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2

2016.11.09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혼란한 시대 음악인이 사는 법

시대의 노래, 분노의 음악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11-07 13: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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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5월 미국 록의 ‘보스’라고 부르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어쿠스틱 위주의 앨범을 냈다. ‘Devils & Dust’라 이름 붙은 이 앨범에서 그는 침통한 목소리로 이라크전쟁의 참상을 노래한다. 늘 사회의 단면을 음악으로 전해온 그였지만, 이 앨범 속 노래가 유독 씁쓸하고 절실하게 들리는 이유는 2004년 조지 W.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직후 나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21세기와 함께 시작된 미국 부시 정권은 자국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을 흔들어놓았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벌인 전쟁, 끝없는 외교적 분란에 따른 반미 국가들의 준동, 그리고 세계경제를 휘청거리게 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그 결과 미국의 위상은 추락하고 좌우는 분열됐으며 국제 정세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미 임기 전반기부터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 삼아 만든 애국자법으로 시민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제한했으니 진보 진영에서 부시의 인기가 좋았을 리 없다.

    세계 어디를 가나 문화·예술가는 진보적 성향을 띠는 법이다. 그러니 첫 번째 대통령선거 때부터 부시에 반대하며 민주당을 지지해온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그의 재선에 얼마나 실망했을까. 혼돈에 빠져드는 세계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인민을 어찌 음악으로 그려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 2000년대 중반 미국, 그리고 지구의 풍경을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그렇게 ‘Devils & Dust’에 담았다. 밥 딜런이 음악과 문학적 메시지의 결합을 통해 대중음악을 엔터테인먼트에서 진지한 예술로 승격한 이래, 1960년대부터 현대까지 사회적 단면은 이처럼 음악에 그 흔적을 남기곤 했다. 때로는 행동으로, 때로는 표현으로.

    2016년 늦가을,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정국은 얼어붙었다. 1987년 6월 일궈낸 민주주의가 지난 4년간 처참히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모두 분노하고 허탈해한다. 이 전대미문의 상황에 놀란 건, 화난 건, 어이없어 하는 건 평범한 시민만이 아니다. 음악인도 들고 일어섰다.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시국선언에 음악인도 동참했다. 문화·예술인의 카테고리에 묶이지 않고 스스로 ‘음악인의 시국선언’이란 이름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이가 이 선언에 동참했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장르를 막론하고 많은 음악인이 서명했다며 인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수 이승환은 자신의 레코드사인 드림팩토리 건물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대형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 아직 어떤 ‘건물주’도 행하지 못한(또는 하지 않은) 강력한 행동이다. 한 퍼커션 연주자는 엄숙하기만 한 집회에 흥을 불어넣자며 함께할 연주자를 모으고 있고, 앞으로 있을 대규모 집회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음악인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적어도 내 기억에 음악인의 집단행동이 이처럼 가시화되는 건 세월호 정국 이후 처음이다. 그때도 대부분 추모와 애도를 전했을 뿐 거리로 나가겠노라고 인증하지는 않았다.

    음악가를 움직이게 하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 힙합 뮤지션은 재빠르게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랩을 쏟아내고 있다. 제리케이의 ‘HA-YA-HEY’, 김디지의 ‘곡성’, 디템포의 ‘우주의 기운’ 등이 그런 노래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힙합 외에도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을 담아내는 음악이 나올 걸로 믿는다. 직격탄이건 은유건. 이미 세월호 정국 때도 김창완의 ‘노란 리본’, 유희열의 ‘엄마의 바다’, 에프엑스의 ‘레드 라이트’를 비롯해 많은 노래가 나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만들어지는 노래들엔 분노의 결이 좀 더 서려 있길 바란다. 1990년대 한국 사회의 어둠을 정태춘이 ‘아, 대한민국’이란 곡으로 서슬 퍼렇게 그려냈듯, 문장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시대의 기운이 음악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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