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4

2013.11.25

교회 장로가 천하의 사기꾼이라고?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11-25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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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장로가 천하의 사기꾼이라고?
    세계 최대로 꼽히는 국내 한 개신교회 전(前) 회장 목사가 교단 사유화 및 교회 재산 횡령, 불륜 행각 무마를 위한 밀거래 등의 의혹에 휘말렸다. 진실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언급되는 검은돈 거래 규모가 수백, 수천억 원에 이르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불륜 운운하는 대목은 여느 잡범의 파렴치함도 뺨칠 정도여서 혀가 저절로 차진다. 마치 재벌기업을 따르듯 회장 목사 가계로 세습되는 국내 대형 개신교회의 비리, 크고 작은 교단 성직자의 불륜이나 성범죄는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지만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매일 밤 전국을 밝히는 십자가의 빨간 불이 진리와 구원으로 세속의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부정한 권력에 빌붙고, 불의에 침묵하며, 진리와 정의보다 사리와 사욕을 취해온 것이 일요일마다 교회 인근 거리를 단속 없는 ‘거대 주차장’으로 만든 힘이 아니었을까.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감독 연상호)는 개신교로 포장한 한 사기집단의 행각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꼬집은 작품이다. 댐 건설로 수몰이 예정된 한 외딴 마을이 배경이다. 여기엔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는 신설 교회가 있고 젊은 목사 성철우(목소리 오정세 분)가 부임해 온다. 교회는 이미 스스로를 장로라고 칭하는 최경석(목소리 권해효 분)에 의해 부흥일로에 있다. 청산유수로 사람들을 꾀는 최경석은 댐건설로 인한 마을 수몰이 예수 믿는 자들에 대한 사탄의 시험이라며 기도원을 크게 지어 믿음을 증거하고 천국행을 예약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는 기도원을 맡기겠다며 성 목사를 꼬드겨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이주 보상비를 헌금으로 내게 하라고 종용한다. 삶의 터전을 곧 잃게 돼 불안에 빠진 마을 사람들은 교회에서 울고 불고 기도하면서 성 목사와 최 장로를 굳게 신봉한다.

    이 와중에 집을 떠나 살던 천하의 폭군 김민철(목소리 양익준 분)이 아내와 딸에게 돌아온다. 여전히 가족에게 무자비한 욕설과 폭행을 일삼는 그는 이주 보상비와 딸의 대학등록금을 도박으로 탕진한다. 그런데 술집에서 우연히 시비가 붙은 상대가 최 장로이고, 그가 수배 중인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김민철은 경찰과 마을 사람들에게 최 장로가 사기꾼이니 속지 말라고 떠들며 다니지만 술주정뱅이에 난봉꾼인 그의 말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내가 교회에 빠져들고 딸은 대학등록금을 주겠다는 최 장로 꼬임에 넘어가 가출하자 분노가 극에 달한 김민철은 최 장로에게 앙갚음하려 나서고, 최 장로는 김민철로 인해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알려질 위험에 처하자 하수인들을 시켜 그를 없애려 한다.

    교회 장로가 천하의 사기꾼이라고?
    사실적인 그림체로 뛰어난 드라마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는 종교를 내세워 불행한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려는 자와 왜곡된 맹신에 빠져 스스로 나락에 떨어지는 우매한 자들에 대한 우화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진실을 위해 싸우는 자가 가족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 ‘악인’이라는 역설이 탁월하다. 연출의 변대로 ‘거짓을 말하는 선한 자’와 ‘진실을 말하는 악한 자’의 대결이라는 아이러니다. 그 사이엔 ‘버림받아 불행한 자’가 있다. 한마디로, 거짓을 말하는 선한 자와 진실을 말하는 악한 자는 모두 사이비이며, 사이비란 버림받은 자의 절망과 불행을 먹고 자라는 괴물인 것이다.

    ‘사이비’는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최경석)와 부정한 힘에 기생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자(성철우), 불행을 환상으로 대체하려는 우매한 대중(마을 사람들)을 통해 자본과 종교, 폭력, 권력이 이루는 먹이사슬과 착취 구조를 그린 우리 사회의 음화(陰畵)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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