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3

2005.05.03

조선시대 수사관으로 변신한 ‘흥행 보증수표’

  • 입력2005-04-28 15: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조선시대 수사관으로 변신한 ‘흥행 보증수표’

    미남에다 유머 감각까지, 차승원은 모든 남자들이 질투할 만한 조건을 다 갖추었다.

    나는 이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처음에는 정말 이 남자를 싫어했다. 김혜수가 진행하던 TV 토크쇼 한쪽 자리에 앉아 실없는 농담이나 툭툭 던지던 모습을 보면서, 허우대는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인기 얻으려고 발버둥치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썩 호감이 가지는 않는다. 물론 그가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친 적은 없다. 그런데 내가 왜 차승원을 좋아하지 않는지, 스스로 궁금해서 곰곰이 이유를 분석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질투심이었다.

    188cm 키에 군살 없는 몸매 ‘매력덩어리’

    188cm의 키에 80kg의 몸매를 갖추고 있으며 잘생기고 말도 잘한다. 거기다 이젠 연기까지. 우리가 안성기나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를 보면서 그렇게 기죽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이 못났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차승원처럼 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남자를 보면, 내 처지가 불쌍해진다. 비교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저절로 흘러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생각은 몇 년 전 차승원을 직접 만나고 난 뒤부터 더 심해졌다. 자료에는 188cm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같이 서 보면 훨씬 더 커 보인다. 그는 팔다리가 시원스럽게 길쭉길쭉하다. 더구나 바쁜 남자가 어떻게 하루에 2시간씩 꼬박 헬스를 하는지.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서 몸에 군살도 없다.

    차승원은 모델 출신이다. 모델라인 19기로 일을 시작했고 곧 CF에 등장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방송에 진출했다. 그가 연기를 시작한 것은, 나에게는 의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눈에는, 멋진 몸매를 활용해서 TV에 얼굴 내밀고 돈 좀 벌어보려는 흔한 캐릭터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은 감독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카메오 수준이었다. 이어서 그는 99년에 무려 네 편의 영화에 출연한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서는 폭주족으로 주유소에 등장했고, ‘세기말’에서는 조금 더 비중이 있는 대학강사였으며, ‘신혼여행’에서는 신혼 첫날밤 살해되는 역으로 등장한다. 다음 이광훈 감독의 ‘자귀모’(99)에서 차승원은 주연급으로 올라선다.

    그는 진지하게 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를 배우라고 부를 수 없었다. 뭐랄까, 조금 느끼했다. 연기를 아무나 하나, 이런 충고를 그에게 해주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세기말’을 보니까 조금씩 배우가 돼가고 있었다. 내가 결정적으로 차승원을 배우로 생각한 것은 ‘리베라메’(2000)를 보고 난 뒤였다. ‘리베라메’에서 차승원은 사이코 방화범 역을 맡았다. 주인공이다. 내가 좋아하는 연기파 배우 정애리와 맞장 뜨는 장면이 있는데 연기가 배우 전혀 눌리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서는 광기가 번쩍였다. 배수진을 치고 연기에 올인하는 무서운 집념이 엿보였다. 모델 출신의 멋진 몸매만으로 승부하려는 캐릭터는 더 이상 아니었다. 나는 이제 그가 모델이 아니라, 잘생기고 보기 좋은 몸을 밑천으로 방송에 나서는 뺀질이가 아니라, 정말 배우가 되었구나 생각하게 됐다.



    ‘리베라메’ 이후 차승원은 연전연승이다. ‘신라의 달밤’(2001)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2002) ‘선생 김봉두’(2003) ‘귀신이 산다’(2004)까지 그는 거침없이 흥행가도를 달려왔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위에 열거한 작품 중 적어도 하나 이상씩은 보았을 것이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에서 흥행이 안 된 영화는 없다. ‘승원 불패’. 한때 한석규가 누렸던 흥행의 제왕 자리를 이제 그가 차지하고 있다. 현재 한국 영화 남자 배우 빅3로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를 꼽지만 그것은 연기에 국한했을 때의 일이다. 설경구 주연의 ‘역도산’이나 최민식 주연의 ‘꽃피는 봄이 오면’, 송강호 주연의 ‘복수는 나의 것’은 각각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흥행에서는 실패했다. 그러나 차승원 주연의 영화는 흥행에서 실패한 적이 없다.

