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3

2012.11.19

고문, 야만의 시대 지옥을 보다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2-11-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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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 야만의 시대 지옥을 보다
    주인공 김종태(박원상 분)는 모처럼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나타난 형사들이 그의 양팔을 부여잡고 검은색 승용차에 밀어 넣었다. 끌려간 곳은 반공사범들을 고문 취조해 악명을 떨쳤던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만이 주인공 얼굴을 비춘다. 이어 무차별적인 발길질과 몽둥이 세례가 쏟아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폭행과 고문 수위가 점점 높아졌고 급기야 주인공을 거꾸로 세워 물이 가득 찬 욕조에 처넣는다. ‘칠성판’이라는 등신 형틀에 주인공 몸을 묶은 뒤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고무 호수로 물줄기를 쏘아댄다. 고춧가루 탄 물을 코와 입에 마구 붓는 일은 예사다.

    마지막엔 발가벗긴 주인공을 형틀에 누이고 그의 몸에 전선을 연결한다. 한 사람은 주인공의 회음부에 눈을 맞추고, 또 한 사람은 초시계의 스타트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전류계 스위치를 켠다. 전압이 높아갈수록 주인공의 비명도 커진다. 신음과 괴성이 갑자기 멈추고 주인공이 혼절하면 고문기술자는 예상했다는 듯 스위치를 끈다. 그러고는 시간을 확인하고, 주인공의 몸을 관찰하던 다른 한 사람에게 묻는다. “(회음부에) 피가 났느냐”고.

    중세 ‘마녀사냥’ 이상의 잔혹함

    ‘남영동 1985’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 초반부를 연상시킨다. 거두절미하고, 권력이 한 개인의 신체를 유린하는 모습을 극사실주의로 묘사한다. ‘감시와 처벌’은 사료를 동원해 중세시대 ‘마녀’와 범죄자로 몰린 이들이 끔찍하게 처형당하는 장면을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권력과 폭력, 신체의 관계를 탐구한 저작이다. 글로 읽는 것도 끔찍한데, 시각적 충격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권력의 잔학함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은 단말마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인간 존엄성이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한 시대의 ‘증언’을 목격하는 관객의 심경은 참담하다.

    ‘남영동 1985’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정권으로부터 당한 고문과 폭력을 재현한 작품이다. 영화는 고인이 1985년 9월 4일 납치돼 당시 서울 남영동 소재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보낸 지옥 같은 22일을 ‘김종태’라는 인물을 통해 그린다. 2000년대 이후를 담은 후반부 몇 분을 제외하면, ‘남영동 1985’는 약 2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대부분을 고문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그리는 데 집중했다. 정지영 감독은 고인의 수기 ‘남영동’에 바탕을 뒀다고 밝혔다.



    참혹하게 폭행당하면서도 신념을 지키던 주인공은 고문기술자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영화에서 이두한(이경영 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고문경감’으로 악명 높던 이근안을 모델로 했다. 형사들이 ‘장의사’라고 불렀던 그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짐승을 다루는 조련사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가혹하고 노련하게 주인공을 고문한다. 주인공은 시대의 양심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고문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및 수치심, 인간성에 대한 환멸 사이에서 울부짖는다.

    고문 피해자가 당하는 고통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또 다른 축은 가해자의 양심과 윤리적 판단을 누르고 관료제가 구현해내는 권력과 폭력이다. 이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고문 가해자는 대략 7명. 말단 형사 3명(이천희, 서동수, 김중기 분)과 중간 관리자(김의성 분), 고위 간부(명계남 분), 그리고 ‘사장’이라고 부르는 총책임자(문성근 분)가 있으며, 여기에 고문기술자 이두한이 가세한다.

    이들은 서로를 ‘직원’이라고 부르며, 직급도 일반 기업이나 기관의 그것을 그대로 따른다. 평사원 위에 계장이 있고, 그 위로 과장→전무→사장 순이다. 이두한은 다른 지사에서 ‘파견’ 온 전문가다. ‘고문’이라는 특수한 ‘업무’를 빼놓는다면 이들의 직업적 일상과 성격은 일반 직장인과 하등 다를 바 없다. ‘평사원’들은 아직 아마추어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위에서 시키는 일을 군말 않고 수행한다. 그들 중엔 승진에 목숨 거는 인물도 있고, “여기 아니면 받아줄 직장이 없는” 학벌 콤플렉스 소유자도 있다. 조직 생리를 알 만큼 아는 과장은 큰 말썽 없이 자리보전하는 게 유일한 목표이자 소망이다. 전무는 ‘실적’에 가장 적극적이다. 사장실과 고문실을 오가며 간첩단 조작을 주도한다.

    사장은 ‘이데올로기’ 자체다. 주인공에게 “광주 사태와 미문화원 점거가 민주화운동이냐”며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발전을 이뤘다”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주인공의 민주화운동은 북괴가 시킨 일이자 김일성이 사주한 국가 변란 시도라고 믿는다.

    고문, 야만의 시대 지옥을 보다
    “고문당하는 나는 도살 직전의 돼지였다”

    이두한은 일종의 ‘테크노크라트’(전문기술을 가진 관료)다. 그가 고문하는 과정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거나 장인이 명품을 만드는 모습과 닮았다. “반정부인사를 고문해 회개시키는 것이 애국”이라며 자신이 휘두르는 극악한 폭력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한다. 정지영 감독은 이들 고문 가해자를 통해 독재와 불의, 폭력이 어떻게 관료제를 통해 구현되는지, 거대한 부조리 안에서 개인이 어떻게 기능적 부품으로 자리 잡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엔 고인과 같은 고문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았다. 유인태, 이재오 등 전·현직 정치인을 비롯해 건축업과 귀금속업에 종사했던 사람들과 중장비 기사도 등장한다. “고문을 당하면서 누군가를 증오하는 내가 악마가 돼가고 있었다” “고문을 받을 당시 머릿속에 내내 떠오른 건 도살 직전의 돼지였다” 같은 증언은 영화가 보여준 영상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남영동 1985’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역사의 이면을 시각화해 ‘고문과 폭력의 시대에 대한 증언’이길 자처한다. 화석 같은 시간, 신화 같은 과거를 현실로 끌어오면서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정말 그 시대를 청산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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