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1

2018.08.15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실력은 기본, 다양한 모바일 콘텐츠로 브랜드 충성도 높여야

프로야구와 음악산업의 공통점

  • 입력2018-08-14 11:39: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두산 베어스 팬카페 만화. 두산 베어스 팬으로 가득 찬 서울 잠실야구장. 8월 7일 두산 베어스의 김재환데이에 관중들이 응원하는 모습(왼쪽부터). [출처 · 두산 베어스 팬카페, 동아DB]

    두산 베어스 팬카페 만화. 두산 베어스 팬으로 가득 찬 서울 잠실야구장. 8월 7일 두산 베어스의 김재환데이에 관중들이 응원하는 모습(왼쪽부터). [출처 · 두산 베어스 팬카페, 동아DB]

    뒤늦게 장가란 걸 가게 된 이후 일상이 많이 달라졌다. 매일 밤 서울 술집들을 헤매던 날이 끝난 것이다. 약속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술과 음악에 취하던 시간들을 흔한 유부남의 생활로 메우게 됐다.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옥상에 텃밭을 일군다. 처가에서 키우던 푸들을 맡게 돼 함께 산책을 한다. 일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야구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나는 OB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원년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었다. 1982년 아이들의 최대 관심은 새로 창립된 프로야구였고, 팬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서울에는 MBC청룡 팬인 친구가 많았지만, 아버지가 고교 및 실업야구의 팬인 경우 아버지가 응원하는 지방 구단의 어린이 회원이 되기도 했다. OB베어스 팬도 적잖았는데, 나 같은 경우 오직 ‘불사조’ 박철순이 멋있어 OB베어스 팬이 됐다. 

    아무튼, 외가가 서울 동대문운동장 바로 앞에 있는 덕에 종종 야구장에 가곤 했다. 지금처럼 레플리카도 없는 시절이었지만, 할머니가 ‘미싱사’에서 맞춰준 ‘사제’ OB유니폼을 입고 학교에 갔다 저녁이 되면 동대문으로 향하던 일은 몇 안 되는 유년 시절의 흐뭇한 기억이다. OB는 그해 삼성을 꺾고 원년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그다음 해부터 나락으로 떨어졌다. 김영덕 감독이 ‘적진’인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가면서, 박철순이 원년의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부상에 신음하면서 팀 성적은 추락했고, 야구에 대한 나의 관심도 멀어졌다.

    돌아온 왕년의 야구팬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에게는 야구 말고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늘 속출하기 마련이다. 사춘기가 되고 음악에 빠지면서 야구는 아예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주말마다 황학동을 비롯한 청계천 일대를 누비며 음반을 사 모았건만 지척에 있는 동대문운동장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서울 연고 프로야구팀의 구장이 잠실야구장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시간은 계속 지나고, 기술도 계속해서 세상을 바꿔놓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을 계기로 신규 야구팬이 많아졌을 즈음, 더는 ‘직관’이나 TV로만 야구를 보지 않아도 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야구 중계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가을이 되면 다시 야구를 봤다. 두산은 SK 와이번스와 삼성에게 우승 트로피를 헌납하는 명품 조연이었을지언정 어쨌든 포스트 시즌 단골팀이었다. 2015년, 14년 만에 3번째 우승을 거머쥐고 그다음 해 창단 첫 2연패에 성공한 후에는 야구와 좀 더 가까워졌다. 매일 시합 결과라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가정을 꾸리면서 싱글의 삶과 작별을 고한 후 매일 야구를 보게 된 건 그런 과정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뭐든 하나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인지라, TV나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야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게 됐으며, 유튜브에서 야구와 담 쌓았던 시절의 명승부도 다시 찾아봤다. 그 결과 현대 야구와 음악산업의 공통점 몇 가지가 눈에 보였다. 

    두 비즈니스 모두 가장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건 ‘현장’이다. 즉 공연장과 경기장이다. 돈과 시간을 모두 투자하지 않으면 체험할 수 없는 실시간 흥행 비즈니스다. 음반산업이 몰락하고 음원산업이 과거 호시절을 대체하는 데 실패함에 따라, 공연은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 됐다. 예전 같으면 절대 한국에서 볼 수 없었을 해외 스타의 내한공연이 흔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로 확장되는 현장

    2017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공연 중인 방탄소년단(BTS)과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 레드카펫 행사에 몰려든 BTS 해외팬들. [뉴스1, 뉴시스]

    2017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공연 중인 방탄소년단(BTS)과 5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 레드카펫 행사에 몰려든 BTS 해외팬들. [뉴스1, 뉴시스]

    모바일 시대와 함께 소셜미디어가 일상에 깊이 침투하면서 단순히 즐기려고 공연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증’하기 위해 티켓을 구매하는 현상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매년 야구장을 찾는 관중이 늘어난다. 러시아월드컵 기간에도 매진되는 경기가 많았을 정도다. 그들 모두 열혈 야구팬은 아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려고 전엔 잘 몰랐던 음악가의 노래를 ‘예습’해 공연장을 찾는 이들처럼, 친구로부터 규칙을 배운 뒤 유니폼부터 사서 야구장을 찾아 승리의 순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이도 많다. 과거 마니아와 일반 팬 사이에 존재하던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공연장과 경기장을 찾아오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팬의 충성도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 흥행 산업의 최종 목표라면, 이 목표를 달성하게 만드는 건 풍부한 콘텐츠다. 방탄소년단(BTS)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는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물량으로 승부한 소셜미디어 콘텐츠였다. 그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를 막론하고 방송이나 인터뷰 같은 공식 콘텐츠는 물론, 각 멤버의 사생활과 연습 시간, 심지어 방송과 공연 대기실에서 일상 등 기존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던 모습까지 업로드했다. 기존 팬에게는 끊임없이 즐길 거리를 제공했고 새로운 팬에게는 빠져들 수밖에 없는 ‘떡밥’을 쏟아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두산의 경우 베어스포티비라는 소셜미디어 채널을 운영한다. 이 채널은 TV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더그아웃의 풍경과 시합이 끝난 후 퇴근하는 선수들의 모습, 심지어 전지훈련지에서 선수들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매일 업로드한다. 건조한 스케치가 아니라 BGM(배경음악)과 자막, 편집기술을 십분 활용해 예능적 코드를 입힌다. 이를 통해 팬들은 호기심과 재미만 충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선수들의 캐릭터와 온갖 ‘떡밥’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논다. 음악에서 무대와 방송, 야구에서 시합과 인터뷰라는 공식 활동 이외의 것들이 콘텐츠가 돼 유입과 충성을 모두 이끈다. 다른 구단들도 비슷한 채널을 운영하지만 두산만큼 재미는 없어 보인다. 다른 팀 팬도 베어스포티비를 구독한다는 것, 유튜브에서 구독자가 가파르게 증가한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음악의 미래를 걱정한 적이 있다. 스포츠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인구는 줄어들고 시대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산업은 스스로 시대에 적응하고, 팬덤의 강도를 증가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곧 브랜드이며, 브랜드를 만들지 못하는 모든 산업은 몰락한다. 실력은 기본이다. 실력 이외의 무엇을 창출하느냐 마느냐, 대중을 상대로 하는 모든 이가 고민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