    조선시대 수사관으로 변신한 ‘흥행 보증수표’

    차승원이 조선시대 과학수사관으로 등장하여 전혀 웃기지 않게 나오는 영화 ‘혈의 누’.

    신라의 달밤·광복절 특사 등 출연작마다 흥행 성공

    공인회계사며 영화 전문 투자가인 정명훈 씨는 최근 출간된 ‘영화 투자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믿을 만한 특급 배우 이름에 차승원을 올려놓고, 특히 차승원과 임창정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출연하는 영화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관객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차승원의 편당 출연료는 4억원에서 5억원 선이다. 5월 개봉되는 영화 중에서 가장 기대되는 배우 1위를 차승원이 차지한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는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52% 지지를 받아 1위가 되었고, ‘남극일기’의 송강호와 유지태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그가 주연한 영화가 두 편이나 개봉된다.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와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 중에서 ‘혈의 누’가 먼저 개봉되는데, 이 영화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연쇄살인극을 다루고 있는 스릴러물이다.

    4월21일 서울극장에서 열린 ‘혈의 누’ 시사회장에서 그는 돌체앤가바나의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라 인사를 했다. 김대승 감독은 정장에 넥타이 차림이었다. 전날 제작사인 좋은 영화사의 김미희 대표가 시사회장에 절대 양복 입고 오지 말라고, 넥타이는 더구나 매지 말라고 했다지만 김대승 감독은 손님들 초청해놓고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양복을 입고 왔다고 말했다. 그 옆에 서 있던 차승원은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 그럼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런 표정을 지어 웃음을 자아냈다. 마이크가 차승원에게 넘어오기까지, 말은 김대승 감독이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차승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줄 안다.

    “내가 찍은 영화 중에서 가장 여운이 남는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코미디 영화가 여운을 남기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웃음으로 완전 연소되지 않고 뭔가 여운이 남았다면, 잘못 만들었거나 아주 위대한 코미디 영화다. 그는 ‘혈의 누’에서 웃지 않는다. 아니, 눈을 부릅떠서 무섭기까지 하다.

    1808년 동화도라는 섬의 선착장에서 원인 모를 화재로 배가 불타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배 안에는 조정에 진상하는 최고급 종이들이 실려 있었다.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파견된 수사관 원규 역을 차승원이 맡고 있다.

    그는 “사극이라고 해서 대사나 연기 트레이닝을 따로 받지는 않았다. 영화가 스릴러물이고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겠다”면서 보고 평가해달라고 말했다. 차승원이 맡은 원규는 사건을 파헤치는 배역이기 때문에 설명하는 대사가 많다. 검시를 하는 신이나 죄인과의 문답 형식의 신에서는 대사가 길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대사를 빠르게 했다고, 그는 밝혔다.

    섬에 도착한 원규 일행 앞에 처참한 시체 하나가 나타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다섯 번의 살인. 섬 사람들은 7년 전 억울하게 죽은 강 객주의 귀신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공포에 사로잡힌다. ‘혈의 누’는 조선시대 후반이기는 하지만 사극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사건은 긴박하게 전개된다. 사람들의 의상도 단순한 흰 옷이 아니라, 자연색을 들인 한복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너무 빡빡했고 사건 전개는 너무 급했다. 제작진은 누가 범인인지 절대 함구해줄 것을 거듭 부탁했다.

    조선시대 수사관으로 변신한 ‘흥행 보증수표’

    ‘광복절 특사’에서의 차승원. 그의 승부 근성이 느껴지는 영화다.

    “낯선 연기를 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 스스로의 연기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다 힘들었다. 생소한 장르라 특히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의 연기에 대한 자평이야 집에 가서 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의 이 발언을 자신의 연기에 썩 만족하고 있지는 않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차승원은 계속 긴장해 있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농담을 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거듭 질문을 다시 물어보고 대답을 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곧바로 담배를 빼어 문 것은 그가 영화에 대해 무엇인가 불안하다는 증거였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것은 차승원 역이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에게 적합한 배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혈의 누’ 속에서 그는 빛나지 않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코미디만 해오던 그가 새로운 역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갈비뼈에 금 가고도 구르는 신 반복 ‘지독한 연기 열정’

