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4

2012.07.02

명랑 쾌활한 고교생 ‘슈퍼히어로’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2-07-02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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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랑 쾌활한 고교생 ‘슈퍼히어로’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슈퍼히어로가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활동 방식은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의 아이돌 가수를 연상시킨다. 아이돌 가수들이 주로 SM, YG, JYP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연예기획사 소속이듯, 미국 슈퍼히어로 역시 대형 출판사 두 곳에 적을 두고 있다.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다.

    아이돌그룹 멤버는 이른바 ‘유닛(unit)’이라 부르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활동하는데, 구성원 각자 개인 활동을 하거나 일부 멤버들이 또 다른 팀 형태로 대중 앞에 서기도 한다. 미국 슈퍼히어로도 각각 한 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X맨’ 시리즈나 ‘어벤져스’ 같은 작품에 떼로 뭉쳐 등장하기도 한다. 아이돌 스타가 한류 아이콘이자 부가가치의 원천이 됐듯, 슈퍼히어로는 할리우드 영화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한 세기 가까이 미국 대중문화의 금맥 구실을 해왔다.

    DC의 슈퍼맨 vs 마블의 스파이더맨

    최근 각광받는 슈퍼히어로를 한데 모아 미국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크게 성공한 작품이 ‘어벤져스’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이언맨,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는 모두 마블코믹스가 만들어낸 영웅이다. 마블코믹스는 1939년 창립한 출판만화 회사로, 현재는 월트 디즈니 계열사다. 수많은 슈퍼히어로가 마블코믹스에서 출간한 단행본과 잡지를 통해 탄생하고 데뷔했는데, 그중에서도 캡틴 아메리카(1941년)가 맏형 격이다. 이후 헐크, 토르, 아이언맨, 블랙 위도, 호크 아이가 1962~64년 차례로 출판만화 주인공으로 탄생했다.

    마블코믹스와 미국 대중문화사를 양분하는 또 하나의 출판만화 회사가 DC코믹스다. 마블코믹스보다 이른 1934년 설립해 슈퍼히어로 만화 전성시대를 열었다. 현재는 타임워너 그룹이 모기업이다. 슈퍼히어로의 대명사 격인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대표 선수다.



    DC코믹스의 대표 캐릭터들의 데뷔 시기는 캡틴 아메리카를 제외하면 마블코믹스의 ‘어벤져스’ 주축들보다 대략 한 세대 정도 앞선다. 미국 슈퍼히어로의 상징인 슈퍼맨이 가장 이른 편으로 1938년 세상에 나왔다. 배트맨이 1939년, 원더우먼이 1941년 DC코믹스의 연속 간행물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됐다.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의 영웅은 출생 시기만큼이나 성격과 정체성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지닌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후로 태어나 냉전시대를 겪고 20세기를 풍미한 DC코믹스의 영웅은 강력한 미국과 흔들리지 않는 정의, 훼손되지 않은 선을 상징한다. 반면 대부분 1960년대 태어난 마블코믹스의 슈퍼히어로는 잘못된 실험이 낳은 돌연변이가 많고, 인간적 결함이 많으며, 때때로 어두운 자아상을 내보인다.

    마블코믹스가 1991년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됐을 때 ‘월스트리트저널’의 제목은 “스파이더맨, 월스트리트에 입성”이었다. ‘DC의 슈퍼맨’처럼 스파이더맨은 ‘마블’의 상징이다.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의 라이벌전은 출판에서 영화로 옮겨 붙어, 미디어의 공룡인 타임워너와 월트 디즈니의 대리전 양상이 됐다. 동시에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의 싸움이다.

    1962년 출판만화 주인공으로 탄생해 마블코믹스 전성시대를 연 스파이더맨은 ‘인간적 결함을 가진 슈퍼히어로’라는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낸 캐릭터로 꼽힌다. 거미에 물려 초인적인 능력을 얻기 전까지 고교생 피터 파커는 친구들에게 자주 얻어터지거나 놀림을 당하는, 우리 식으로 보자면 ‘왕따 학생’에 가까웠다. 게다가 자신을 키워준 삼촌의 죽음에 죄책감까지 갖고 있다. 핵 혹은 방사능에 노출되거나 잘못된 실험, 약물 오용이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켜 괴력을 갖게 된다는 설정 또한 스파이더맨에서 유래해 큰 인기를 얻었다.

    명랑 쾌활한 고교생 ‘슈퍼히어로’
    배트맨보다 먼저 개봉

    스파이더맨의 영화화는 2002년 시작돼 샘 레이미 감독, 토비 매과이어 주연으로만 세 차례 이뤄졌으며 탄생 50주년을 맞는 올해 드디어 네 번째 속편이 개봉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다. 감독과 배우 모두 바뀌어 로맨스 영화 ‘500일의 썸머’를 연출했던 마크 웹이 메가폰을 잡았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마크 저커버그의 친구로 나왔던 앤드루 가필드가 주연을 맡았다. ‘헬프’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준 엠마 스톤이 스파이더맨의 여자 친구가 됐다.

    이번 영화는 스파이더맨이 주인공으로 처음 등장한 출판만화 시리즈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만큼, 고교생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과정과 인류 구원의 첫 임무 수행기를 담았다. 과학자였던 아버지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종적을 감춘 후 삼촌과 함께 살아온 고교생 파커. 힘깨나 쓴다는 친구들에게 가끔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 과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다.

    아버지의 실종과 관련한 비밀을 캐려고 아버지의 동료였던 코너스 박사를 찾아간 그는 실험실에서 거미에 물린 후 굉장한 힘과 도약 능력을 얻는다. 한편 코너스 박사는 한 팔을 잃은 장애인 과학자로서 ‘장애와 기형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야심에 부풀어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결과, 인간과 파충류의 합성 돌연변이체인 괴물 ‘리자드’가 돼 시민을 위험에 빠뜨린다. 파크는 직접 초강력 바이오 케이블(거미줄)을 발사할 수 있는 웹슈터를 개발해 리자드와 대결에 나선다.

    전편에선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사실상 비정규직 기자였던 파커가 이번 영화에서는 고교 시절로 돌아간다. 그만큼 영화 관객의 연령층도 낮아졌다. ‘옛날엔 왕따였지만 이제는 세상의 영웅’으로서 말 못할 기쁨과 자랑스러움에 사로잡힌 파커는 10대다운 심리와 로망을 훨씬 더 잘 표현한다.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가슴 벅찬 사실을 고백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적인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대목일 것이다.

    1~3편보다 극적인 구조가 훨씬 단순하고, 선악 구조가 분명하며, 장난기와 유머도 넘친다. 전편보다 어리고 명랑 쾌활해졌다. 3D로 스펙터클을 강화하는 대신 스토리는 가볍고 단순하게 만들어낸 것은 7월 개봉 예정인 DC코믹스의 영웅, 배트맨 시리즈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확실히 차별화하고자 하는 전략이 아닐까 풀이된다. 10대 후반에 스파이더맨 1편을 처음 본 관객이 벌써 20대 후반이니, 아예 어린 연령층에서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고정 팬을 발굴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좀 더 성숙한 슈퍼히어로 영화를 바라는 관객은 7월까지 기다려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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