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4

2007.07.17

아날로그 형사 디지털 테러에 맞서다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입력2007-07-11 18:3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날로그 형사 디지털 테러에 맞서다
    20세기 폭스사의 로고가 사라지면, 곧이어 컴퓨터그래픽(CG)이 삭제되듯 영화 타이틀이 뜬다. ‘다이하드 4.0’. 테러 시대의 영웅, 욕 잘하고 웃기 잘하는 인간적인 경찰, 질기고 죽이기 어려운 놈 브루스 윌리스가 돌아온 것이다.

    1988년 ‘다이하드’ 시리즈는 액션영화의 역사를 가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액션 영웅들, 즉 장 클로드 반담이나 스티븐 시걸, 실베스터 스탤론,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을 떠올려보자. 다들 지나치게 심각하며 울퉁불퉁 근육질에다 번쩍번쩍 악당을 던져버리는 괴력의 소유자로, 아내에게 쓸 힘을 역기에 쏟아부은 것 같은 총각들이었다.

    해커와 공동으로 정부 전산망 파괴 저지 작전

    그러나 ‘다이하드’의 주인공 존 매클레인은 고향 뉴욕을 떠나 낯선 LA의 고층 빌딩에서 인질로 잡힌 아내를 위해 싸우는 자다. 그에게는 지구를 구한다는 대의명분도 없고, 화기로 중무장한 방탄조끼도 없다. 달랑 러닝셔츠 한 장 입고 맨발에 피가 나서 쩔쩔매며 죽도록 고생만 하는 액션 히어로일 뿐이다. 사실 ‘다이하드’ 속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클로즈업이 빈번한 액션 영웅도 없을 것이다. 때려 부수고 총을 겨눠대는 ‘활동’의 이면에 뭔가 인간적인 감정을 잡아둔 브루스 윌리스의 매력은 이전 액션스타와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잘못된 시간, 장소,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존 매클레인은 과거 서부극의 카우보이의 맥을 잇는 캐릭터로, ‘다이하드’는 유들유들한 유머와 인간적인 면모를 가미한 새로운 액션영화 장르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이다.



    그런데 88년에서 어언 20년이 지난 지금, ‘유비쿼터스’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가 활짝 열렸다. 브루스 윌리스도 어느새 환갑. 그러니 ‘다이하드 4.0’의 고민은 다음 대사로 압축될 수 있겠다.

    “매클레인, 너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형사야!”

    그리하여 영화는 ‘다이하드’보다는 ‘매트릭스’에 가깝게, 언제든 불쑥 들이닥칠 수 있는 디지털 테러를 배경으로 다시 한 번 악당들에게 대항하는 늙은 형사를 불러들인다. 한마디로 ‘다이하드 4.0’은 9·11 테러 이후 만들어진 디지털 시대의 액션영화인 것이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4일, 컴퓨터 해킹 용의자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그중 한 명인 매튜 패럴(저스틴 롱 분)을 찾아간 존 매클레인. 그는 매튜 패럴 집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정부의 네트워크 전산망을 파괴해 미국을 장악하려는 전 정부요원 토머스 가브리엘이 일종의 디지털 테러인 ‘파이어 세일’을 감행한 것이다. 처음에는 교통이 마비되고, 그 다음에는 통신이 마비된다.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해 존 매클레인은 매튜 패럴과 짝을 이뤄 숨막히는 추격전을 벌이고 위기의 순간을 맞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가브리엘이 존 매클레인의 딸 루시를 인질로 잡는 사태가 벌어진다.

    화끈한 폭발 장면, 업그레이드된 액션 CG ‘볼만’

    아날로그 형사 디지털 테러에 맞서다
    88년의 ‘다이하드’가 당시 파상공세를 퍼붓던 일본의 자금력에 대한 두려움을 밑바탕에 깔았다면, 컴퓨터가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는 시대의 ‘다이하드’ 시리즈는 9·11 이후 미국의 근심을 건드린다.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감옥의 설계자가 감옥을 탈주하듯, 시스템의 설계자가 시스템을 파괴한다. 이러한 상황은 악당이 보내온 메시지를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에 하나씩 따 몽타주한 장면에서 재치 있게 표현된다. 부시가, 케네디가, 레이건이 미국에 선전포고하는 이 장면은 편집의 힘을 빌려 유머러스하게 미국적인 기호를 전복한다. 이제 악당이 노리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미국의 데이터이고, 미국이란 땅이 아니라 미국이란 나라의 시스템 마비가 불러일으키는 공황상태인 것이다.

    물론 화끈한 화력과 폭발 장면, 액션도 한층 발전한 CG와 스턴트로 아드레날린을 솟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소화전의 물이 솟구쳐 헬기를 떨어뜨리고, 하늘로 날아간 자동차가 공중에서 헬기와 충돌한다. 터널 속 자동차들은 공중회전을 두 바퀴나 돌며 주인공들을 덮친다.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다이하드’도 이제 게임에 가까운 폭발 장면이 즐비하고, 메가트럭과 전투기까지 등장해 잠시도 액션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매튜 패럴이 존 매클레인을 처음 만나 “부술 것 더 줄까요?”라고 말한 뒤 곧장 아파트가 난장판이 되는 은근한 유머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다이하드 4.0’은 과거의 ‘다이하드’, 특히 1편의 스릴감을 그립게 한다. 이는 결코 브루스 윌리스의 늘어난 주름살에 대한 회한 때문은 아니다. ‘다이하드 4.0’의 아쉬운 부분은 악당의 카리스마가 너무 없다는 것. 과거 이 시리즈의 악당들, 앨런 릭맨이나 제레미 아이언스는 얼음처럼 차가우면서도 악마적 마성이 깃든, 한마디로 ‘필’이 꽂히는 악당이었다. 브루스 윌리스의 유들유들한 인간적 따뜻함과 악당들의 비인간적인 차가움은 그래서 더욱 불협화음 속의 날선 긴장감을 형성했다. 게다가 새로운 악당 티모시 올리펀트는 개성이 통 없다. 차라리 같이 나온 악당녀 매기 큐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시선을 끈다. 죄책감 많은 해커 역의 저스틴 롱 역시 ‘리셀 웨펀’의 대니 글로버나 ‘나쁜 녀석들’의 마틴 로렌스가 보여주었던 순발력에 2% 못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악당 티모시 올리펀트 개성미 2% 부족

    그래서 반전 없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물량공세로 승부 내는 ‘다이하드 4.0’은 여전히 브루스 윌리스 하나에 기대 외가닥 작전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어린 해커에게 “시스템이 아니라, 네가 말하는 시스템이 조국이야”를 외치는 노장의 기백. “당신은 터프한 게 아니라 바보 같다”는 파트너의 말에 “바보? 아니 섹시한 거지”라며 ‘자뻑’의 미학을 버리지 못하는 질긴 자존심. ‘다이하드’가 좀처럼 죽기 어려운 매력은 곧 브루스 윌리스의 매력이며, 그를 대치할 대안이 없다는 사실. 그것이 ‘007’류의 장수만세로 가기엔 아쉬운 ‘다이하드’의 최대 약점이자 강점은 아닐까? ‘다이하드 4.0’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형사 이야기가 아니라, 디지털 효과에도 살아남은 아날로그 스타의 영화다. 10년을 기다려 맞이한 영화는 ‘문 라이팅’ 이후 혜성처럼 등장했던 젊은 날의 브루스 윌리스에 대한 향수를 확인하는 데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