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0

2010.06.07

달라진 패밀리 ‘의리’는 어디 갔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06-07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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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진 패밀리 ‘의리’는 어디 갔나?

    ‘대부’는 갱스터 영화의 교본으로 통한다.

    2010년에 다시 ‘대부’를 보는 것은 복고풍 의복을 체험하는 기분과 유사하다. 우리는 이미 말런 브랜도의 불룩 내민 턱과 낮게 깔린 음성을 알고 있다. 1970년대 관객에게는 새로운 말런 브랜도이자 일종의 특수효과였겠지만, 2010년 관객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영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대부’를 보았던 관객이든 그렇지 않은 관객이든, 보타이를 매고 시가를 손에 든 대부의 모습은 머리에 떠올린다. ‘대부’는 어떤 작품이라기보다 ‘상징’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돈 콜레오네의 막내딸 코니의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역정을 요약본으로 고백하고, 다른 한 남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고백을 하던 남자는 듣고 있던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의 요청을 거부한다. ‘당신은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대부’에 그려진 세계는 ‘존경’이 관계의 큰 자산이던 시절이기도 하다. 콜레오네의 아들 마이클은 결혼식에 함께 온 여자에게 자신의 두 번째 형을 소개한다. 성은 다르지만 그는 마이클의 형이다. 길에서 만났지만 아버지는 그를 아들로 인정했고, 마이클에게 형이라 부르게 했다. 콜레오네는 동업자들을 파트너가 아니라 패밀리, 가족이라고 부른다. 패밀리의 일원이 되면 콜레오네는 가족의 일처럼 모든 부탁을 들어주고, 일원들은 충성으로 보답한다.

    범죄 조직이지만 의리, 충성으로 묶인 이 집단은 패밀리라는 말처럼 단단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패밀리 때문에 진짜 가족, 혈연으로 묶인 가족이 다치고 부서진다는 사실이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찾아온 경쟁자의 제안을 거절하자, 콜레오네는 총격을 당하고 급기야 맏아들 소니도 죽음을 맞는다. 패밀리를 지키겠다는 콜레오네의 의지가 그의 가족을 파괴한다. ‘대부’의 비장미는 이 아이러니에서 비롯할 것이다.

    갱스터 영화의 기본서가 된 ‘대부’는 의리가 전부일 수 없는, 달라진 패밀리의 세계를 보여준다. 매춘이나 도박 같은 비교적 전통적인 사업들에서 마약밀매와 같은 고위험, 고수익 구조로 나아가는 모습도 그렇다. 콜레오네는 멋지고 카리스마 있는 보스이기는 하나, 범죄세계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구세대로 그려지고 있다. 중후한 카리스마의 보스지만 세상은 다른 보스를 원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범죄 조직에서 믿음이나 충성이란 개념은 박물관 속의 화석처럼 낡은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갱스터 영화에서 조직이란 당대 사회의 구조, 대중의 욕망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콜레오네가 의리를 믿었다면 당대의 대중이 의리를 높은 가치로 여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약, 살인, 이윤을 위한 전쟁이 난무하는 세계, 아마도 사람들은 1970년대 미국 그리고 세계가 동정 없는 세상에 막 진입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영화제가 아니라 개봉관에서 보는 ‘대부’가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렵사리 캐스팅됐다는 말런 브랜도와 알파치노는 이 영화의 이니셜로 떠오른다. 잔혹하게 보였던 조직 간의 전쟁과 복수도 지금 보니 상당히 고전적이며 순진하다. 사람들은 잔인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의리가 통하던 시간을 그리워한다. 세상은 변하고 세대는 교체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변하는 세상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각박해진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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