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5

2005.12.20

러시아 팬터지 세계로의 초대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12-19 0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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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팬터지 세계로의 초대
    20세기 영화사에서 가장 큰 낭비는 슬라브 문화권에서 팬터지와 호러 장르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럽 문화권에서 가장 막강한 호러와 환상물의 자산을 가지고 있던 문화권이 사회주의 정권 밑에서 건전하기 짝이 없는 사실주의 영화들이나 만들고 있었고, 그동안 우리는 할리우드에서 만든 복제판이나 보고 있었으니,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물론 그 당시 그 동네에서 상당히 좋은 SF 영화들이 나온 건 사실이지만 그런다고 몇십 년의 빈 구멍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나이트 워치’는 러시아가 그동안 그들이 방치했던 책임을 만회할 생각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러시아에서는 ‘나이트 워치’가 ‘반지의 제왕’의 흥행 기록을 깨뜨렸고, 원작 소설이 3부작이니 앞으로 이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건 분명하다.

    ‘나이트 워치’의 무대는 현대 모스크바. 하지만 이야기는 선과 악의 기사들이 전쟁을 벌이던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멸 직전에 휴전이 성립되고,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몇백 년간의 아슬아슬한 휴전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점쟁이를 찾아갔다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주인공 안톤은 지금까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세계의 전쟁에 말려들게 된다.

    ‘나이트 워치’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야심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하고 싶은 건 몽땅 하려 한다. 할리우드 수준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많은 특수효과들이 등장하고, 그 특수효과들은 그만큼이나 화끈하고 쿨하고 젊은 감각에 의해 지배된다.

    세상이 그동안 굶주려왔던 슬라브 문화의 팬터지가 잔뜩 녹아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황당하다면 무지 황당한 내용인데도 노련하고 깊이 있게 캐릭터들을 끌고 가는 배우들의 존재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뭔가가 모자란다. 가장 심하게 떨어지는 것은 스토리의 통제력이다. 복잡한 배경을 가진 3부작 장편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이니 어느 정도 혼란스러움은 각오해야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각본과 편집은 제대로 된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것처럼 느껴진다. 주제와 연기와 스타일을 지탱해줄 스토리가 힘을 갖추고 있지 못하니 영화는 그냥 난장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의 1부는 도입부에 불과하고, 이들이 펼칠 이야기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2, 3부에서 이들이 스토리의 감각을 익힐 수 있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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