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레게는 어떻게 탄생했나

한여름 무더위를 쫓을 최고의 음악

  • 입력2018-07-24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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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메이카 레게를 완성한 밥 말리. [AP=뉴시스]

    자메이카 레게를 완성한 밥 말리. [AP=뉴시스]

    평소에는 하루가 빨리만 가더니, 태양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자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다. 단지 낮이 길어서는 아닐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가시지 않는 더위가 시간마저 붙들어놓은 듯하다. 에어컨을 돌린다고 더위가 가시는 건 아니다. 이미 먹은 열기가 몸속에 남아 진을 빼놓는다. 차가운 아이스커피로 속을 달래고 음악을 튼다. 

    멜론, 엠넷 등 국내 음악 애플리케이션(앱)과 애플, 스포티파이 같은 해외 앱의 가장 큰 차이는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보유한 음원에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국내 앱은 사용자를 위한 큐레이션이 떨어진다. 모바일과 스트리밍 시대가 도래하면서 향후 음악 서비스는 큐레이션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지도 10년 가까이 됐건만, 아직도 ‘비 올 때 듣기 좋은 음악’ ‘피서철에 듣기 좋은 음악’ 같은 20세기적 선곡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60년대 솔&디스코’ ‘70년대 브라질&라틴’ 같은 세부적인 카테고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특정 장르별 선곡도 라디오에서 지겹게 들었던 노래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해외 계정을 만드는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해외 앱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더운 날이 이어지면, 나는 주저 없이 하루 종일 레게를 틀어놓는다. 사람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인지, 더운 지방으로 여행을 가면 어디서나 가장 많이 들리는 음악이 레게다. 자메이카에서 탄생해 1970년대 초반 영국을 필두로 서구의 여름을 휩쓴 장르. 영미권을 제외한 다른 문화권의 음악 가운데 차트와 대중, 그리고 팝음악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장르. 그게 레게다. 

    레게는 자메이카에서 독자적으로 탄생하지 않았다. 미국의 블루스와 로큰롤이 쿠바를 거쳐 1960년을 전후해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에 상륙했다. 이 무렵은 자메이카가 산업화되면서 농촌 청년들이 수도로 향하던 시기였다. 갑자기 늘어난 젊은 층에게는 놀 거리가 필요한 법. 킹스턴 곳곳의 공터에선 주말마다 댄스파티가 열렸다. 열악한 음향 시스템 탓에 전체적인 사운드가 선명하게 들릴 수 없으니, 그 대신 베이스 소리를 강조하곤 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메이카 사운드가 탄생했다. 깎아 치듯 연주하는 기타를 기반으로 한 레게리듬 말이다. 카리브해의 무더운 기후와 느긋한 분위기에 더없이 잘 녹아드는 음악이었다. 그리고 1962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며 조성된 해방감과 더불어 자메이카의 레게는 태양과 함께 숙성됐다. 

    이 숙성 과정에 마침표를 찍은 이가 밥 말리다. 세계에서 가장 멋있게 담배를 피우던 남자,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이 가장 잘 어울리던 남자다. 그는 연주자 피터 토시, 버니 웨일러와 함께 레게를 좀 더 서구적으로 다듬었다. 복잡하던 리듬을 4박자로 단순화하고, 자메이카적인 느낌을 살리되 최대한 영국 팝에 가까운 소리로 매만졌다. 식민지 시절 영국에 건너가 있던 자메이카 노동자와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백인 청년들이 밥 말리를 지지했다. 그 결과 레게머리를 한 젊은이가 런던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리화나를 피우며 ‘Stir It Up’을 듣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됐다. 에릭 클랩턴을 필두로 많은 팝 스타가 밥 말리를 리메이크하고, 레게를 자신들 음악에 녹여냈다. 유행은 스타일이 됐다. 1990년대 중반, 이 땅에도 불었던 레게 붐의 기원이다. 지구상에 여름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음악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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