떠나 걸개그림과 벽화운동 등 전시장 밖의 현장미술을 통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선동적인 색채로 작품이 아닌 선전도구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고 90년대 들어 동구권이 무너지는 등 국내외의 정치적인 변화가 생기면서 민중미술은 퇴조기로 접어들었다.

    사실 미술계 내에서도 민중미술을 ‘지나간 미술’로 여기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민중미술을 새롭게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이번 주재환씨 전시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민중미술은 우리 시대의 삶을 드러내는 예술이다. 80년대를 관통하는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매김한 민중미술은 과거 비정상적인 통치 아래 부당한 억압에 저항해오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예술, 현실에 입각한 미술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도 큰 의의와 예술성을 갖는다.”(미술평론가 박찬경씨)

    90년대 들어 한국 미술이 갖게 된 다양한 관심과 자유로움에는 서양의 개념미술과 함께 80년대 민중미술이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크든 작든 정치적 비판과 미술제도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으며 사진과 비디오, 영화, 몸을 이용하는 작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민중미술은 80년대의 특수한 한국적 상황이 낳은 독특한 결과물이지만, ‘이미 결산이 끝난 이벤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밀실에 숨어서 스스로를 가둬놓고 소외니, 고독이니 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건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고 봐. 운동장을 넓혀야지. ‘나’보다는 먼저 ‘왜’를 생각했으면 해요.” 주씨의 이 말은 오늘날 미술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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