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9

2006.11.07

80년대 상업영화 거장 독립영화로 희망을 쐈다

  • 입력2006-11-06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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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상업영화 거장 독립영화로 희망을 쐈다
    완성된 지 2년 반 만에 개봉하는 배창호 감독의 17번째 영화 ‘길’의 상영을 앞두고 봉준호, 김대승, 용이 등 후배 감독들이 시사회장에 나타나 선배 감독을 응원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또 배 감독의 80년대 히트작 ‘고래사냥’이 22년 만에 극장에서 재개봉되는 이벤트도 펼쳐졌다. 영화진흥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국영화의 평균제작비는 39억900만원. 그러나 ‘길’은 불과 5억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고 필라델피아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주연·감독 1인2역 … 필라델피아 영화제서 최우수작품상

    “독립영화가 곧 저예산 영화는 아니다. ‘길’은 현장을 운용하는 유연성과 자신감, 노하우로 촬영이 이루어졌다. 장터 장면 등에서는 아쉬움도 있지만, 세트가 있고 촬영 장소도 다양했기 때문에 꼭 저예산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배창호 감독은 영화 ‘길’에서 직접 주연을 맡아 열연하면서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영화 못지않은 화면을 만들어냈다.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배창호 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감독이나 배우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그의 선배이며 스승인 고 김기영 감독이나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처럼 베레모를 쓰거나 수염을 기르지도 않았다. 몸에서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장동건이나 정우성과도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길’의 시사회장에 들어서다가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네 슈퍼마켓 아저씨 혹은 쌀집 아저씨 같은 모습의 배창호 감독과 맞닥뜨렸다. 그는 80년대 우리 대중문화의 핵심이었고 트렌드를 창조하는 원동력이었으며 상징적 아이콘이었다. 80년대를 관통하면서 배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고 지나온 사람이 있을까? 그의 데뷔작인 ‘꼬방동네 사람들’부터 안성기, 장미희가 인기 절정기에 출연한 ‘깊고 푸른 밤’을 비롯해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서울 관객 40만명을 돌파한 안성기, 김수철, 이미숙의 ‘고래사냥’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든 영화 목록은 화려하기만 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는 우리들 곁에서 멀어졌다. 정확하게는 90년대 들어서면서 그는 대중과의 교감을 잃기 시작했다. 1994년에 제작된 이정재, 신은경 주연의 ‘젊은 남자’가 배창호 감독의 마지막 트렌드 영화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 이전에, 그러니까 ‘황진이’나 ‘꿈’ ‘천국의 계단’이 제작되던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롱테이크로 유장한 호흡을 끌고 감으로써 대중이 알고 있는 황진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황진이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감 혹은 자신이 꿈꾸는 영화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80년대에는 ‘천하의 배창호’였으니까. 그가 만드는 영화는 거의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러나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던 그가 멈칫하는 사이, 한국영화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젊은 남자’는 당대의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중견 감독의 몸부림이었지만 이미 그 시기부터 영화 관객의 핵심층인 20대의 감수성과 배 감독의 간극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고 이를 즐기는 관객들이 존재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지금은 그 길을 향해 가는 과도기다. 요즘 젊은 감독들은 사실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관객을 자극하기 위해 음악을 과다하게 사용한다. 억지스러운 결말도 여전하다.”

    80년대 상업영화 거장 독립영화로 희망을 쐈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으로 흥행제조기 ‘명성’

    시장이 그를 버렸지만 그는 다른 중견 감독들처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독립영화 제작방식이다. 한때 한국영화를 호령했던 상업 감독이 제작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영화를 만드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건이다. 그는 어렵게 마련한 제작비로 독립영화를 만들면서 제작비 절감을 위해 적극적으로 배우의 길을 겸업하기 시작했다.

