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1

2005.04.19

빛나는 조연 … 맡은 역할마다 완벽 변신

  • 입력2005-04-15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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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 조연 … 맡은 역할마다 완벽 변신

    오달수는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감독들이 가장 탐내는 배우가 됐다.단 한 장면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표정과 연기 때문이다.

    2005년 한국 영화는 크게 두 부류로 구별된다. 오달수가 출연한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한때 최종원이나 이문식, 김수로가 그랬듯이 그는 어떤 배우들보다 바쁘게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다. 그를 필요로 하는 감독들이 많다는 얘기다.

    배우 오달수. 얼굴 내미는 분량은 많지 않지만 그때마다 인상적인 연기로 우리들 머릿속에 선명한 기억을 남긴, 오달수의 전성시대가 오고 있다.

    그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올 상반기 한국 영화 최대의 빅 이벤트인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 그가 모두 출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4월1일 같은 날 개봉해서 ‘만우절의 혈투’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전쟁에서, 그는 ‘주먹이 운다’에서는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복서 최민식의 과거 동료로 등장한다. 지금은 최민식에게 고통을 주는 조폭의 리더다. 또 ‘달콤한 인생’에서는 러시아 무기밀매 조직과 연결된 중간상인으로 등장해서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한다.

    그리고 5월 개봉 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 마지막 작품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복수의 칼을 가는 금자에게 제빵 기술을 가르치는 대머리 빵집 주인으로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미 200만 관객을 돌파한 ‘마파도’에서도, 극 전개의 핵심인 로또복권 당첨자로 등장했다. 다방 주인인 그는 다방 여종업원이 1등에 당첨된 로또 영수증을 들고 도망치자, 심복 이정진과 형사 이문식을 시켜 그녀의 고향인 마파도로 찾아가게 한다. 이 정도면, 최근 한국 영화가 오달수가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구별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달수. 이름부터가 평범하지 않다. 이름은 만화 주인공에게서 빌려온 것 같고, 얼굴은 한 번 본 사람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개성을 갖고 있다. 특히 오른쪽 코 밑의 점. 최근 한국 영화를 화룡점정하고 있는 ‘양오’, 즉 오달수와 오광록은 모두 비슷한 위치에 점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 마지막 신에서 송강호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빼면서 움찔하던 남자, ‘올드 보이’의 도입부 옥상 신에서 개를 끌어안고 자살한 남자, ‘잠복근무’에서 조폭 보스로 나온 오광록도 비슷한 위치에 점이 있는 것이다.



    오달수가 처음 영화에 데뷔한 것은 불과 4년 전. 2002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그를, 당시 박찬욱 감독의 조연출이었던 구자홍 감독이 눈여겨보고 ‘여섯 개의 시선’에 추천했고, 촬영장에서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은 경찰관 역의 오달수 연기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오달수는 ‘올드 보이’의 감금방 주인으로 캐스팅된다. 오대수를 15년 동안 감금방에 집어넣었다가 나중에는 그에게 생니를 모조리 뽑히는 박철웅 역은, 오달수라는 배우를 확실하게 대중에게 각인시킨 영화였다. 이제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올드 보이’ 이후 그는 구자홍 감독의 데뷔작인 ‘마지막 늑대’에서 오광록과 함께 평화로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삼인조의 금이빨 역으로 등장한다. 또 ‘효자동 이발사’에서는 말더듬이 연탄방 주인 역을 맡아 주인공의 비밀을 쥐고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 그리고 ‘마파도’를 찍고,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을 찍었다. ‘마파도’는 원래 2004년 12월 개봉할 예정이었는데 올 3월로 연기되었고, 다른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4월 1일 개봉날이 잡혔다. 5월에 개봉하는 ‘친절한 금자씨’까지 올 상반기에만 그가 출연한 영화가 4편이나 개봉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두 주목받는 감독의 문제작이거나 흥행작이다.

