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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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에서 걸어나온 조연, 완벽 꿈꾸다

  • 입력2005-04-20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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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본에서 걸어나온 조연, 완벽    꿈꾸다

    ‘잠복근무’ 시사회장에서 만난 오광록.

    영화판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오달수와 오광록, 이른바 ‘양오’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많다. 무엇이 그들을 비슷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을까? 사실 자세히 뜯어보면 그들은 닮지 않았다. 그들의 외형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오른쪽 코 밑의 점인데, 그것도 위치와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더구나 오달수는 얼굴에 점이 하나 더 있다. 오광록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의 점이 수박씨라면, 오달수의 것은 해바라기씨란다. 그는 이 비유를 아주 재미있는 유머로 생각하고 들려주었지만, 나는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잠복근무’의 조폭 두목 배두상처럼 클로즈업으로 잡고 독특한 뉘앙스로 말했더라면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봐도 오달수와 오광록은 비슷해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화려한 스타의 그늘 밑에서 개성 있는 조역, 오히려 주역보다 돋보이는 조역을 하고 있다는 점, 연극판에서 관객들과 직접 호흡하며 쌓은 살아 있는 연기를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세속의 찌든 때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연극판에서 갈고닦은 살아 있는 연기

    나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성북동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정말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가 그를 인터뷰하다니. 술집이나 대학로 극장이 아닌 곳에서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나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배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영화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화해 약속을 잡은 경우도 그가 처음이다. 청담동 근처에서는 밤거리를 걷다가 또는 헬스클럽이나 와인 바에서 배우들을 자주 만난다. 그러나 그가 이런 데 나타날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장소로 그는 자기 집 근처의 카페를 추천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의 작가 이태준 선생의 한옥을 개조한 카페 ‘수연산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자세한 위치를 노트에 받아적었다.

    그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6년 전 우리는 연극을 함께 했다. 연출자와 주연배우로 처음 만난 것이다. 연극 한 편을 올리고 나면, 같이 일한 사람들은 한 식구가 된다. 서로의 은밀한 상처까지 보여주지 않으면 막을 올릴 수가 없다. 연극은 태초에 신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또 하나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창조의 고통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때로는 천장이 울리도록 고함을 치기도 하고 탁자를 걷어차며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갈등은 허구의 인물들과 그들이 겪는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오광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책꽂이에 꽂혀 있는 장정일의 책을 다시 꺼내야만 했다. 1999년 여름, 서울 남산 감독협회에서 개최된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시사회가 끝나고 나는 착잡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그 작품은 가학과 피학이 부딪치며 체제의 완고한 금기에 도전하는 저항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옷을 어디까지 벗었는가 하는 문제는 호사가들의 관심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답답한 지배체제를 송두리째 비웃고 있었다. 매우 잘 만든 영화였지만, 나는 불만이 있었다.

    이미 원작 소설이 외설 시비에 휘말려 출판 금지되었고, 작가 장정일은 구속되었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장정일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작품을 왜 썼는지에 대한 이해가 영화에는 없었다. 나는 장 감독이 그것을 몰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책 속에서 장정일은 자신의 가장 은밀한 상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은밀한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기에 직접적 화법을 빌리지 않고 포르노적 상상력으로 위장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소설 속의 아버지는 주인공과의 혈연관계를 떠나, 우리 사회의 답답한 관료주의나 억압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원작과는 달리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플래시백으로 삽입된 짧은 한 컷으로 아버지의 그림자가 비치는 정도였다. 내 생각에, 아버지라는 존재의 강압적 모습이 살아나지 않으면 영화는 포르노그라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설이 갖고 있는 가치를 올바로 밝혀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그것이, 구속되어 실형선고를 받은 절친한 후배 작가에 대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장정일에게 전화해 연극 공연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 그리고 홍대 앞 극장 ‘씨어터 제로’를 운영하던 심철종을 찾아가 연극으로 올리자고 말했다. 곧바로 캐스팅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조각가 J 역을 맡을 사람을 찾기 위해 배우협회 수첩을 넘기다가 그를 발견했다. ‘허재비 놀이’ 등을 통해 이미 그는 대학로에서 의식 있고 의미 있는 연기를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더구나 시인이라는 점이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원작과도 딱 맞아떨어졌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99년 8월 말, 더운 여름날이었다. 홍대 앞 피카소거리 골목에 있는 술집이었다. 무용하는 후배가 가정집 차고를 고쳐서 만든 국숫집 앞 노상에서 우리는 탁자를 내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그가 좁고 어두운 골목을 걸어나왔다. 나는 마치 마른 짚더미가 비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의 얼굴은 어두웠고, 무척 말랐으며, 지금처럼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내 손을 꽉 잡았다. 힘이 들어간 손에서 나는 청정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를 만나본 사람은 안다. 그가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얼마나 꽉 잡는지.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인간적 관심의 표시다. 맞잡은 손을 통해 인간의 기운이 오가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탐색전이 끝난 뒤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의 말은 느리고 낮았으며, 목젖이 떨릴 만큼 울림이 강해 듣고 난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았다. 여름날 저녁의 바스러지는 햇빛보다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아직 세속에 무관심하고 적응이 안 된, 환속한 스님 같은 분위기가 그의 주변을 떠돌았다. 그는 성북동 어디에 살고 있지만 배낭 하나 메고 여기저기 떠돈다고도 했다. 그 이후 Y 역에 당시 서울예대 휴학 중인 이지현을 캐스팅하고 두 달 동안 연습했다.

