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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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 굴맛이 꿀맛이다

  • 글·사진 = 양영훈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blog.naver.com/travelmaker

    입력2007-11-28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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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일났다, 굴맛이 꿀맛이다

    남당항에서 바라본 해넘이 광경. 천수만 뒤로 보이는 섬이 ‘안면도’다(큰 사진). 장은포구의 자랑인 천북굴(원 안).

    온종일 매서운 삭풍이 불더니 밤에는 첫눈이 내렸다. 가을의 끝자락을 붙든 채 서성이던 계절이 일순간에 겨울 한복판으로 질주해버린 듯하다. 본격적인 겨울철에 들어서면 굴맛이 꿀맛이다. 굴이나 키조개 등의 조개류는 날씨가 추워질수록 속이 알차서 맛도 좋다. 게다가 비브리오 같은 패류 독소도 자연스레 제거돼 아무리 먹어도 탈나는 일이 드물다.

    ‘굴’ 하면 흔히 경남 통영을 떠올리지만, 천수만을 끼고 있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포구도 굴맛 좋기로 유명하다. 이름하여 ‘천북굴’이다. 장은포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해안 키조개의 집산지인 오천항이 자리한다. 두 곳 모두 수도권 가까이에 있어 하루 코스 주말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서해안고속도로의 서울 종점에서 보령 장은포구까지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물론 고속도로 사정이 원활한 경우에 한해서다. 주말과 휴일에는 새벽부터 서둘러야 정체를 피할 수 있다. 또한 11월 하순의 일출시각은 오전 7시20분 전후이므로 새벽에 길을 나선다면 당진군 송악면 한진포구 부근의 해안도로에서 서해대교를 배경 삼아 펼쳐지는 해돋이나 아침노을까지 감상할 수 있다.

    사실 장은포구의 풍광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방조제 완공 이후 새로 조성된 포구는 깊은 연륜이 느껴지지 않고, 포구 주변에는 비닐하우스로 급조된 굴구이집만 빼곡하게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굴이나 대하(왕새우)가 잡히지 않는 5~8월에는 썰렁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하지만 겨울철만 되면 굴을 맛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이어 흥이 난다.

    장은포구 주변의 천수만 갯벌에서 자란 천북굴은 여러 개의 작은 굴이 다닥다닥 붙은 형태다. 울퉁불퉁 거친 껍데기를 까면 통통하고 노르스름한 잿빛 속살이 드러난다. 남해안 양식굴보다 씨알은 잘아도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그러나 장은포구의 90여 곳에 이르는 굴구이집에서 내놓는 굴이 죄다 자연산 천북굴은 아니다. 천수만 갯벌에서 투석식으로 양식한 것도 많고, 물량이 부족할 때는 남해안의 수하식 굴을 갖다 팔기도 한다.



    날 추울수록 속이 꽉 차 … 키조개·젓갈도 명성 자자

    서해 바닷가에 와서 해넘이를 보지 않고 돌아간다면, 맛은 알아도 멋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점심을 겸한 굴요리 성찬(盛饌)을 아무리 느긋하게 즐겨도 해는 여전히 중천이다. 그럴 때는 홍성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백야 김좌진 장군이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를 찾아볼 만하다. 백야의 생가는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만해 생가는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 있다. 내친김에 장은포구에서 가까운 오천항이나 남당항, 광천새우젓시장 등도 들러볼 만하다.

    보령 오천항은 ‘가이바시’ 또는 ‘서해미인’이라고 하는 키조개의 우리나라 최대 생산지다. 전국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오천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산에는 조선시대 충청수영(忠淸水營, 충청도 수군사령부)이 자리했던 오천성이 있다. 지금은 약 1km의 성벽과 서문인 망화문, 어려운 백성을 돌보던 진휼청, 장교숙소였던 장교청 등만 남아 있다. 문루는 없어지고 홍예만 남은 망화문을 지나 진휼청 앞에 서면 크고 작은 고깃배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오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큰일났다, 굴맛이 꿀맛이다

    조선시대 충청수영이 자리했던 오천성.

    장은포구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인 홍성군 광천읍은 우리나라 새우젓의 3분의 1 이상이 생산, 유통되는 새우젓마을이다. 광천토굴새우젓은 광천읍 옹암리 독배마을의 40여 개 인공토굴에서 숙성된다. 내부 온도가 1년 내내 14~15℃를 유지하는 토굴에서 3개월 이상 잘 숙성된 새우젓은 단맛이 나고 살이 단단하며 젓국이 맑고 희다.

    광천읍내와 우회도로변에 즐비한 젓갈가게에는 최상품 육젓뿐 아니라 명란젓 창란젓 갈치속젓 아가미젓 오징어젓 낙지젓 어리굴젓 등 갖가지 젓갈이 구비됐다. 광천 조선김도 토굴새우젓만큼이나 유명한 광천 특산품이어서 광천에 가면 하루 종일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오천성과 광천새우젓시장까지 둘러보노라면 겨울날의 짧은 해가 서산에 걸린다. 서해바다의 근사한 해넘이와 저녁노을을 보려면 장은포구나 남당항 같은 바닷가로 다시 나가는 것이 좋다. 호수를 빼닮은 천수만 저편의 안면도 위로 붉은 노을을 드리운 채 해가 저무는 광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설핏 기운 햇살이 엷은 구름과 물결치는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인다. 바다를 바라보며 햇살을 껴안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핏빛 노을을 머리에 인 서해바다가 서럽도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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