    빛나는 조연 … 맡은 역할마다 완벽 변신

    ‘올드 보이’가 인연이 되어 오달수는 유지태(오른쪽)와 함께 연극 ‘해일’을 공연했다. 오달수를 대중적으로 알린 영화 ‘올드 보이’.(왼쪽부터)

    나는 오달수를 만나기 위해 대학로에서 가장 실험적인 연극을 공연하는 ‘혜화동 1번지’를 찾아갔다. 오달수는 현재 극단 ‘신기루 만화경’의 대표로 있고, 그 극단의 공연작인 ‘몽타쥬 엘리베이터’에 그가 출연하기 때문이다. 마침 찾아간 날은 마지막 공연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공연 시작 전, 극장 옆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는 옛날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는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출가 이윤택 씨의 극단 ‘연희단 거리패’에 포스터를 배달하러 갔다가 그 이상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도자기를 만들던 대학 전공은 중간에 때려치우고 부산의 가마골 소극장에서 합숙을 하며 연극 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뻔질나게 부산으로 내려가 가마골 소극장을 들락거렸고 이윤택 씨를 꼬드겨 서울로 올라오라고 충동질했다.

    북한산이 마주 보이던 창동의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던 이윤택 씨는 맞은편 아파트 단지 안 집을 구했고 부산의 연희단 거리패를 모조리 불러들여 합숙훈련하면서 ‘산씻김’ ‘시민 K’ 등을 공연했다. 창동 역에서 4호선을 타면 대학로까지 15분 안에 갈 수 있었다. 90년대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오달수는 그때 연희단 거리패의 막내였고, 빨래나 담배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나를 자주 보았다고 했다.

    ‘올드 보이’에서 오달수는 동물적 본능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에, 무표정한 듯하면서도 많은 말을 담고 있는 감금방 주인 역으로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배역을 맡으면 캐릭터와 비슷한 인물을 현실에서 찾는다. 만약 영화 속의 배역과 현실의 인물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 그 사람을 통째로 가져온다. ‘올드 보이’의 경우, 극단 ‘백수광부’의 대표인 연출가 이성렬 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물론 성격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말투를 그대로 가져와서 딱 맞아떨어진 경우다.

    “대본을 읽는 순간 이성렬이다, 라는 감이 왔터. 본인은 비슷하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이성렬 씨의 말투나 몸짓을 그대로 가져왔다. 영화 속의 배역을 현실에서 찾아다닌다는 것은 정말 추상적인 일이다. 딱 맞아 떨어지는 사람을 찾지 못하면 난감하다. 위축된다. 그럴 경우 다른 배우들처럼 나도 유리가면을 쓴다.”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악한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모두 악역이지만 뭔가 연민이 느껴진다.

    “류승완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이 바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나를 캐스팅한 것 같다. 보통 나는 내가 나오는 영화를 낯 뜨거워서 잘 못 본다. 그런데 ‘달콤한 인생’ 시사회에서는 캐릭터의 순진함으로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다.”

    ‘달콤한 인생’에서 러시아어로 대사를 하는 부분은 오달수 연기의 절정이다. 러시아에서 연극 공부하고 온 이상구 씨에게서 일주일에 두 번씩 한 달 동안 개인교습을 받은 결과다. 김지운 감독은 경상도 사투리로 러시아어를 해서 아프리카 말처럼 들릴 것이라고 했지만, 차 안에서 이병헌에게 습관처럼 러시아어로 말하다가 다시 한국어로 고쳐 말하는 대목에서 관객들은 큰 폭소를 터뜨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다.

    빛나는 조연 … 맡은 역할마다 완벽 변신

    ‘마파도’에서의 오달수.‘달콤한 인생’에서 그는 ‘순박한’ 러시아 무기상 하수인이다(왼쪽부터).

    원래 ‘달콤한 인생’에서 김지운 감독은 다른 역할을 제의했다. 조직의 2인자 자리를 놓고 이병헌과 갈등을 빚는, 지금 김뢰하가 맡은 역이다. 그러나 오달수는 자신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영화 이력이 일천해서 스스로 더 작은 배역인 무기밀매상을 선택했다.

    “영화나 연극이나 짬밥이 되어야 뭔가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흙바닥에서 진주를 줍는 인물이라면 모를까. 더 내공을 쌓아야 한다. 연극에서는 주연도 해보고 그랬지만, 영화에서 그런 비중 있는 역할은 아직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내가 자신감을 가질 때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그는 빵집 주인으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역할을 맡았다. 금자가 교도소에 있을 때 그는 자원봉사를 가서 제빵 기술을 가르친다. 금자는 출감해서 그 빵집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빵집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를 유혹해서 복수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빵집이 일종의 복수의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오달수가 맡은 캐릭터는 민숭민숭하다. 박찬욱 감독도 ‘역할이 너무 작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주먹이 운다’에서도 그렇고 나 나름대로 그 배역에 대한 개인의 전사를 설정한다. 또 감독들도 그 인물의 스토리를 설명해준다. 한 부분을 보고 그 인물의 다른 삶이 읽히지 않는다면 내가 잘못 연기한 거다.”