    대본에서 걸어나온 조연, 완벽    꿈꾸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오광록(오른쪽 맨 왼쪽)과 ‘잠복근무’에서 조폭 두목으로 출연한 오광록. ‘

    대학로 연극판에서는 오광록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출연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공연의 반응이 좋았다. 연장공연을 했고, 지방공연까지 포함해서 2000년 2월 말까지 넉 달 이상을 공연했다. 당시 여성신문 기자는 “소설도 읽고 영화도 연극도 보았는데, 그중 연극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연극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노출 신으로 관객들을 자극하려는 삼류 연극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해서 J의 내면적 상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의 고통의 근원을 드러내는 데 영화와 차별을 두었다. 입소문이 나서 원로 연극평론가들도 여럿 극장을 찾았다.

    오광록은 집중력이 매우 뛰어난 배우다. 그의 최대 장점은 배역에 대한 무서운 몰입이다. 우리는 자주 술을 마셨고, 그의 눈빛은 여전히 티베트나 인도에 가 있었다. 삶의 욕망을 벗어던진 무욕의 세계를 그는 그리워했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에서 그는 떠돌이 음악인으로 등장한다. 임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그는 정말 떠돌이였으니까. 그를 처음 본 명필름 쪽에서는 ‘시나리오에서 걸어나온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이전에 영화아카데미 2기인 배경윤 감독의 ‘눈 감으면 보이는 세상’(95년)에서 주인공을 맡은 적은 있지만 영화는 개봉되지 못했다.

    “내 특기를 살려서 마음 놓고 느리게 한 작품이야.”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오광록의 첫 극장 개봉 영화다. 나는 아직 그가 카메라에 적응을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과 함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던 송강호가 “저 선배가 대학로에서는, 무대 위에서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의미가 있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는다”라고 말함으로써 박 감독의 관심을 끌게 만든다. 결국 그는 ‘복수는 나의 것’(2002년) 마지막 신에 캐스팅된다. 송강호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빼면서 움찔하는 장면은, 박 감독 말에 따르면, 이 영화의 명장면이었다. 나 역시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드러난 컷이라고 생각한다.

    “촬영 때 송강호 가슴패기에 칼을 꽂는데, 놀랐다. 찔리는 순간 나도 찔려버린 거다. 살해하는 순간 나도 살해된 거더라고.”

    오광록은 박 감독의 복수 3부작에 모두 출연하는 유일한 배우다. ‘올드 보이’의 첫 장면, 옥상에서 개를 끌어안고 자살하는 남자 역을 맡은 그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유괴당한 아이의 아버지 역을 맡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코믹한 상황이 많다.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다.” 현장 편집으로 본 그 영화는 복수 3부작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의 느리고도 느린 말투, 독특한 화법은 산책을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속도전의 시대에 느리게 사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흙에 두 발을 딛고, 산의 맑은 기운과 가까이하며, 인간의 숨결을 담아내기 위해 연기를 하고 시를 쓴다.

