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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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잡은 철학박사님 영화음악계 대부로 서다

  • 하재봉 영화평론가

    입력2007-07-18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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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반 잡은 철학박사님 영화음악계 대부로 서다
    8월9일부터 14일까지 충북 제천시에서 제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린다. 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영화제와 서울여성영화제, 인권영화제처럼 테마별로 개최되는 영화제로 나눌 수 있다. 이미 세계 10위권 규모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나 그 뒤를 이어 시작한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는 각각 10회를 넘어섰다. 그 밖에도 디지털 대안영화제를 표방한 전주, 그리고 광주 등 지자체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영화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음악과 영화를 연결한 독특한 테마형 영화제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영화제는 많지 않다. 비교적 알려진 국제음악영화제로는 체코 프라하와 이탈리아 로마의 음악영화제 정도가 있을 뿐이다. 아시아권에서 음악영화제가 열리는 것은 제천이 처음이다.

    지난 2회 때부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이는 한국의 대표적 음악감독인 조성우(44) 씨다. 그는 집행위원장으로 부임한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년 8월 둘째 주에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휴가철을 맞아 가족 단위 관객을 유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충청북도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청정도시 제천에는 청풍호가 있다. 산과 물을 지닌 장점을 관광자원으로 극대화하는 방법의 하나로, 영화와 음악이 있는 휴양지로 도시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조성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음악영화제로서 정체성을 강화하고 제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릴 계획”임을 밝혔다. 때문에 지난해 처음 시행해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은 영화음악 아카데미와 제천음악상, 제천포럼이 계속되고, 아직 음반을 내지 않은 음악가들이 제천 시내에서 공연하는 거리의 악사, 제천의 상징적 장소인 의림지에서도 음악영화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음악영화제는 대중적이고 보편성이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영화제다. 국제영화제는 국제기준에 맞춰야 하지만 동시에 제천 시민의 눈높이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시민들에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는 자부심을 줘야 한다. 영화적 재미와 소통의 핵심에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전문화된 음악영화제로 키워볼 생각이다.”



    친구 허진호 감독 권유로 데뷔 … ‘접속’ ‘약속’ 등 작품마다 대박

    음악이 없는 영화는 거의 없다.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처럼 일상의 사실적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들은 인위적으로 작곡된 음악을 거의 쓰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영화에서 음악은 영상효과를 극대화하고 극중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나 사건 흐름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구실을 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의 영혼에 음악이 오래 남는 이유는 어떤 대사나 장면보다 음악이 그 순간을 정확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조성우는 연세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충족이유율의 기원과 글자 언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강의를 하던 그가 갑자기 음악가로 전향한 것은 연세대 철학과 동기인 허진호 감독의 ‘꾐’ 때문이다. 물론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음악가가 될 꿈이 있었지만 한쪽 청력을 잃어 꿈을 포기해야 했다. 허진호 감독은 친구인 조성우를 부추겨 그가 영화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조성우의 영화음악 데뷔작은 김성수 감독의 ‘런어웨이’(1995년). 그 후 ‘접속’ ‘약속’ 등 맡는 영화마다 대박을 터뜨리고 영화음악 또한 크게 주목받으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비롯해 ‘봄날은 간다’ ‘외출’ 등에서 영화음악을 맡았고, 요즘은 막 촬영이 끝난 허 감독의 신작 ‘행복’의 음악작업 마무리를 하고 있다. 또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와 곧 개봉될 신작 ‘M’도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으며, 박흥식 감독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등 40여 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조성우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영화는 대부분 대중의 귀에 익숙한 히트팝을 썼지만 조성우에 의해 비로소 수준 높은 창작곡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내년 3월 개봉 예정인 일본 영화 ‘강아지와 나의 10가지 약속’의 영화음악도 맡았다. 한국 영화음악 작곡가가 일본 작품을 의뢰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봄날은 간다’의 음악을 듣고 매료된 모토키 가쓰히데 감독이 음악을 의뢰해왔다. 쇼치쿠사 등 내 음악을 좋아하는 일본 감독이나 제작자가 많은데, 일본에서 순제작비가 45억원이면 큰 영화다. 배우로 톱스타 다나카 레나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허니와 클로버’의 가세 료가 출연한다.”

    조성우의 음악은 서정성이 강하고 따뜻하며 부드럽다. 내러티브 전개의 흐름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캐릭터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음악은 영상과 절묘하게 호흡하며 관객에게 전달된다.

    “곡을 쓰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을 때가 가장 좋다. 음악이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낀다. 일상생활이 힘들 때 음악이 주는 위로도 크다.”

    그는 또 Music과 Film의 머리글자를 딴 제작사 ‘M·F’를 만들어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첫 작품인 이현우 김보경 주연의 ‘여름이 가기 전에’는 3억원의 손해를 보았지만 오기환 감독의 ‘두 사람이다’와 허진호 감독의 ‘행복’, 이명세 감독의 ‘M’이 올 가을 개봉을 기다린다. 그 밖에도 강풀의 만화를 영화화한 유장하 감독의 ‘순정만화’가 곧 크랭크인할 예정이고 김태용 감독의 ‘그녀가 사라졌다’, 박흥식 감독의 ‘협녀’ 등의 영화도 제작한다. 최근 개봉한 ‘해부학 교실’도 영화사 청어람과 함께 투자한 것.

    “특별히 영화 제작을 해야겠다고 계획한 것은 아니다. 영화 쪽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작도 하게 됐고, 작가적이면서도 대중적 접점이 있는 영화를 많이 만들고 싶다.”

    영화음악을 저작권 방식으로 계약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용역계약을 한다. 일정 금액을 받고 음악을 만들어 제작사에 납품하면 끝인 것. DVD 판매에 따른, 혹은 영화 상영 횟수에 따른 이익을 나눠 받는 저작권 계약이 이뤄져야만 영화음악의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건반 잡은 철학박사님 영화음악계 대부로 서다

    8월9일부터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포스터(오른쪽)와 개막작 ‘원스’.

    제천의 자연미 살린 음악영화제 준비 ‘착착’

    “영화음악이 기능적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 배우들이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처럼 음악도 고유의 캐릭터를 만들어야 가치가 있다. 많은 영화음악을 창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음악 자체가 기능적인 부분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보여줘야 한다.”

    옳은 말이다. 극장 상영으로 끝나는 일회성 음악이 아니라, 그 후에도 수익이 창출돼야만 창의적인 음악을 만들 의욕이 생긴다. 많은 작품을 해야 겨우 생활이 유지되는 용역계약은 창의성을 억제하는 상황을 만든다. 그래서 현재 국내 대표적인 영화음악가 30여 명이 모여 한국 영화음악의 선진화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중심에 조성우가 있다.

    그가 “음악영화제의 정체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가장 큰 장점은 제천의 산과 물이다. 특히 청풍호반에서 열리는 야외 영화상영과 아름다운 음악은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긴다. 관객들은 캄캄한 밤 깊은 산속 길을 달려 청풍호반에 도착해 야외무대 앞으로 가면, 무대와 스크린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밤하늘과 산, 호수에 놀라게 된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천연 세트다.

    지난해 필자가 참가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가장 잊을 수 없던 순간도, 제천 시내의 영화관에서 국제음악영화제 참가작들을 볼 때가 아니라 산속 야외무대에서 밤하늘의 별과 함께 영화를 보던 광경이었다. 관객들의 시선은 스크린 너머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과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호수, 그 주변의 캄캄한 산을 향한다. 올해 제천에서도 이런 멋진 순간을 많은 관객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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