    ‘주먹이 운다’에서 오달수가 맡은 역할은 태식의 매니저에게서 장기기증서까지 받는 비열한 인물이다. 그러나 신인왕전이 열릴 때 TV 보는 장면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채널을 돌리려고 하니까 ‘야, 보고 있잖아’라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태식이 이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 장면을 나름대로 설정해서 집어넣자고 류승완 감독에게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악한 놈이 악한 상태로 끝나지 말자, 이런 장면 하나 집어넣자, 해서 찍은 거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대본 외에 그가 설정한 캐릭터는, 금자가 빵을 너무 잘 만들어서 그녀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자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원래 박 감독이 내 부분을 연극적으로 만들려고 생각했다. 해설자 역할 비슷하게 카메라를 쳐다보며 관객들에게 직접 대사를 하는 것인데 짝사랑하는 설정으로 조금 바뀌었다. 그런 설정이 없으면 꼭두각시밖에 안되니까 가능하면 엷게나마 내 나름대로 아우트라인을 만든다. 물론 감독과 사전에 협의를 하고 정확하게 방향을 설정한 뒤 촬영에 들어간다.”

    부산에서 단역 연극배우로 출발한 그는 조광화의 ‘남자충동’에 출연하면서 연희단 거리패를 나와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이윤택 씨와는 그 뒤에도 ‘눈물의 여왕’ ‘오구’에서 같이 작업했다. 그리고 2000년 극단 ‘신기루 만화경’을 만든다. ‘올드 보이’에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은 유지태와 함께 연극 ‘해일’을 공연하기도 했다. ‘해일’은 올해 재공연되는데, 유지태는 그 배역이 너무 비극적인 인물이라 자꾸 빠져들면 마음이 무거워져서 해피한 것을 하고 싶다고 했고, 오달수도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배역을 교체해 재공연될 예정이다.

    그에게 연극판은, 그리고 극단은 놀이터 같다. 그만큼 편안하다는 말이다. 오달수를 만난 날 내가 본 연극 ‘몽타쥬 엘리베이터’도 제작비가 120만원에 불과했다. 극단 대표로서 그는 단원들의 술값이나 경조사를 책임지는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연극을 2시간 동안 무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봤다.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서 객석에는 자리가 없었다. 관객들은 오달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친근한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쉬어야겠다. 너무 다작 배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연기를 못한다는 말보다 더 비참한 말이 식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성격이 일주일 이상은 못 쉰다. 공연을 하든지 뭘 하든지 발광할 것이다.”

    오달수는 한 템포 쉬었다가 9월7일부터 10월7일까지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김동현 연출의 어른들의 동화 ‘고래가 사는 어항’에 출연하고, 11월쯤 크랭크인하는 영화 ‘친구와 하모니카’에 출연할 예정이다. ‘주먹이 운다’의 전철웅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인데, 아직 감독 섭외는 안 되었지만 최민식 씨가 대표로 있는 브라보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배우들과 출연한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그를 다시 영화 속에서 보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오달수와 조금만 대화를 하다 보면 그가 아주 심한 부산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영화 속에서는 그가 사투리를 쓴다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워낙 개성적인 캐릭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그의 독특한 억양까지 개성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사투리를 고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안 된다. 원래 출생은 대구지만, 말을 배우기 이전에 부산으로 이사를 가서 거기서 성장했다. 학교들도 험한 데를 다녀서 강한 사투리 억양이 몸에 배었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는데 앞으로가 문제다. 이 억양으로 멜로를 연기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다가 나는 문득 범상치 않은 극단 이름이 궁금해졌다. ‘신기루 만화경’이라는 이름은, 이 극단의 연출자이자 오달수의 의형제인 이해제의 미발표작 희곡 제목이다. 수레에 인형을 가득 싣고 다니며 파는 노인의 이야기인데, 오달수가 70세쯤 되고 두 사람이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때서나 공연하자고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젊어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기루 만화경’이라는 연극을 보려면 적어도 30년 이상을 기다려야만 한다. 물론 그때까지 오달수도, 연출자도, 그것을 보는 우리도 살아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말 신기루 같은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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