    “텃밭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지금 내가 사는 집에 있는 텃밭으로, 열 평 정도 되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예전에 살던 성북동 저 위쪽, 약수터 있는 데 있어. 원래 절이 있던 자리인데 지금은 터만 남았지. 2001년도 식목일, 박해일이랑 몇몇이 모과나무를 심으러 왔어. 그래서 우리 밭이나 만들자고 해서 만든 거야. 땅 소유주는 따로 있는데 그냥 내버려두고 있어서 배추도 심고 오이도 심고 깻잎도 심어.”

    대본에서 걸어나온 조연, 완벽    꿈꾸다

    잠복근무’ 촬영현장에서의 오광록.

    나는 ‘잠복근무’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김선아의 개인기가 돋보이지만 오광록이 없었다면 영화는 정말 심심했을 것이다. 그는 경찰의 추격을 받는 조폭 두목 배상두로 나온다. 배상두는 자신을 배신한 자들을칼로 찔러 배를 가르는 잔혹한 캐릭터다.

    “처음에는 중국 삼합회 조직 두목 같은 거였는데, 전형적인 캐릭터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하기도 싫다. 그래서 요란하지 않은 클래식한 악당으로 가자. 명품시계도 차고 실크셔츠도 입고.”

    박광춘 감독의 ‘잠복근무’는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배우 오광록을 선명하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시사회를 놓치고 일반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옆자리에서 쉴 새 없이 팝콘과 음료를 먹어대던 20대 후반의 남자가, 오광록이 ‘나 멋지지 않니?’를 읊조릴 때 뒤로 넘어갈 듯 웃으며 “어디서 저런 캐릭터를 데려왔지?”라고 혼잣말하는 것을 들었다. 투견장을 운영하는 배상두가 자신을 배반한 부하에게 일대일로 맞장 뜨자면서 웃옷을 벗어붙인 뒤 그에게서 주먹 한 방을 맞자 “쪽팔리게”라고 내뱉는다. 이 단어는 오광록의 독특한 말투에 실리면 무시무시한 무게로 객석을 강타한다. ‘잠복근무’가 이끌어내는 웃음의 8할은 오광록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시를 쓰는 것이다. “시가 없었으면 사람한테 지친 것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연극판을 떠났을 거야.” 그는 연필로, 볼펜으로 시를 쓴다. 아직도 컴퓨터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뷰하면서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이유는, 오랜만에 배낭을 열어보니까 예전의 시 노트가 고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광록의 다음 작품은 3월30일 크랭크인한 윤태용 감독의 ‘소년, 천국에 가다’. 그는 4월14일 박해일과 함께 첫 촬영을 한다. 그리고 얼마 전 유지태가 감독을 한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시사회가 있었는데 영화가 아주 잘 나왔다고, 꼭 보라고 했다. 러닝타임이 45분인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유지태 감독의 ‘자전거 타는 소년’하고 묶어서 극장 개봉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에서 장님 침술사로 나온다. 젊은 여자가 성적 팬터지로 그를 유혹한다. 역시 장님 침술사로 나오는 오달수와 연탄 숯불구잇집 앞에서 연기하는 신이 있는데, 오달수의 연기가 죽인다고 했다. 오광록은 말했다. “달수야. 나, 너한테 120점 준다.”

    나는 오달수와 오광록, 그들이 장님 침술사를 연기하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당신이라면 10분 동안 안 웃을 자신이 있는가?

    “작년에 평생 번 것보다 많은 돈을 벌었는데 다 나갔어. 그동안 도움받고 살았으니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던 것들, 갚았지. 어려운 때라 나눠 쓰기 좋은 계절이야. 잘 나눠줬어.”

    그의 이 말을 풀이하자면, 지난해 영화를 찍으면서 벌어들인 수천만원의 개런티를 가족 친지 선후배들에게 모두 뿌렸다는 것이다. 즉 지금 가진 게 없다는 말이다. 나는 개런티를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다. 역시 예상대로 그는 영화에서 맡고 있는 배역의 중요도에 비해 훨씬 적은 금액을 받고 있었다. “나는 최저치의 개런티를 말했는데도 거기서 또 깎더라고.” 이렇게 물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개런티를 올려줘야 한다. 더구나 그는 자신이 번 돈으로 가난한 연극판 후배들을 먹여살리고 있다. 제작자들이여, 제발 오광록의 개런티는 한 푼도 깎지 말라. 오히려 좀더 올려주시라. 그것이 결국 우리 문화를 기름지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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