    차승원은 영화 속에서 제지소 주인 아들인 인권 역의 박용우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오히려 박용우가 제 배역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인권과는 대립하는 부분이 많아서 사전에 충분히 이야기를 했고, 감독과도 많은 토론을 했다”고 말했지만,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거기다 가끔 안경까지 끼면서 사건을 분석하는 조선시대 수사관 역이 그에게 낯설었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범인을 잡기 위해 말을 타고 달리는 추격 장면을 찍다가 갈비뼈에 금이 간 그는, 2층에서 떨어져 구르는 신을 찍다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열 번이나 다시 굴렀다. 결국 금이 간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갓을 쓰면 2m나 되는 큰 키 때문에 차승원의 캐스팅을 망설였던 김대승 감독은 그의 이런 집념을 보고 그가 정상에 오른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촬영 초반 두 사람은 서로 날을 세웠다. 김 감독은 차승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제한했다. 차승원은 자유롭게 자신의 연기를 펼쳐 보이고 싶었다. 그때의 갈등이 풀어지지 않았으면 영화는 이상하게 나왔을 것이다.

    ‘혈의 누’는 18세 이상 관람가다. 선정적 장면은 없다. 문제는 폭력적 장면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7년 전, 천주교도로 몰린 강 객주를 능지처참하는 장면이 가장 문제가 된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묶은 끈이 동서남북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네 마리의 소와 연결된 뒤, 소를 채찍으로 후려치자 살아 있는 몸뚱이가 네 조각으로 찢겨지는 장면은 잔혹했다. 그 외에도 닭의 목을 칼로 내리쳐서 피를 뿌리는 장면 등 잔혹한 신이 자주 등장한다.

    왜 차승원을 고집했는가라는 질문에 김대승 감독은 “일단 부딪쳐보면 차승원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것을 끄집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진지한 영화에 어울리는 배우들과는 색다른 느낌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좀 세련되고, 건조하고, 도도하다고 할까. 물론 촬영 초반에는 서로 부딪치기도 했다. 나는 방임형 연출가가 아니라서 하나하나 구체적인 요구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촬영 후반부에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만한 사이가 되었다. 워낙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배우다. 내 요구도 금방 알아듣고 잘 따라주었다”고 말했다.

    차승원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많은 지면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니 간단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연상의 여자와 결혼해서 1남 2녀를 두었다. 특히 그의 아들 노아의 사진은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차승원을 능가하는 외모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차승원에게 스캔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비공개 풍문 수준에 그쳤다. ‘혈의 누’ 홍보차 SBS ‘야심만만’에 출연한 차승원에게, 박수홍이 “억울한 소문은 없었느냐”고 묻자 “나를 둘러싼 소문은 굉장히 많았다. 얘기하면 감정이 격해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다만 나에 대한 공격은 상관없지만 가족에 대한 소문은 안 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수사관으로 변신한 ‘흥행 보증수표’

    2004년 ‘귀신이 산다’까지 차승원은 코믹 연기로 100% 안타를 쳐냈다.

    2003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광복절 특사’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후 수상 소감에서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다 부르기로 작정한 듯, 하느님부터 시작해서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님, 아내 이수진 씨 그리고 아들 노아, 딸 예니를 비롯해서 ‘광복절 특사’의 제작자인 강우석 감독과 연출자인 김상진 감독, 시나리오 작가 박정우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줄줄이 읊어댔다. 물론 주최 측의 사전 귀띔을 받고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 준비해간 것이겠지만, 그 많은 사람의 이름을 공개석상에서 모두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참 뻔뻔하면서도 그러나 힘이 있구나, 자신의 영역은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혈의 누’ 시사회 무대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김미희 대표 말을 듣고 양복을 입고 오지 않았다면서, 옆 자리에 양복을 입고 나온 박용우를 보며 “저쪽까지는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좋은 영화사와 계속 일해야 하고 다음 작품도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농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에게 고마운 사람은 확실하게 챙긴다. 호불호(好不好)가 뚜렷하다. 넉살도 좋고 타협점도 잘 찾는다.

    차승원. 지금 ‘혈의 누’의 상업적 성공이 가능할 것인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의 연기는 분명히 변할 것이다. 코믹 일변도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고, ‘혈의 누’의 밋밋한 캐릭터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혈의 누’는 그를 또 다른 연기 세계로 끌고 가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절대 ‘혈의 누’에서의 그의 연기에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지만. 그리고 여전히 그에게 질투심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가 좋은 배우이며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