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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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비워 작품 채우는 빛나는 연기

  • 입력2005-05-11 18: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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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비워 작품 채우는 빛나는 연기

    날카롭고 섬세한 이미지의 정보석. \'보석\'이란 이름이 잘 어울린다.

    그는 이름부터 빛이 난다. 정보석이라는 이름과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날카롭고 섬세한 이미지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그는 데뷔 후 20년 동안 주로 도시적이고 지적인 역을 맡았다. 1986년 TV 드라마 ‘백마고지’로 데뷔했으니 벌써 20년이나 지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62년생, 올해 나이 44세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180cm의 키에 군살도 없다. 게다가 아직까지 청년처럼 맑은 얼굴을 갖고 있다. 마흔 넘어서까지 이런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타고난 동안만으로 되지 않는다. 정신 자체가 세속의 더러운 먼지에 오염되지 않아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의 생일이 하루 지난 5월3일 여의도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철없는 청년처럼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어떤 남자도 소화하기 힘든 분홍빛 셔츠가 그에게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배우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다양한 허구의 인물들과 살아왔기 때문인지 현실의 구질구질함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실제로 세상과 부딪치기보다는 허구의 인물과 상황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정보석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곽지균 감독의 ‘그후로도 오랫동안’(89년) ‘젊은 날의 초상’(90년)과 장현수 감독의 ‘걸어서 하늘까지’(92년)는 반항적이며 절망적인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귀공자 이미지를 그에게 부여했다. 그의 수려한 외모 속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우울한 감성이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90년대에는 주로 TV 드라마에서 활동을 했다. ‘49일의 남자’(94년), ‘개같은 날의 오후’(95년),‘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96년)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그가 다시 영화를 통해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것은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2000년)부터였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부유한 재훈 역의 그는, 양수정 역의 이은주를 처음 본 뒤 그녀에게 계속 섹스를 하자고 졸라댄다. 수정의 윗옷을 벗기고 애무를 하다가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수정이 화가 나서 나가버리기도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계속 수정에게 섹스를 하자고 조른다. 결국 재훈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섹스 경험이 없는 수정과 그토록 원하던 첫 섹스를 한다. 재훈 역을 맡은 정보석은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의 솔직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연기로 주목을 받았다.

    연출 목표로 공부 … 대학시절 엑스트라로 출연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그는 대학시절에는 연출에 뜻을 두었다. 연기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처럼 멋진 외모를 가진 청년이 대학시절에는 엑스트라를 했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배우에 대한 꿈은 있었지만, 공부해본 적도 없고 훈련받은 적도 없었다. 연영과 갈 때는 연출을 목표로 했다. 학교 때는 엑스트라를 했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한 것은 대학 졸업 이후부터다. 졸업 작품이 이언호의 ‘소금장수’였는데, 원래는 내가 연출하려고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복학한 선배가 자기가 연출하겠다고 나섰다. 오랫동안 연출을 염두에 둔 작품이었지만, 선배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를 주인공으로 썼다.”

    자신을 비워 작품 채우는 빛나는 연기

    최근 조용히 개봉한 영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연극이 끝난 뒤 정보석은 교수와 선배들에게서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왜 그렇게 연기를 못하느냐는 게 이유였다. 주위에서 하도 못한다고 하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좋아, 내가 제대로 연기하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그때부터 연기 공부만 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선배들이 많이 있던 극단 ‘가교’에 들어갔다. 85년이었다. 그런데 필자 역시, 대학 졸업하고 ‘가교’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었다.

    80년, 그 짧은 서울의 봄 당시, 막스 프리시의 ‘만리장성’을 세실극장 무대에 올렸다. 필자는 그 작품에서 무대감독을 했다. 윤주상 씨가 진시황 역을, 박영규 씨가 돈 후안 역을 맡았다. 정보석과 필자는 극단 선후배가 되는 셈이다.

    ‘오! 수정’ 이후 그는,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누릴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만큼 그 영화에서 정보석이 보여준 연기는 국내 어느 배우의 이미지와도 달랐고, 정보석 자신이 지금까지 보여준 캐릭터와도 달랐다.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한 그는 그러나 다시 TV로 돌아가버린다. 지난 5년 동안 그가 출연한 영화는 한국·태국·홍콩의 세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 ‘쓰리’에서 한국의 김지운 감독 작품인 ‘메모리스’에 출연한 것과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2004년)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그는 전수일 감독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출연했고,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 캐스팅되었다.

