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4

2006.12.12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잔혹하지만 매혹적인 판타지 세계로의 모험

  • 입력2006-12-11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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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J.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쓰게 된 도화선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고 한다. 병사들과 민간인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나치가 창궐하는 암흑의 세상을 목도한 톨킨은 ‘절대권력은 부패한다’는 메시지를, 반지를 버려야 하는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하려 했다.

    톨킨의 평생지기로 종교학자였던 C.S. 루이스의 ‘나니나 연대기’에서도 전쟁의 그림자는 피할 길이 없다. 부모들은 더 이상 안전한 보호자가 되지 못하고, 공습을 피해 시골로 도망가는 아이들의 길. 외딴 저택의 벽장 뒤 얼음 가득한 세상은 사악한 마녀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전쟁의 광기 넘치는 현실과 판타지 세계 넘나들기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기예르모 델 토로의 신작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바로 이런 판타지의 전통을 벤치마킹한 영화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고, 시계에 집착하는 새아버지에게서는 온혈동물의 체온을 느낄 수 없다. 스페인 내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더없이 불길하고 지독히도 잔인한 판타지, 그리하여 세상을 잊게 하는 달콤한 판타지를 뒤집어 다시 보게 하는 반(反)판타지의 세상 속에 발을 담근다. 따라서 ‘판타지-누아르’ 혹은 ‘검은 동화’라고 불릴 만한 이 영화에서 전쟁의 세상은 판타지 밖에 은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판타지의 세상을 뚫고 들어가 자신의 어두컴컴한 그림자를 동화의 몸체와 뒤섞는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어느 날 밤 요정의 인도로 신비한 미로의 중심에 이른다. 그곳에는 반인반수의 기괴한 생명체 판이 기다리고 있다. 판은 오필리아가 지상에서는 다다를 수 없는 지하세계 공주의 환생이고, 세 개의 마법 열쇠를 손에 넣으면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날부터 오필리아는 밤이면 마법 열쇠를 얻기 위해, 무엇이든 진짜가 되는 마법의 분필을 가지고 위험한 판타지 세계를 통과하는 모험을 거듭한다.



    민중의 고혈 짜는 군인과 곤충 잡아먹는 두꺼비 비유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오필리아는 이 모험에서 실패하면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한다. 전형적인 영웅신화의 궤적을 따르는 영화에서 소녀는 커다란 무화과나무 밑에 은둔하고 있는 괴물 두꺼비의 몸에서 열쇠를 꺼내야 하며, 온갖 음식이 유혹하는 가운데 자신의 식욕-본능을 참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험의 여행에서 돌아와 현실로 귀환하면 오필리아의 삶 앞에 펼쳐진 세상은 더욱 잔혹하게 그녀의 목을 조른다. 그곳에는 코뼈가 뭉개지고, 다리가 잘리고, 고문의 고통 때문에 자신을 죽여달라고 외치는 스페인 민중이 맨땅에 널브러져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이 지점에서 영화는 독특하게도 자신의 태생이 판타지가 은유하는 동화 세상과 전쟁의 광기가 지배하는 현실세계가 자웅동체를 이루는 기묘한 지점에 놓여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용기, 인내, 희생. 오필리아가 통과하는 세 단계의 시험 관문은 결국 자유와 인간을 지켜내기 위해, 프랑코 정권과 싸우는 스페인 민중이 똑같이 시험당하고 도전하는 어떤 덕목이기도 하다. 고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밀고하느니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며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는 소년과 당장이라도 눈 없는 거인이 달려들 것 같은 기세 앞에서 온갖 음식을 참아야 하는 소녀의 시험은 무엇이 다른가. 그런가 하면 아내쯤이야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민중의 고혈을 짜내는 비달 대위(오필리아의 새아버지)와 무화과나무 밑동에서 곤충을 잡아먹어 결국 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피둥피둥한 두꺼비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이 기예르모 델 토로의 세상이다. 감독은 “스페인 내전과 요정 이야기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요정 이야기에는 괴물이 있고, 정치가 사이에는 전쟁이 있다”고 응수한다. 멕시코에서 태어나 ‘크로노스에서 시작해 할리우드와 모국을 오가며 ‘악마의 등뼈’ ‘블레이드 2’ ‘헬 보이’를 거치는 동안, 델 토로의 세상은 피의 샤워를 벌이는 뱀파이어들이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고, 유령이 된 친구가 햄릿류의 복수를 당부하는 곳이 된다. 결국 판타지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더욱 뜨겁게 껴안으려는 델 토로는 ‘판의 미로’에서도 어김없이 볼 수 있는 자는 보라고 주문한다. 즉, ‘판의 미로’ 마지막 대사에서 내레이터는 “오필리아가 지상에 남긴 흔적들은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아는 자들만 볼 수 있다”고 속삭인다.

    델 토로 감독, “영화보다 동화나 일러스트에서 영감 얻어”

    영화는 바로 이러한 세상에 대한 통찰을 상징하는 ‘눈’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오필리아를 쫓는 손에 눈이 달린 괴물이나 눈알이 맞추어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조각상들은 모두 이 판타지를 그저 잔혹한 동화로 보지 않을 때만 몸을 드러내는, 세상을 지시하는 이정표와도 같다. 특히 감독은 영화를 제작할 때 영화보다는 동화나 일러스트 같은 회화적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오필리아의 뒤를 쫓는 괴물 ‘창백한 남자’와 그 주변의 벽화 이미지는 자신의 아이를 산 채로 잡아먹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그린 고야의 ‘새턴’과 매우 흡사하다. 그렇다면 그토록 시계 혹은 시간에 집착하며 죽는 순간까지 아들에게 자신이 죽는 시간을 가르쳐달라고 외치는 비달 대위가 누구인지, 무엇의 괴물인지 자명하다.

    ‘판의 미로’는 ‘해리 포터’보다 매혹적이고 ‘반지의 제왕’보다 음습하다. 비록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반도 안 되는 제작비를 썼고 스페인어로 만들었지만, 충분히 신과 악마와 요정과 군인이 손에 손을 잡고 윤무를 추는 원형적인 신화의 세상으로 안내한다. 아이들에게 마술학교가 주는 위안과 즐거움을 줄 수는 없겠지만, 혼자서 본다면 더욱 미로 속의 자신을 느끼게 하는 곳. 판의 깊은 미로에 당신을 초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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