    “‘길’에서도 다른 기성 배우가 결정되어 있었으나 시기가 맞지 않아 캐스팅하지 못했다. 그런데 제작을 맡은 강춘구 대표가 감독이 직접 주연을 맡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연출만 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열정, 주인공 태석의 성격과 마음을 내가 가장 잘 이해한다는 점에서 결국 연기까지 하게 됐다. 난 대구 출신이다. 전라도 출신으로 나오는 태석의 사투리를 살리기 위해서 따로 대사 코치를 두고 연습했다. 전라도 사투리의 미묘한 어미 처리가 특히 힘들었다.”

    그러나 배창호 감독은 학창시절에 연극을 했었고, 또 자신의 조감독이었던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에서는 안성기, 황신혜 등과 함께 주연을 맡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독립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부인과 함께 ‘러브스토리’의 주연을 맡아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1999년에 배창호 감독은 ‘정’이란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역시 ‘쉬리’ ‘친구’ 등으로 이어지는 폭발적인 주류 한국영화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다. 배 감독은 재기를 꿈꾸며 거대 규모의 예산을 들여 만든 ‘흑수선’(2001년)을 찍기도 했지만, 변해버린 세상과의 감각적 차이만 확인했다. 그런 그가 다시 독립영화로 돌아왔다.

    배창호 감독의 17번째 영화 ‘길’은 그렇게 영화의 초심으로 돌아온, 그리고 흥행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경험한 중견 감독의 자기고백서다. 순정파 장돌뱅이인 주인공 태석은 배창호 자신과 많이 닮아 있다.

    장터 떠도는 장돌뱅이 통해 한국적 정서 듬뿍 담아

    “이 영화에는 내가 사랑하는 한국적인 것들, 한국적인 풍광·정서·원형질적인 정이 깃들어 있다. 지금은 사라진 장터 풍경을 좀더 풍성하게 담지 못해 아쉽다. 그 시대 한국인 정서의 원형질을 깊이 있게 담을 수 있는 평범한 이발소, 대폿집, 황톳길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길’은 제목 그대로 길에 관한 영화다. 길 위에서 만난 중년의 사내와 젊은 여인이 함께 길을 걸어간다. 태석은 사랑하는 부인과 믿었던 친구의 배신을 잊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길 위를 떠돌았다. 서울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인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80년대 상업영화 거장 독립영화로 희망을 쐈다
    “‘고래사냥’ 1, 2편과 ‘안녕하세요 하나님’에 이어 로드무비는 이번이 네 번째다. 길은 인생의 여정, 방랑, 그것에 대한 인간의 영원한 테마를 이야기하기 좋다. 이 영화 속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길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황톳길이 이젠 문화재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라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적인 길에 딱 맞아떨어지는 소재를 찾다가, 장터를 떠도는 장꾼과 그들이 고통처럼 짊어진 짐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 둘을 합성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장돌뱅이 태석은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난 젊은 여인이 친구의 딸임을 알게 된다. 그 친구는 태석이 집문서까지 맡길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였지만 태석을 배반하고 태석의 아내와 몸을 섞었다. ‘길’에는 그런 배반과 상처, 용서가 함께 들어 있다.

    “지난 28년간 영화를 해오면서 사랑하고 좋아했던 길들을 찾아다녔다. 공소, 삼척, 정선 ,구례 등 대부분의 장소는 이미 알고 있었고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장소가 김제 평야다. 마지막 장례 장면을 찍은 삼척은 산에 힘이 있고 깊이가 있어서 영화와 잘 맞아떨어졌다.”

    ‘길’의 음악은 배 감독이 오랫동안 같이 작업해온 이성재 음악감독이 맡았다. 배 감독은 자장가 같은 선율의 우리 가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묘하면서도 복잡하지 않은 멜로디에 한국적인 분위기가 더해진 음악이 탄생했다.

    “‘길’은 내가 하고자 하는 영화다. 뜻이 맞는 분과 함께 완성했지만 배급사를 찾지 못하다가 2년 반 만에 선보이게 됐다. 우리 영화도 좀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1000만 관객도 필요하지만 10만, 5만 관객도 필요하다.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다. 독립영화의 역사가 짧고 이미지도 제한돼 있다. 주류 영화가 하지 못하는 것을 독립영화가 하면서 한국영화가 좀더 입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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