    “배우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자기 색깔을 유지하면서 작품을 채우는 유형이 있고, 연출이 원하는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유형이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그래서 연출에 대한 믿음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내가 하고자 했던 부분과 감독이 원하는 부분이 너무나 달랐다. 그래서 감독이 원하는 방향 안에서 표현하는 데 급급했다. ‘오! 수정’의 경우는 프리 프러덕션 단계에서 감독과 충분히 대화했다. 홍상수 감독은 무슨 이야기든 다 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내 세계와 감독의 세계가 일치되는 점을 찾아낼 때까지 시간을 가졌다. 감독에 대한 믿음, 그리고 내가 가야 될 곳에 대한 방향을 정립한 상태에서 촬영을 했다.”

    독특하고 개성적이었던 ‘오! 수정’의 재훈에 비해, 김영하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자살도우미 S역은 너무나 평범하게 표현되고 있다고 나는 그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아직도 배우로서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어떤 분위기나 어떤 캐릭터에 안주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너무도 엉뚱할 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도 있다. 그러나 감독이 구상하고 있는 영화의 방향이 있는데 배우가 너무 자기 것을 대입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작품의 틀이 변화하는 데는 반대한다.”

    자신을 비워 작품 채우는 빛나는 연기

    정보석이 출연한 영화‘개같은 날의 오후’

    사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2003년에 만들어진 영화다. 그때 나는 한국-프랑스 예술제 개막작으로 상영되는 것을 보았다. ‘내 안에 우는 바람’이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같은 독립영화들을 통해 높은 예술적 감각을 보여준 전수일 감독이 김영하의 베스트셀러를 정보석과 추상미라는 스타 배우들을 기용해 영화화한다는 소식은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김영하는 나에게 “원작자로서 창피하다”는 말까지 했다.

    “배우가 자기 것 강하게 대입하는 것은 반대”

    “나에게 원인이 있다. 내가 S라는 캐릭터를 적절히 수행하지 못했다. 감독은 감독대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보면, S가 전체 톤을 맞추기만 했어도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른 캐릭터와 너무 동떨어지고, 매력도 없고 힘도 없으며, 영화의 중심도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저렇게 연기했을까, 영화 보는 내내 죽고 싶었다. 영화 실패의 첫 번째 책임은, 겸손해서가 아니라, 나한테 있다. 전체적으로 내가 했어야 될 책임이 있는데 그걸 하지 못했다. 나는 S를 병적인 사람, 자아도취적인 인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과 이야기하면서 의외의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이 서로 일치되지 않았다. 당시 인터넷 자살사이트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너무 단순하게 접근했다.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이 없이 감독을 무조건 따라가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생활 속의 죽은 매너리즘이 나타나서 비개성적 연기를 하게 되었다.”

    ‘오! 수정’ 이후 활발하게 영화를 찍지 않은 것은 시간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후배들도 많이 나오고 좋은 시나리오도 있을 때는 그가 시간이 안 되고, 그가 기다리고 있을 때는 마땅한 영화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같은, 흥행성보다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해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기대를 걸고 있는 작품이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30, 40대 남자들의 일상이지만, 그 속에는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자질구레한 모습이 잘 그려져 있었다. 사실적이고 상큼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내의 애인을 만나러 가는 역이 나한테 올 줄 알았는데, 감독은 아내의 애인인 택시기사 역을 제의했다. 감독과 3시간 넘게 대화했다. 내가 믿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섰다. 상대 배우인 박광정 씨나 조은 씨 등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감독의 생각이 구체화되고 있다. 굉장히 재미있는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6월10일경 촬영에 들어가서 7월 안에 모두 끝난다. 개봉은 연말쯤 할 것 같다.”

    그는 연기를 할 때 자기 배역에 대한 디테일을 계산하지 않고 촬영장에 간다고 했다. 이것이 나에게는 의외였다.

    “내 스타일을 고집하는 편이 아니다. 상대가 만들면 거기에 맞춰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내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나는 계산을 안 하고 촬영장에 간다. 작품 들어가면 내가 맡은 역의 전체적인 이미지만 구상한다. 그게 만들어지면 현장에서 그때의 상황에 맞춰 연기한다. 처음에 연기할 때는 대본을 보고 디테일한 면까지 계산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역에 접근하는 방법 자체를 바꿨다. 지금은 배역의 큰 형태만 잡고 디테일은 현장에서 채워간다.”

