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1

2016.03.30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강남스타일’이 케이팝이 아니었던 이유

태국 방콕 여행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03-28 1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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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방콕 여행을 다녀왔다. 꼭 10년 만의 방문이었다. 수완나품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 잊고 있던 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숙소가 있는 카오산 로드(사진)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방콕은 그사이 얼마나 변했을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그대로일까. 이미 설레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레인보의 음악을 틀었다. 인트로만 들어도 제목을 다 맞히는 내가 신기했는지, 랜덤으로 자신의 리스트를 재생하며 이 노래도 맞혀보라고 했다. 물론 다 맞혔다. 그 정도면 요금을 좀 덜 받거나 할 법도 한데, 매정하게도 에누리 없이 정해진 금액을 다 받았다. 그리고 카오산에 도착했다.

    10년 전 카오산, 주인공은 밥 말리였다. 어느 카페에서나 밥 말리가 들려왔다. 요맘때쯤 되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서울 공기를 채우듯, 밥 말리는 카오산을 찾는 여행자들의 국가처럼 느껴졌다. 마치 밥 말리의 가계도에 태국인의 피가 섞여 있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10년 후 카오산에 밥 말리는 없었다. 잭 존슨이 대세긴 했지만 거리의 독재자는 아니었다. 많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연주됐다. 그사이 카오산을 차지한 댄스클럽에서는 최신 ‘떡댄스음악’들이 울렸다. 바와 카페에서는 오아시스와 너바나가 틀어지고 연주됐다. 패신저 같은 요즘 음악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부분 1990년대 음악이었다.

    이제 그 시대가 정말 ‘올드’한 시대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대의 레드 제플린, 딥 퍼플을 1990년대 음악이 대체한 것이다. 올해는 유독 많은 과거 영웅을 떠나보낸 해였다. 데이비드 보위, 글렌 프레이 등. 언젠가 먼 훗날 노엘 갤러거, 크리스 마틴이 세상을 뜨면 지금 카오산을 걷고 있는 젊은 여행자들은 우리가 데이비드 보위와 이별하며 가졌던 감정을 똑같이 느낄 거라 생각했다.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태연이었다. 한국 아이돌 음악은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내수산업에서 수출산업이 됐다. 태국은 무시 못 할 시장이다. 현지 방송에서는 티아라와 슈퍼주니어의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하지만 여행자의 땅 카오산에는 케이팝(K-pop)이 없다. 그사이 외국인뿐 아니라 현지인도 카오산의 주요 소비층이 됐지만, 우리가 서울 이태원에 한국 가요를 들으러 가지 않듯 그들도 이국을 느끼러 카오산을 찾는다. 현지 버스커들이나 DJ들이 케이팝을 연주하거나 틀지 않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잭 존슨의 ‘Better Together’가 흘러나오는 술집 앞을 지나 한 댄스클럽 앞을 걸었다. 익숙한 저음이 들려왔다. 오, 오, 오, 오, 오, 오빤 강남스타일. 클럽 안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거리의 사람들까지 ‘강남스타일’ 춤을 추고 있었다. 애국심을 느낀다거나 하는 건 물론 아니다. 애초 나에게 그런 건 없다. 다만 흥미로웠을 따름이다. 2012년 싸이가 강제로 월드스타가 됐을 때 언론에서는 케이팝 세계화의 완성 운운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애당초 ‘강남스타일’은 케이팝과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다. 일반적인 한국 아이돌 음악이 일본을 거쳐 서구의 제이팝(J-pop) 마니아들에게 전파된 반면, ‘강남스타일’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를 타고 서구 주류 음악계 인사들과 시장까지 파고든 경우니까. 요컨대 뉴미디어 시대의 팝이지 단순히 케이팝이라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었던 거다.

    케이팝이 존재하지 않는 카오산에서의 ‘강남스타일’ 춤판은 그런 사실을 증명하는 하나의 순간이었다. 그다음 가게에서는 어느 카피 밴드가 너바나의 ‘All Apologies’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렇듯 서구 여행자들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노래만 트는 카오산에서의 ‘강남스타일’은 유난히 낯설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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