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0

2007.08.28

빙해와 활화산 공존하는‘러브레터’의 땅

  • 글·사진=김영랑

    입력2007-08-22 17: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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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해와 활화산 공존하는‘러브레터’의 땅

    후라노 전망대. 오타루 운하의 밤풍경(오른쪽).

    일본 열도 최북단의 홋카이도(北海道)는 국토의 22%를 차지할 정도(약 8만3000㎢)로 큰 땅이다. 강원도를 뺀 남한 면적에 해당하는 넓이다. 홋카이도는 빙해와 활화산이 공존하는 자연환경 덕에 ‘삿포로 눈축제’와 몬베쓰의 ‘유빙축제’, 풍어를 기원하는 연안의 ‘항구축제’ 등 사계절 내내 다양하고 이색적인 축제가 열린다.

    홋카이도의 또 다른 특징은 일본 동북부의 소수민족 ‘아이누족’의 본거지라는 점이다. 홋카이도라는 지명은 아이누족이 ‘북쪽 바닷길’이라는 뜻의 ‘카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하고, 이 지역 마을 이름의 80% 이상이 아이누어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이 땅은 근대 일본이 구축한 세련된 문명과는 또 다른 독특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부모님과 함께 한 4박5일의 홋카이도 자유여행, 홋카이도의 모든 지역을 섭렵하기에는 짧은 여정이다. 때문에 섬의 끝자락에 자리한 하코다테의 야경과 노보리벳츠 온천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사히카와 공항에서 시작해 영화 ‘러브레터’로 유명해진 오타루, 호수의 도시 도야코, 홋카이도 제1의 도시 삿포로, 라벤더로 유명한 후라노와 비에이에서 각각 하루씩 머물기로 했다.

    홋카이도는 겨울 스키여행이나 온천 여행지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강력한 겨울 이미지 때문인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한여름의 홋카이도는 매우 낯설었다.

    아사히카와 공항에서 첫 행선지인 오타루로 가려면 JR선을 타야 한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기차는 바다를 끼고 달린다. 오타루역에 도착하니 역사 여기저기에 걸린 오래된 가스등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풍스럽다.



    역에서 출발하는 시내 산책버스를 타고 오타루 거리를 둘러봤다. 유리공예, 오르골, 초콜릿, 전통주, 수산물, 케이크 등 작지만 개성 넘치는 상점과 공방이 즐비했다. 거리에서 ‘러브레터’ 촬영지를 찾는 한국인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아기자기한 볼거리에 눈을 빼앗기며 길거리를 누비는 동안 금세 어둠이 찾아왔다. 오타루의 상징인 노란 가스등이 도시를 하나 둘씩 채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튿날 아침, 호텔에서 제공한 구운 생선과 낫토, 조미김에 싸먹는 따끈한 밥으로 배를 채웠다. 오늘의 목적지인 도야코는 JR선을 타고 두 시간 이동해야 한다. 도야코는 아름다운 호수와 활화산 등의 볼거리로 제법 유명한 관광지지만, 우리가 방문한 때는 성수기가 지난 시기라 한산했다. 칼데라 활동으로 만들어진 둘레가 43km나 되는 도야코 호수는 그 안에 몇 개 섬까지 안고 있었다. 그중 한 섬에서 한가로이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빙해와 활화산 공존하는‘러브레터’의 땅

    후라노의 라벤더 꽃밭.

    겨울 스키·온천 여행지로 세계적 명성

    인근 활화산 지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쇼와신잔(昭和新山)은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쪽에서만 바라볼 수 있다. 주변에는 매캐한 유황냄새가 자욱하고 연기가 맹렬하게 뿜어나온다. 맞은편 우스잔(有珠山)을 리프트를 타고 오르면 멀리서나마 분화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 우스잔 정상에 오르면 섬 건너편 마을과 바다까지 훤히 내려다보인다. 호텔에 돌아오니 호수를 배경으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도야코가 우리에게 건네는 또 다른 선물이었다.

    셋째 날,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 만에 홋카이도의 중심인 삿포로에 도착했다. 이제까지의 도시들과는 다른 현대적 분위기다. 한국어 표기가 함께 된 안내표지를 길잡이 삼아 도보 시내관광을 시작했다.

    시내를 관통하는 오도리 공원은 예상과 달리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고,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를 뒤덮은 아름드리 나무들은 절로 감탄사를 자아냈다. 길거리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덴푸라우동과 소바는 일본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스스키노 거리에 이르면 이 지역 특산물인 게요리를 먹어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 일정은 후라노와 비에이다. 홋카이도 한가운데 자리한 후라노는 사방이 탁 트인 평야와 언덕이 화려한 꽃으로 가득한 풍요로운 땅이다. 라벤더로 유명한 팜 도미타와 플라워랜드를 방문했을 때는 이미 절정기가 지났음에도 꽃들이 눈이 아릴 정도로 선명하고 화려한 빛깔을 자랑했다. 드넓은 꽃밭을 배경으로 서 있는 후라노 치즈우유 공방, 아이스크림 공방, 와인 공방 등 각종 유럽형 식품공장을 돌아보고 나니 과연 이곳이 아시아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마지막 밤은 고대하던 비에이의 ‘세 라팽(Chez Lapin)’ 펜션에서 보냈다. 홋카이도의 기간산업은 농업이라 할 정도로 옥수수, 감자, 양파 등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펜션 주인 역시 자신이 직접 수확한 각종 채소와 신선한 유제품으로 정성껏 손님을 접대했다.

    비에이가 유명해진 까닭은 전적으로 ‘마에다 신조’라는 풍경 사진작가의 공로다. 16년 동안이나 비에이를 방문하면서 렌즈에 담은 풍경이 그림엽서, 영화, CM 등에 사용되며 비에이를 전국적인 명소로 부각시켰다. 후라노가 꽃의 도시라면 비에이는 언덕과 나무로 유명하다. 한 그루 한 그루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서 있다. 조각보를 이어놓은 듯 끝없이 이어지는 언덕과 밭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홋카이도는 전통적인 일본 냄새가 그리 강하지 않다. 또한 일본에 대한 일반적인 느낌처럼 아기자기하고 답답한 느낌도 별로 없다. 삿포로나 오타루에서 만난 중세 유럽을 닮은 건물과 각종 유제품이나 초콜릿, 와인 같은 이국적인 먹을거리들…. 특히 후라노, 비에이의 탁 트인 지평선을 보면 “여기는 아시아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대륙”이라는 평가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행 Tip

    항공편_ 아사히카와(旭川)는 홋카이도 한가운데 자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교통 거점으로 자리잡은 도시다. 우리나라 아시아나 항공이 아사히카와 공항에 취항해 직항편으로 오갈 수 있으며, 일본 내에서도 많은 도시와 편리하게 연결된다.

    철도편_ 아사히카와는 삿포로에서 20~30분 간격으로 JR 특급열차가 운행되고 있어 편리하다. 홋카이도 북쪽 끝인 왓카나이와 동쪽 끝인 아바시리에서도 하루 네 차례 특급열차가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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