    자신을 비워 작품 채우는 빛나는 연기

    정보석의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 영화 ‘오! 수정’.

    “도움 준 분 원하면 기꺼이 참여” 인간으로서 더 빛나

    아, 이제 알 것 같다. 왜 정보석의 연기가 작품마다 다른지. 그는 개성적인 외적 자산에 비해 그동안 무색무취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그가 지금까지 어떻게 배우생활을 했는지를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나는 작품을 고를 때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 사람을 많이 쫓아다닌다. 프로의 태도는 아니다. 그래서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처음 방송으로 연기를 시작하다가 영화에 출연 하면서 운 좋게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때 꾸준히 영화를 했다면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SBS가 개국하면서 연기자가 턱없이 부족하니까 대선배인 피디들이 영화 제작현장에까지 찾아와서 프로그램 같이 하자고 제의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몇 번을 더 찾아오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내 욕심만 챙길 수 없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다시 드라마를 했다. 영화 쪽에서는 욕을 먹었다. 대놓고 욕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배우도 생활인이고 세상 속에 존재하는데,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나를 원하면 기꺼이 참여하기로 말이다. 물론 배우로서! 이 또한 프로의 자세는 아니다. 그런 부분이 나를 뜨뜻미지근한 상태로 만들었을 것이다.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영화의 욕망은 엄청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배우 정보석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젊은 배우들은, 아무리 은혜를 받았어도 작품이 승산 없다고 생각되면 절대 출연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는 예를 들었다. 실제로 지금은 인간적인 정에 이끌려서 작품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는 승산이 없다고 해서 매몰차게 끊고 돌아서지 못한다. 가령 처음 영화를 할 때 태흥영화사에서 시작했다. 의리 때문에 다른 영화사의 좋은 작품에 출연하지도 못했다. 하도 억울해서, ‘이렇게 태흥의 작품을 기다리면 전속금이라도 주셔야 되는 거 아니냐’고 이태원 사장에게 말한 적도 있다.”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가능한 한 직설적인 표현은 피했다. 우회적이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말만 했다. 그건 그의 체질일 것이다. 만약 그의 성격이 모질었으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다. 영화 속에서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는 그인 것이다.

    20여년 세월 동안 한국 영화 제작현장을 떠나지 않은 사람은 안성기와 그 이외에는 거의 없다. 그는 최근의 한국 영화에 대해서 규모도 커졌고 전문화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90년대 초반에는 우선 필름을 아끼는 게 제작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NG도 마음대로 못 내고 뭔가 아쉬워도 그냥 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장편집기가 있어서 자기 연기를 즉각적으로 현장에서 모니터할 수도 있다. 각 분야의 스태프들도 훨씬 전문화되어 있고 실력도 좋아졌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오히려 더 역동적인 역을 하고 싶다. 몇 년 전에는 우리 세대가 갖는 외로움이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는데, 지금은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 관객들이 자기 세대의 배우들을 보러 극장에 나와야 된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이 든 배우들의 활동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촬영이 없을 때 그는 자주 여행을 간다. 거의 잠적 수준으로 떠난다. 풍광을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외부와 고립시키는 의미에서 가는 것이다. 여행 중에는 가급적 생각을 안 하려 한다. 자기 자신을 비우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상상과 공상을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 같은 소설을 주로 많이 읽는다. ‘다빈치 코드’는 이틀 동안 잠 안 자고 단숨에 읽었다. 드라마할 때는 기다리면서 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그러나 영화 현장에서는 전혀 안 본다. 영화는 기다리는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하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나 드라마는 너무 배역에 몰입하면 오히려 경직되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드라이브할 때는 차 안에서 클래식을 주로 듣지만 집에서는 록이나 힙합도 듣는다.

    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분홍색 셔츠를 입은 그의 목에 걸려 있던 금목걸이의 정체가 궁금했다. 500원짜리 동전보다 훨씬 큰 톱니바퀴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었다. 인터뷰 자리에서 일어서기 직전 목걸이 장식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 이건 태양인데요.”

    자신이 직접 골랐다는 것이다. 정보석은 이름만 빛나는 게 아니었다. 배우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빛이 났다. 태양을 목에 걸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겸손한 태도, 인간들 사이에서 화합하며 살아가려는 그의 기본자세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배우로서 그가, 좀더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용납하기 힘든데, 일에서만큼은 한 치의 틈도 없는 완벽을 추구하는 배우들도 있다. 어떤 태도가 더 좋은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 그의 또 다른 성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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